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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건 (청 초기) (65)

청나라 황제의 결혼식 | 역사사건 (청 초기)
중은우시 2012.02.01 14:58
안녕하세요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이 있어 여쭈어봅니다.

누르하치의 모친과 가경제의 정후인 효숙예황후는 모두 희탑랍 출신인데 구글링을 해보니 만주 상삼기인 정백기라 나오더군요.
효숙예황후의 부친 화이경액도 꽤 지위가 높고 부도통인데다 희탑랍 가문 자체가 명문가라는 걸 여기저기서 알 수 있었구요
그런데 또 다른 글들에서는 희탑랍 가문이 포의 출신이라 하더라구요. 만주 팔기인 동시에 포의 출신인 게 가능한가요?

또 어떤 기사에서는 가경제가 잠저 시절 친히 효숙예황후를 간택했다고 하는데 포의 출신은 내무부 포의 선발(궁노비 선발)에 참여하지 만주 팔기의 여식들이 참여하는 수녀 선발(후궁 선발)에는 참여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알기로 강희제의 아들인 8황자 애신각라 윤사의 모친 양비 위씨가 포의 가문이라 출신이 미천하다고 취급받았던것 같은데 포의 가문에서 황자의 적복진이 나온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청나라 팔기의 '포의'는 '布衣'라고 쓰지 않고 '包衣'라고 쓰는데, 만주어 '포의아합(包衣阿哈)'의 줄인 말입니다. 팔기에는 만주팔기, 몽고팔기, 한군팔기가 있지만, '포의'가 있는 것은 만주팔기에만 있었으며, '가노(家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포의에는 포의좌령(包衣佐領)'에 예속된 사람들이 있고, '포의관령(包衣管領)'에 예속된 사람들이 있습니다(포의좌령이 높음), 포의관령은 만주어로 신자고(辛子庫)'라고 합니다. 윤사의 모친 양비 위씨는 바로 신자고 출신입니다.
후궁/궁녀가로 선발될 자격은 순치18년(1661년)에 규정으로 정해지는데, "포의좌령, 포의관령에 예속된 여자로 나이 13살에서 16살"입니다. 즉, 후궁은 모두 포의에서 뽑는데, 일반적으로 포의좌령에 예속되어 있으나, 포의관령에 예속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포의관령에 예속되어 있다고 하여 궁녀나 후궁으로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고 하며, 포의관령(신자고)에 예속된 포의출신의 후궁으로는 강희제의 양비 위씨(황8자 윤사 생모), 정비 만류합씨(황13자 윤도 생모), 옹정제의 겸비 유씨(황6자 홍첨 생모), 유비 경씨(황5자 홍주 생모), 건륭제의 효의순황후(즉 영비) 위가씨(가경제 영염의 모친), 의빈 황씨, 서귀인 삭작라씨, 가경제의 효숙예황후 희탑랍씨, 화비등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하게 답글 달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다만 답변해주신 내용 중에 후궁은 모두 포의에서 뽑는다는 것이 조금 헷갈리네요
포의가문을 제외한 만주 팔기 가문은 수녀 선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정백기를 예로 들었을 때, 정백기만주적, 정백기 몽고적, 정백기 한군적이 후궁 선발에 참여하고 나머지 정백기 포의 가문 출신들이 내무부 노비 선발에 참여한다 합니다.

포의 가문에서만 후궁을 선발하면 나머지 명문가의 여식들이 기인 제도에서 제외되는 것인가요?
설명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같습니다. 청나라때 후궁선발(选秀)은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호부(戶部)가 주재하여 3년에 한번씩 '팔기'의 여자들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것(여기는 만주팔기, 몽고팔기, 한군팔기의 24기의 여자가 모두 참석함)이고, 다른 하나는 내무부(內務府)가 1년에 한번씩 '상삼기포의'의 여자들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것입니다. 상삼기의 포의 여자들은 황실로 들어가고, 하오기의 포의 여자들은 왕공귀족에게 들어갑니다. 홍루몽을 쓴 조설근의 집안은 상삼기의 포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후궁은 모두 포의에서 뽑는다'는 것은 잘못 썼네요. '내무부선수에서 뽑히는 후궁은 모두 포의여자이다'라고 해야 정확할 것같습니다..
효숙예황후 희탑랍씨는 조상이 원래 상삼기 신자고 출신이나, 건륭제가 포의에서 빼냈다고 하며, 저명한 대신 내보(來保)가 효숙예황후의 숙조부가 됩니다. 덕분에 저도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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