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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건 (공통) (123)

휘상(徽商)의 400년 부침 | 역사사건 (공통)
중은우시 2012.03.19 16:57
먹공방 호개문은 지난 일요일낮 김비서 다큐 100년의 가게에서 소개하던데요.
전수자는 호씨에서 국가자격증 보유자인 왕씨로 바뀌었고
건물은 같은건물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현대화된 건물인거 봐서는 동일건물은 아니지 않을까 싶던데요
참으로 기발한 글입니다. 휘상에게 왕직의 왜구는 최대의 적이었을텐데 왕직을 휘상의 비조인 것처럼 글을 쓰다니... 당송대에 시작된 휘상이 명중대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는 이유 중 큰 것이 왕직 등 후기왜구를 토벌하여 중국 연안을 안정시켰기 때문입니다. 주원장이 왜구를 반상반구(半商半寇)라고 표현했는데, 왕직은 가정년간 후기왜구의 주역으로 초기의 밀무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구전구(全寇全寇)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에 건너가 조총을 전하였을 뿐 아니라 직접 조선을 쳐들어와 달량포왜변(을묘왜변)을 일으킨 오리지날 왜구입니다. 달량포왜변은 10개 진이 함락되고 전라도병마절도사와 장흥부사가 피살될 정도여서 임진왜란의 전조라고까지 평가합니다. 이 글은 휘상을 털어먹던 해적을 동시대에 활동했으니 휘상의 비조라고 하는 참신한 관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글이 타당하다면 왕직의 후계 해적들, 명말청초의 정성공과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는 중국해적 내지는 왜구들도 모두 휘상의 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정성공도 사실상 일본과 밀무역을 하던 왜구대장 맞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시대적인 타이밍을 타고 반청복명의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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