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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진) (37)

이신(李信)의 경적(輕敵)이 패전의 원인인가? | 역사인물 (진)
중은우시 2012.10.05 01:34
중국인들의 역사왜곡에는 정말 상식이 없다. 한나라 양평성이 되는 연나라 요동이 요녕성이라면 요양이라는 얘기인데, 연나라 도성인 계성이 북경 근처라면 직선거리로도 1200km가 넘는 요양까지 연태자 단이 피난을 갔다는 얘기인가? 연나라가 도성에서 3000리가 넘는 강역을 가졌다면 약소국이 아니라 전국시대 최강국이 아닌가? 연나라 요동성과 한나라 양평성을 요양까지 밀어놓고 그 서쪽(실제로는 남쪽)에서 고조선을 찾아 한사군을 한반도까지 밀어넣는 것이 중국인들의 상투적인 어거지 아닌가? 수서나 북사를 보면 요수를 건너 하루만에 바다가 보이는 곳이 한나라 양평성이므로 수나라 당시의 요수는 난하고 연나라 요동성은 창려를 벗어나지 못하며, 여기서 천여km 떨어져 내륙으로 500km나 들어간 요양일수 없음은 스스로의 사서들이 입증한다. 내가 민족사학자도 아니고 국수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역사글을 보면 울컥울컥 올라옴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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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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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자에 골수 국수주의자 맞네요 뭘. 차라리 내가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창조론이 맞다고 하는 게 낫겠습니다. 요동 지역의 연나라 유적이 체계적으로 발굴된 게 언제고 평양 주변의 한사군 유물과 유적이 정리된 게 또 언제인데 아직도 눈 가리고 귀 막고 사서의 몇 구절을 왜곡한 것만 반복하고 있으면서 무슨 국수주의자가 아니고 민족사학자가 아니라는 겁니까. 그리고 연나라는 당당한 전국 7웅 중 하나입니다. 무슨 약소국 운운입니까.
요동지역의 연나라 유적이란 게 중국인들이 이름붙인 거지, 실제 그런 겁니까? 고구려 성을 중국식으로 복원하고 만리장성 동단이라고 주장하는 관제사학자 말고도 만주뿐 아니라 적봉이나 북경 근방에서도 발견되는 방절형 명도전이 연나라 화페가 아니라 고조선 화폐라는 장박천 같은 중국학자도 있고, 최근 발견된 임둔군 봉니는 한반도가 아니라 대릉하 하류 금서입니다. 평양에는 후한시대 유물밖에 나오지 않음에도 평양 유적을 한사군이라 못박은 이들은 일본학자이며, 오히려 장락궁 명문이 있는 유물 등으로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한 뒤, 왕망과 동복형제였던 김당의 신라김씨가 한반도로 이주해온 흔적이라는 주장도 있어 TV에도 누차 방영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신이 연나라를 쳐들어갈 때 겨우 수천을 거느렸다고 기록에 나와 연나라는 그 정도 군세로 무너뜨릴 약소국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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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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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나라 유적 맞습니다. 연나라 유적인지 고조선 요적인지는 유적과 유물의 내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이른바 재야사학자들의 상상대로 그렇게 아무렇게나 이름붙이는 게 아닙니다. 명도전은 '북경 근방에서도' 발견되는 게 아니라 북경 근방의 유적 쪽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됩니다. 만주 쪽 유적에서 발견되는 숫자와는 자릿수부터가 다릅니다. 평양에서는 이미 낙랑군의 봉니와 명백하게 왕망 시대에 관청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유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연나라가 요동을 점령한 것은 연나라의 전성기 시대입니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던 시기로 따지자면 제나라조차도 진나라 군사의 공격에 변변히 대응조차 못하고 항복한 약국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자칭 재야사학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시대를 마음대로 갖다붙이는지를 잘 보여주시는군요.

이런 말을 한 사람도 있다 저런 말을 한 사람도 있다는 건 대응할 가치도 없습니다. 각의 삼등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이재율같은 사람도 있고, 지구가 태양을 돌지 않음을 '입증'한 최갑우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과 과학은 거짓이다라고 하면 한심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재야사학자들이 이런 역사학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는 것들도 그들이 주장하는 '증거'만큼이나 신뢰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공식적으로 전혀 다른 주장을 학자가 '아무도 몰래 자기를 찾아와서' 스스로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했다는 스토리가 무슨 근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일본인이 가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임나일본부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가야의 유물이라는 것은 '한국인들이 이름붙인 것'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울컬울컥 올라온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뭐라고 판단하겠습니까? 선물개미님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남을 재야사학자라고 비난하는데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야 하는 겁니까? 명도전은 북경 근방이 압도적으로 많은게 아니라 1만매 이상의 출토지는 난하, 대릉하 사이에 압도적으로 많고 다음이 만주, 그 다음이 청천강 이북, 마지막으로 북경 근방입니다. 출토지만으로 보면 방절식, 원절식을 구분하기에 앞서 명도전 자체가 연나라 것인지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평양에 왕망시대의 관청이 있었다는 황당한 얘기는 듣다듣다 처음이네요. 겨우 15년 존재한 신나라가 바다 건너 관청을 두었다는 겁니까? 평양에서 발견되는 신나라 유물은 태후궁인 장락궁 명문이 있는 것들입니다. 신나라가 평양에 태후궁을 두었다는 얘기라면 할말이 없지만... 연나라가 요동을 점령한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요동의 위치가 문제인데,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까지 장성을 쌓았고 진나라의 몽념이 연장성을 수축하여 만리장성을 쌓았으므로 연나라 요동은 만리장성의 동단입니다. 조양이 북경 근방인 건 이설이 없으므로 연나라 요동, 한나라 양평이 요양이려면 만주를 가로질러 요양까지 장성 흔적이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니 고구려성을 중국성으로 둔갑시키는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재야사학자라면 치를 떠는, 정상적 국사 교육을 받은 상식인이므로 비난을 하려면 명백한 사실과 증거를 드시기 바랍니다.
  • 해결자
  • 2012.10.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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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방절식, 원절식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부터가 이덕일 혼자만의 주장입니다. 이덕일은 손잡이 구멍이 네모난 것이 방절식이며 그건 연나라의 화폐지만 손잡이 구멍이 동그란 원절식은 고조선 화폐라고 신문에까지 써놓았지만, 모든 명도전의 손잡이 구멍은 원형이며 손잡이 구멍이 네모난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손잡이 구멍 모양으로 명도전을 구분하는 분류법 역시 학계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이덕일과 그를 위시한 재야사학자들만의 주장입니다. 그런 재야사학자들만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재야사학자라고 치를 떨긴 뭘 떱니까. 자기혐오에라도 빠지신 겁니까.

명도전의 출토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명도전은 북경을 비롯한 하북 지방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며 산동, 산서, 섬서 등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또한 1만매가 넘는 명도전이 나온 유적은 하북성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많은 명도전이 출토된 곳은 연나라의 수도였던 곳, 통칭 연하도입니다. 솔직히 재야사학자들의 주장 중에도 1만매 이상의 출토지가 만주와 청천강 이북에 존재한다는 주장은 본 적이 없습니다. 수천매 유적을 잘못 기억하시는 건지 선물개미님의 독창적 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건 알 필요도 없겠지요. 참고로 재야사학자들은 산동, 산서 등의 지역은 쏙 빼버리고 '북경 한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사실을 호도하는데, 북경 주변에서만도 40여개의 유적에서 명도전이 출토되었습니다. 그 40여개의 유적을 북경 주변이라는 이유로 '한 곳'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사실관계를 각색하면 유적 숫자 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도 있겠지요.

정상적 국사교육을 받아 봐야 재야사학자들의 주장만을 탐닉하고 있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국사교육에서 배웠어야 할 내용은 백과사전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mtcha.com.ne.kr/korea-term/chulgi/term10-myongdojun.htm

평양에 왕망시대의 관청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으신다면, 마찬가지로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정상적인 국사교육을 받은 게 아닙니다. 신나라가 15년을 존재했건 말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왕망이 신나라를 세웠을 때 기존의 관청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고 신나라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이상 200년이 넘게 지속된 전한이 바다 건너에 둔 관청들은 당연히 신나라에 귀속될 테니까요.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무시하고 "겨우 15년 존재한 신나라가 바다 건너 관청을 두었다는 겁니까" 운운하는 게 바로 재야사학자들의 수준입니다.
평양한사군설을 믿지 않으면 재야사학자라고 한다면 평양한사군설이 정통사학이라도 된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정상적 국사교육에서 평양한사군설이 삭제된 게 30년이 넘습니다. 1982년 국회 국사청문회 이후 1983년부터 국정교과서에서 평양한사군설이 삭제되었으며, 2003년 제7차 교육과정 개정에서부터는 아예 한사군설 자체가 삭제되었습니다. 평양에서 후한시대의 유물이 나옴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며 그것이 전한시대에 설치된 한사군은 아니라는 공통적인 이해 하에 그 성격의 규정이 현재 주류사학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끈덕지게 평양한사군설을 물고 늘어지는 송호정 같은 재야사학자(!!!)들이나 역사게시판마다 쫓아다니며 깽판을 치는 중국집 알바들조차 왕망시대 관청 같은 참신하고 수준높은 주장은 한 바 없습니다.
  • 해결자
  • 2012.10.2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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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요. 이젠 국사 교과서까지 왜곡이군요. 국사 교과서에서 이른바 한사군에 대해 다소 불확실하게 서술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의 군현이 설치된 것으로 기술된 것은 "고조선이 멸망"했을 때가 유일하며, 후한시대에 '원래 한의 군현이 없던 곳에' '새로' 군현을 설치했다거나 그런 점을 암시하는 기술은 전혀 없습니다. 주류사학을 논하기 전에 고등학교에서 국사교육을 받은 적조차 없다면 대체 무엇을 가지고 '정상적인 국사교육'을 운운하고 계시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름아닌 재야사학계에서도 국사 교과서에서 평양한사군설을 가르친다고 펄펄 뛰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물개미님이 아주 좋아하실 만한 국사관을 보여주는 다음 블로그를 참고하시지요. http://blog.naver.com/manushya/130147963420

또한 재야사학계에서건 그 외의 곳에서건 왕망 시대의 관청에 대한 이야기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왜 왕망시대라고 특정되는가 하면 왕망이 신을 개국한 후 이름 뜯어고치기 사업에 착수해서, 건국 9년 후에 '태수'를 '대윤'으로 고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년 후에는 '낙랑'을 '낙선'으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낙랑대윤장'이 찍힌 봉니들이 발견되었다면, 그 시기를 언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까? 다만 이 봉니가 꼭 그 5년 사이에의 물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게, 중국에서 출토된 봉니들을 보더라도 지명의 경우에는 왕망이 고치기 전의 지명을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왕망 시대의 관청에서 사용된 물건임은 분명합니다.

재야사학자들은 이걸 가지고 또 온갖 트집을 잡습니다. 봉니는 봉해서 보내는데 필요한 물건이니 낙랑의 봉니가 발견된 곳은 낙랑일 수 없다는 둥(봉니는 관청 안에서 봉해서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하므로 중국의 경우를 봐도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 제일 많이 나옵니다) 왕망이 낙랑을 낙선으로 고쳤으니 낙랑대윤은 말이 안 된다는 둥(위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조차 없다고 주장하는 선물개미님에게 그런 논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사치에 불과하겠지요.

선물개미님의 기묘한 특징은 재야사학자들이 기를 쓰고 반박하려고 하는 학설들을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단정하는 점입니다. 위에 블로그 링크도 하나 걸었지만 낙랑대윤장 봉니만 해도 이미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재야사학자들이 가장 기를 쓰고 반박하려고 해 온 쟁점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없는 참신한 주장이다? 정상적 국사교육만 안 받으신 게 아니라 정상적 재야사학교육(?)도 안 받으신 모양입니다.
여전히 황당한 얘기로 물고 늘어지는군요. 낙랑태수니 낙선대윤이니 하는 것은 평양에서 출토된 낙랑봉니가 일제가 조작한 가짜라는 걸 입증하는데 사용된 논리인데 그걸 신나라 유물의 증거라고 하다니... 낙랑대윤이 말이 안되니 한나라도 신나라도 아닌 것이 맞지 않습니까? 평양한사군설의 원조는 이마니시류 등 일본학자를 제외하면 이병도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이라고 하여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인 사람입니다. 1989년 8월에 죽었는데, 죽기 몇달 전인 5월에 최태영씨와 공저로 한국상고사입문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에는 정말 재야사학자스럽게도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난하와 대릉하 사이에 있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 최태영씨는 이병도씨의 참회록이라고 하였으나 송호정 등 이병도씨의 제자들은 스승이 죽을 때가 되어 노망이 났다고 했습니다. 원조 스승이 아니라는데...
  • 해결자
  • 2012.10.3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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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보세요.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참신한 주장이라고 빈정거리시더니 결국 원래부터 재야사학쪽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던 본색을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낙랑대윤이라는 이름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중국 내에서의 발굴 결과를 보더라도 '왕망이 바꾸기 전의 지명 + 대윤'이 실제로 발견됩니다. 평원군은 왕망 시대에 하평으로 이름을 고쳤지만 평원대윤장 봉니가 발견되고, 주천군은 왕망 시대에 보평군으로 이름을 고쳤지만 주천대윤이라고 찍힌 것이 발견되며... 기타등등. 물론 선물개미님은 지금까지처럼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능!" 하고 선언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실제로 존재하는지 찾아보기 전에는 도저히 그런 단정은 못 하겠지만 선물개미님에게는 간단한 일이겠지요.
해결자님이 착각하는게 있는데요 연나라 대부분 선비족입니다 고위층이요 선비족은 하얀옷에 머리을 조선시대 머리 스타일을 하는 고조선 민족중에 한갈래 있데요 즉 연나라 는 전연 후연 등 여러번 생기는데...연나라 유적 대부분 고구려 때 생긴 유적인걸로 알고 있거든요...즉 ...애매모호한 역사에요 연나라는 중국이든 한국이든 자기네 역사라 우기면 다 대는 국가인데...
장께는 중국으로 가기나 할 것이지, 여기도 지들 꺼, 저기도 지들 꺼, 참 한심한 돼지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