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주유소 / 조영민 도착 없는 여정이었다 누구도 행선지를 묻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떨리는 시동을 켠다 정지 없는 삶. 아무리 가속해도 지상의 최고 속도는 그 무엇도 추월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기증처럼 나이가 들고 지나가는 풍경 속에 그대가 있고 슬..
청산행(靑山行) / 이기철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
피안(彼岸) / 이은림 저 집들, 언제 강을 건너 저렇게 무덤처럼 웅크리고 앉았나 아무도 몰래 건너 가버린 저 산들은 어떻게 다시 또 데려오나 젖은 길만 골라 가는 낡은 나룻배가 산과 나무들과 꽃들, 풀밭을 다 실어 나를 건가 남아있던 불빛마저 참방참방 뛰면서 저 편으로 가는구나 환..
연민 / 이상국 흐르는 강이 나이를 자시면 무엇이 되는지 양양 남대천 물너름에 와서 보아라 한때는 살을 내줄 것 같던 사랑이나 몸을 내던지며 울던 슬픔도 생의 굽이굽이를 돌며 치이고 닳아 이제는 모래처럼 순해졌으니 산그림자 속으로 새들 돌아가고 저무는 강둑에서 제 몸 비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