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천한 보통사람(백범(白凡), 김구 ‘달은 천 번이나 이지러져도 그 본 바탕이 남고 버드나무 가지는 백 번 꺾여도 또한 새 가지가 돋는다.’ “아버지, 왜 우리는 왜 상놈이예요?” “글을 잘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면 양반이 된단다.” ○ 황해도 해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아버지..
‣ 국보 68호 청자 상감운학무늬 매병 ‣ 국보 70호 훈민정음 원본 ‣ 국보 135호 신윤복필 풍속화첩 ‣ 국보 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 국보 294호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 국보 14점, 보물 12점 등 5천여 점의 문화재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탐욕으로부터 지켜..
○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창작활동이 위축되지만, 민족적 정서를 표현한 두 인물이 있었다. 그들은 이육사와 윤동주이다. 이육사(1904∼1944)는 항일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으로 본명은 이원록이다. 일제강점기를 온 몸으로 살아간 문학가이다. ○ 1920년대 후반 일제의 주요 요인 암살과 ..
○ 1920∼1930년대에 텔레비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가장 값이 싸고 화려하며 재미있는 오락거리는 영화였다.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상영된 흑백 무성 영화 한편이 있었다. 그 영화는 일제강점기에 일제로부터 탄압받던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항일 의식을 가장 잘 표현한 작..
○ 일제강점기에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일본인 작업감독들의 민족 차별적인 학대행위도 많아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노동 운동에 나선다. 그리고 민족적 의식이 반영된 항일 운동으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
○ 1923년 갑부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와집에서 살 수도 없고, 비단 옷도 입을 수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걸 묵묵히 참을 수 있었지만 참을 수 없었던 한 가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직업이 ..
○ 1920년대 후반에 언론사가 앞장선 한글 보급운동이 펼쳐졌다. 조선일보의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아래 학생들과 함께 농촌 계몽, 문자 보급운동을 벌인다. 1931년 동아일보는 ‘배우자, 가르키자. 다함께’라는 표어 아래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한다. ○ 브나로드(V. Narod)란..
○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당연히 독일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고 자만하던 스타디움을 꽉 채운 관중들과 나찌즘의 히틀러는 독일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올림픽의 꽃 마라톤을 전 세계가 지켜보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마라톤 결승점에 나타..
○ 일제 강점기에 아동들은 가난과 빈곤 속에서 공장으로 내몰렸고, 그곳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라는 어린 혼을 구원하자.’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1899∼1931)은 서울에서 태어나 삼촌..
○ 1446년 세종대왕 훈민정음 반포 이후 약 400년의 시간이 흐른 개항기, 조선에서는 사람마다 지방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표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날 나라의 바탕을 보전하기에 가장 중요한 말과 글을 이 지경을 만들고 도외시 한다면 나라의 바탕은 날로 쇠퇴할 것이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