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꽃향기로 걸려있고 싶다 정영선 오늘도 뉘 가슴팍 해진 한 귀퉁이에서 소리 없이 닳고 있다 어느 뉘 낡아빠진 기억 끄트머리에 달려 처마 끝 고드름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지금도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무심히 나를 털어내는 이여 그대가 나를 잊어 가는 동안에 나는 또 다른 이..
정영선 / 시인 경남 하동 출생. 2004년 한맥문학 등단 경남문협, 창원문협, 가락문학, 소나무 5길문학회 저서로는 <섬진강 연가>와 < 만월의 여자>가 있다. 2017 상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 만월의 여자> 가 선정됨 만월 滿月의 여자 <작품 해설> 바람의 향연과 관능의 시학..
겨울 사잇길 정영선 시인 긴 겨울 허리 가로질러 헐렁한 배낭 둘러메고 자작나무 빼곡한 숲길 걷는다 은회색 미끈한 몸매 자작자작 뱃살 트는 소리 절로 들린다 바람은 늙은 억새 듬성한 머리카락 앙상한 손가락으로 가르마질 하다가 제 서러움 무시로 휘파람으로 풀어낸다 저만치 허공..
정영선 / 시인 제1부 그 호수의 겨울 품 제 2부 흔들리는 꽃대 제3부 저 골목 끄트머리에 제4부 쓸려가는 지문 멎은 듯 흐르는가, 흐르는 듯 굽이도는 등 푸른 욕망 없이 요요히 흐르는 섬진강을 보라 고단한 가슴 풀어 날마다 물비늘로 혼을 닦는 순례의 길 스러질 듯 일어서는 갈대 쉰 목..
정영선 시인 시집 ‘만월滿月의 여자’ 펴냈다 ‘섬진강 연가’에 이어 8년 만에 펴낸 정영선 씨의 시집‘만월滿月의 여자’는 화려한 옷을 입지 않고도 민얼굴이 예쁘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며 흩어진 구슬을 꿰듯 능숙하게 시어를 엮어가는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의 정답은 없..
소리꽃 자리 / 정영선 시인 감잎 붉은 이파리 두어 장 책갈피에 뉘었다가 창가에 내어걸다 바스락 금이 갈 것 같은 몸피로 쇄골에서흘러내린 핏줄들 사이사이 세월 더께로 가부좌한 검버섯 어룽인다 잎새는 떠나는 계절 꽁무니 좇다말고 여름벌레가 갉아먹다 만 옆구리를 긁적인다 연둣..
아 라 홍 련 / 정영선 보아라, 저 자태 고려 여인의 기품을 애오라지 앙가슴에 발아의 한(恨) 품어 그 모진 마음살이 칠백 여름 건너와 나 살아 있었네라, 토해내는 외마디 단단한 순장旬葬의 옷 벗고 생의 불 다시 지펴 연분홍 적삼차림으로 바람 앞에 웃고 서 있는 기억하는가, 그대 이름 ..
함박꽃 그 여자 정영선 시인 나, 모레 이사 가. 어디로, 왜 가느냐는 다그침에 이 도시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전화선처럼 늘어진 목소리로 담담함을 그려낸다. 철렁, 심장이 곤두박질치는가 싶더니 이내 먹먹함으로 돌아선다. 서너 해 전 남편이 종종걸음으로 하늘 길 떠난 후 ..
그 남자를 읽는다 / 정영선 시인 벽시계 맥박소리 위층 사내 코고는 소리 나는 그가 누운 콘크리트 아래 더 납작 엎드려 목젖이 퉁겨내는 바이브레이션 선율에 귀를 돋운다 깨어진 음반처럼 자지러졌다 포효하는 도돌이 정수리에 가시가 돋친다 시큼한 술 냄새가 콘크리트 벽 기포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