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評論 (260)

공 사상을 둘러싼 중관, 유식 양 학파의 논쟁 | 불교評論
진흙속의연꽃 2009.02.21 16:22
첫 번째 중관학파의 공사상에 대한 유식학파의 비판으로부터 제기되는 의문은 일체가 명칭일 뿐이라면 과연 그 명칭은 실재하는 사물이 없이도 시설될 수 있는가 ?
........연기법=공=가명=중도 의 의미이다. 분명히 가명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어찌어러한 질문이 타당하겠는가?    
두 번째 유식학파의 공사상에 대한 중관학파의 비판으로부터 제기되는 의문은 능취와 소취의 비존재성인 공성을 실재라고 인정하는 것은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있다와 없다라는 말과 극단으로 사용되는 있음(상견)과 없음(단견)의 용어는 다르다. 유식은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에 대해 번뇌의 있고 없음(마음부수의 있고 없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중관학이 실체론에 빠진 사람들을 논파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면 유식은 수행을 통해 공성을 채득하려는 수행자에게서 나온 사상이다.    
그러므로 유식에서 사용하는 空과 不空이라는 단계적 언어들은 마지마 니까야의 "소공경"과 "대공경"애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유식과 중관은 설명하는 관점이 다르다. 중관은 진제의 입장에서 언어를 사용하며 유식은 속제의 입장에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두관점을 동시에 본다면 중관과 유식의 차이점,모순은         없다고 보여진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담아갑니다..._()_
그래서 저는 중론을 읽고 모든 실체론을 타파할 이론이다! 해서 무릎을 탁 친 적이 있습니다.
공도 공하므로 실체가 없습니다. 데이빗 깔루빠하나 교수의 분류입니다.
용수, 세친, 임제선=근본불교 연기법 무착,후기중관, 조동선=브라흐만적 초월론    
용수보살은 사성제를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들이 고정불변하다는 것과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했을 뿐입니다. 중론 관사제품을 보면 모든 것이 공하다면 사성제도 없다는 부파 논사를 상대로 용수보살은 거꾸로 모든 것이 공하지 않다면 사성제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칩니다.
만일 괴로움이 조건에 기인하지 않고 스스로의 성질을 갖춘다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괴로움이 괴로움이 아닌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무상한 것은 괴로움(둑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가 자성을 가진다면 집성제가 말이 안되게 되고 멸성제는 성취불가능한 것이 되며 도성제는 거짓말이 되버립니다.(중론에 근거한 거라 초기불전적 근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
공=무자성=무실체=조건의존=연기(O) 공=실체=여래장=한마음=불성=진여(X) 개인적으로 이렇게 봅니다.                                                                                                                          
어서 오십시요.   공부하시는 분으로 여겨 집니다. 자주 방문하시어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__()__
자주 방문은 하고 있습니다. 눈팅이라 그렇지요. 앞으로는 방문할 때마다 덧글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예의가 되겠군요. 하하 부디 이번 생에서 둑카를 완전히 소멸하시길 바랍니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갈애란 놈은 채울수록 커지고, 잡을수록 떠나고, 깊을수록 괴롭더군요. 그걸 알면서도 저 또한 둑카를 완전히 소멸하지 못했으니, 십바라밀의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 멀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연꽃님이 위숫디 막가(청정도론)에 근거하여 둑카를 '비열하고 비었다.'라고 해석하셨는데, 우리말 비열하다는 사람에게만 쓰는 말 아닙니까? 우리말에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요소에 대해 비열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위험하다고만 하지요. 아니면 어떤 다른 뜻이 담겨진 것입니까? 무지한 제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러니까 너무 언짢게 생각마시고, 답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모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__()__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둑카가 비열하다는 말은 청정도론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청정도론에서 둑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비열하고 비었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심자가 용어하나 쓰는 것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경전이나 주석서에 용어가 있다면 용기있게 사용합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__()__
용수의 중론은 당시 외도 경지들의 모순을 논법으로 정리해 버린 중요한 자료이지요.
중론은 부처님의 핵심가르침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보고, 이와 유사한 승조선사의 '조론' 또한 기가막히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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