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가장 낮은 자들에게 가장 낮은 자세로, 작은손길 무주상보시 13년 | 봉사기
진흙속의연꽃 2017.03.06 14:52
사두- 사두- 사두-

참으로 훌륭한 분들의 참으로 훌륭한 공덕입니다.
사두__()__사두__()__사두__()__
모두들 훌륭하신분들이군요~~_(())_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 나무의꿈
  • 2017.03.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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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론 재보시가 더 권장되고 실행되어야 할것입니다. 첫째, 불교의 진흥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주위에 들어서는 웅장한 교회건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둘째로, 보시를 통하여 소유욕을 조금씩이라도 내려놓음으로써 유신견도 그만큼 줄어들수 있습니다. 솔직히 재가자들이 무슨 법보시를 할 기회가 그렇게 있겠습니까? 결국은 어떤 보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에 제대로 된 테라와다 수행처 하나 없는 현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은 손길의 무주상보시의 정신은 찬탄받아 마땅합니다. 대표 한분의 사정과 뜻으로 이런 훌륭한 수행활동이 마감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나무의꿈
  • 2017.03.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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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정한 불교공부는 종합선물세트 같아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부쩍 합니다. 반찬도 편식하지않고 골고루 먹어줘야 건강을 유지하듯이 불교공부도 부처님의 말씀처럼 팔정도를 닦아야 불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도과에 이를수 있습니다. 교학과 지계와 보시, 수행이 함께 하지 않는 깨달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서 팔정도의 첫번째인 바른 견해가 어떻게 생길수 있겠습니까? 바른 견해는 수행자로서 가장 먼저   알고 있어야될 가르침이자 수행의 결과로서 얻게되는 통찰지혜입니다.

보시는 팔정도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바탕에 보시의 정신이 깔려 있다는것은 상식적인 판단만으로도 알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불교의 현실은 여전히 깨달음지상주의에 취해 있습니다. 오로지 다리꼬고 앉아서 단박에 깨달으면 모든 인생사가 다 해결되고 중생을 구제할수 있다는 이 깨달음 지상주의! 그래서 역사적으로 그런 깨달음을 얻은 스승들이 얼마나 나왔습니까? 그런 스승들이 나왔다면 중생구제가 얼마나 됐습니까?
세끼 밥 해결한것이 불과 얼마되지 않은 일입니다. 중생들의 고통과 힘든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도대체 불교가 중생들의 고통에 무슨 역할을 했습니까? 염불외우듯이 본래성품을 논하고 참나를 찾으라 외치며, 간화선이 최상승선이라 부르짖으면서 내쳐야 될 분별심을 오히려 만천하에 내보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부처와 경전에 대한 집착을 버릴때 대자유가 온다는 이런 선문답만을 여전히 되뇌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중생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런 말들을 듣고 뭇 중생들이 다 불교에 귀의해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왜 방편설법을 하셨는지 이 시대에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학적인 선문답을 하고 있을 시간에 중생들의 고통에 함께하고 힘닿는데까지 그 고통을 덜어주는 활동을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고 깨달음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지적하자면, 오후불식의 계율하나를 지키지도 못하는 한국 승가가 진정한 승가입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부작용이 있길래 또 탁발의 전통은 폐지한 것입니까? 부처님시대와 지금이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탁발이라는 걸식을 통하여 자존심에 상처받으면서 유신견을 내려놓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탁발이 단순히 소유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것 외에 유신견을 없애는 수행으로써의 깊은 가치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이것을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모두가 자기 변명이고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시류에 영합하는 자기 합리화일 뿐입니다.
한국의 테라와다 스님들은 직접 탁발하시는 분들도 있고 상징적인 탁발의식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상징적인 탁발의식을 무슨 이벤트성으로 매도하는 분들이 있는데 테라와다 승려로서 계율을 지키며 한국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출가자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분들의 진정성을 그처럼 가볍게 매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테라와다스님들은 오후불식의 계율을 철저히 지킵니다. 한국의 스님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오후불식의 계율하나를 못 지키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외람되지만 기름기 번드르르한 권승이라 불리는 승려들의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유명한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표를 구걸하니 유신견이 하늘을 찌르겠지요, 그것이 승려의 길입니까? 창피합니다.
사랑재의 이병관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어 반가웠고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회향하는 날의 하루가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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