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자신을 수호해야 하는가? 새로 번역된 자비송, 자애의 노래(Metta katha) | 예경지송
진흙속의연꽃 2017.05.29 19:21
동감합니다.

나와 모든 존재들이 자애롭기를!

나와 모든 존재들이 괴롭지않기를!

나와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나와 모든 존재들이 평온하기를!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_()_

마음이 맑아지는 사유의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님들이 편안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타인을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라는건   넌센스에   가깝습니다 진정 으로 자지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신구의   어떤걸로도   악업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_(())_
열반을 실현한 성자는

따로 자비심을 내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남들의 고통에 무감각한 소시오패스로 보여질 수가 있습니다.

열반을 이루었어도

항상 4성제를 기억하고, 중생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자비심을 낸다면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일 것입니다.
  • 환상일 수도 아닐 수도
  • 2017.05.30 14:04
  • 수정 | 삭제 | 신고
열반 후 세세생생 보살의 길은
부처님 주먹 속에 남겨진 가르침이 아닙니다.

열반 후 세세생생 보살의 길이라 할 때
그 열반은 부처님 가르침의 열반이 아닙니다.

글자가 같다고 해도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누가 썼느냐를 봐야죠.
나의 사유가 미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사유의 끝은 아닙니다, 결코.
지금 당장은 중생이 중생의 위치를 살피는 것이 제일 우선이지 않나 싶네요.
세세생생 윤회 이야기는 직접 전생을 기억해내지 못해서 잘 모릅니다.
사유와 경험은 다르기 때문에 저는 사유측면에서는 있다고 믿지만, 경험측면에서는 모른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현생에서 자비심을 내는 수행이 대승의 보살사상인 것과 초기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출가하지 않거나, 생계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 재가자가 아닌 이상

업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100% 거짓말이므로
저는 무조건 보살(깨달음을 얻는 중생)이라고 봅니다.

경험에 기반한 자명한 사실만을 말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세세생생 윤회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님.
보살의 세간적 자비심을 격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
그리고 업은 생계문제의 완전한 해결 또는 보살도와도 무관함.

<경험에 기반한 자명한 사실>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것에서 헐 값으로 남의 것으로 떠 넘기는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임.

<경험에 기반한 자명한 사실>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마치 칼라마경에 대한 아전인수의 해석을 들이대는 것과 같아 보임.

경험 또는 체험을 어디까지 해 보셨나요? 주장을 넘어서까지 가 보셨나요?

추가… 그리고 재가와 출가는 스펙트럼입니다.
그것을 또 달리 말할 때 심출가-신출가라고 표현하는 것이고요.

타이거우즈가 첨부터 골프의 신이었던가요?
중생의 당면 문제는 물론 ~ 변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이것이겠지만
또한 자신의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뿅하면서 이루어지 않는다는 것을 수용하면서
그 점진적 단계성에 대한 지성적 이해를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새기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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