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무상관이 가장 수승한가? 예경지송 무상관의 경송 | 예경지송
진흙속의연꽃 2017.05.30 15:15

무상을 아는 것이 인생을 아는 것이다.

-아짠 빤냐와로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_()_
좋은글   감사합니다~~^^_(())_
일체가 무상,고,무아 입니다
나도너도일체 물질도 무상하고 그래서 고통이고 무아입니다
늘 그렇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오온이 무상,고,무아라는 가르침만 접하면,
불교는 염세주의가 아닐까? 단멸론을 말하는 가르침일까? 의문이 드실 분들이 있을까봐

이러한 '오온'과 대비되는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

같은 예경지송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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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계가 있으니
거기에는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불도 없고, 바람도 없고
무한공간의 세계도 없고
무한의식의 세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도 없고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없느니라

수행승들이여,
거기에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으므로
그것은 의처를 여의고
전생을 여의고, 대상을 여의니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종식이니라

실로 모든 경향의 여읨은 보기 어려우니
진리는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니라.
알고 또한 보는 자가 갈애를 꿰뚫고
알고 또한 보는 자가 일체를 여의니라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여읨이 알려질 수 없느니라.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여읨이 알려지느리라
---------------------------------------------------------------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

것=Thing 이라는 명사적 사유를 연기의 가르침으로 넘어가 보세요.
그 구별만 열심히 해도 현상계-본체계라는 전통적 사술들에 혹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Thing itself, Ding an sich-물자체 또는 실체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열반에서 참나=불성으로… 불성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유일신으로 나아가고…
거기에서 급기야 본체계-절대신의 하나님을 들이대는 지경까지도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처님 손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제천대성 손오공처럼요 ~ 제천대성 왔다 가다… 제 자리 맴돌기.


추가...
수부티 님의 상주론 주장은 정통 대승불교에서도 벗어나 있고,
더군다나 초기불교 경전의 부처님 설법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으므로
은인자중하시는 것이 어떨지요. 삼가 부탁드립니다. __()__

이원론이라고 비판하실 수 있겠으나,
오온차원과 열반차원의 법문은 명백히 다릅니다.
오온은 무상,고,무아이지만
열반이 무상,고,무아라는 법문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부파불교논쟁, 소승-대승 논쟁으로 발전하였으나

열반차원에서는 '상주'한다고 보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법화경이나 화엄경에서는 이미 이러한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며,

남방 테라와다 불교권이라고 해도 부처님은 사람 그 이상의 대우를 받습니다.

저는 남방불자들이 부처님께 기도드리고, 모든 행사에 부처님을 예경하는 모습을 보고

테라와다불교이든, 대승불교이든

부처님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유일신 그 이상으로 대우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얀마,캄보디아,태국,스리랑카,태국,배트남,티베트,부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부처님께 기도하고, 부처님에게 복을 빌며, 부처님에게 감사를 올립니다.

이러한 불심 때문에 이들 나라에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설자리가 없는 것이지

이러한 불심을 무시하고 부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인 한국은 개신교에게 종교신자비율 1위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고려시대 불자 90%이상을 자랑하였을 때 이 때 섬긴 부처님은 열반으로써의 비로자나부처님이었고,

세종대왕 또한 '내불당'에서 이러한 부처님께 매일 기도드렸다고 합니다.

부처님을 사람 그 이상으로 섬기는 것에 대해 이렇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태도가 불교의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_()_


처음 글이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아서 다시 작성하였습니다_()_

오온-연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온-연기멸을 단멸로만 수용하기에
또는 오온-연기멸을 단멸의 대극으로 바꿔치는 그저 중생이기에

더 위험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체험도 없는 차깍-견성 도인 상태에서…

결국은… 존재와 비존재를 넘는 중도-실재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을 부정하고서
Bhava=”존재”를 향해 질주하는군요. 그 끝이 비로자나불=하나님인가요? 화이팅!

우물 속 개구리도 존중하고… 우물 바깥을 바라지 않는 개구리도 존중하긴 하지만…

이원론의 비판을 넘지 못하면…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어도 쌉니다.
삶에 대한 대안적 이원론을 비하하는 것으로 듣는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우물 바깥을 진정으로 바라지 않는 분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실 걸로 믿으니까요.
일견사수-정저지와-위관규천-마이동풍-우이독경 ~ ^.^

__()__


유일-초월신을 신앙하는 고대성을 콤플렉스 또는 금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으로 가는 길에 어쩔 수 없이 허용되는 중생 한계임을 서로서로 수용해야죠.
~~~ 시계-생천… 단멸론적 폐쇄성보다는 상주론… 더하여 개방적이라면 더 희망적인 것 아닌가요?

플라톤/데카르트/칸트의 관념-실체론의 근대성은 현대철학의 사유로도 극복된답니다.
물론 현대철학의 사유는 아직 비-실체성의 지성적 극복일 뿐, 그 방향성은 혼돈기입니다만.

그러한 현대철학의 비-실체성 사유도 담보하지 못하고서
그저 근대성으로 퇴보하고, 고대성의 사막으로 퇴행한 h-학당적 세뇌는 보는 이의 연민을 자아내네요.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

것=Thing 이라는 명사적 사유의 이데아와 신비-초월자들을
부처님의 연기의 가르침으로 넘어가 보세요. 우물 안 실체를 벗어나 우물 바깥 실재를 향한 가르침!!!


연기하지 않음이 있다

연기하지 않음이 없다면
연기에서 벗어남이 불가능하다

연기하지 않음이 있기에
연기에서 벗어남이 가능한 것이다

~ 명사적 실체성을 벗어나는 하나의 이해 방법입니다.
~ 현대의 사유도 고대/근대성의 명사=개념의 실체성을 벗어납니다.

사성제… 고-집-멸-도 (비-명사의 실재들)
윤회-연기-열반-해탈도 (윤회/해탈은 명사적 대구… 연기/열반은 비-명사적 대구입니다.)

열반을 표현-불가능성으로 치는 나태함도 문제지만
표현-불가능성이라는 모래 구덩이 속에 머리를 파 묻은 채
두 손 두 발로 나래짓만 하는 것도 그다지 어여쁜 모습은 아닙니다.

부처님은 연기를 벗어난 분이십니다… 굳이 신이라고 하지 맙시다.
부처님은 신들의 존재를 늘 이야기하셨고… 그것은 연기적 존재들이니까요.

__()__
언어로는 '이원론'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숫타니파타에서 부처님은 열반은 언어로 설해질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따르면,
언어로 설한 모든 법문은 열반을 대상으로 설하신 법문이 아니라 오온을 대상으로 설하신 법문이라는 것입니다.

오온,유무중도,사성제,12연기 모두 '오온'을 대상으로 하는 법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부정할 가르침은 없습니다.

다만 오온 그 이상의 영역을 부정하고, 인간의 인식,사고,독단 그 이상에 대해 모른다는 마음으로 경배하는 마음을 미개하다고 여기고, 자신은 머리로 다 알기 때문에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를 느낍니다.

언어로 비로자나불을 말할 뿐이지 물리적인 실체로 '존재'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기경전에서도 부처님은 개체를 초월하여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셔서 브라흐만을 만나고, 천신들과 대화하시며, 타심통,족심통,천안통 등등의 신통력을 발휘하시는데

왜 대승이 부처님의 이런 모습을 표현하시면 미신이 되고, 초기경전에 묘사되면 사실로 받아들이시는 건지 그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_()_



자신의 한계로 인해

부처님의 초기불교 가르침을 다 수용하지 못하거나
또는 부처님의 초기불교 가르침들이 혹시 거북~스러울지라도…

부처님의 초기불교 가르침을 수용하신 분들이 있는 곳에
부처님의 초기불교 가르침이 아닌 것들을 널어 놓지 않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는 근기가 발휘되는 바른-신구의-행이 아닐까 합니다.



"오온을 초월한 무아의 자리에서 느껴지는
우주와의 일체감이 곧 불성이고, 비로자나부처님"

이건 아닙니다… 싸띠 수행승에게 내린 부처님의 칠책을 바라나요?


본인의 공부가 한참이나 모자라는 게으름의 상태에서…
그저 본인의 주관적 바램을 학교 숙제 짜집기 하듯 표출하는 것은 쪼매 아닌 듯.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고… 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님의 문제이고 님의 숙제이지
다른 분들께는, 또 초기불교 선배님들께는 해당되지 않는, 이미 숙지된 것들이랍니다.

제가 좀 구강기 성격이라 많이 거친 것 같으나… 사실은…
지금의 이 투박함이 가장 친절한 대응일 것입니다… 무대응보다는 나은… 그쵸?

초기불교 가르침들의 수용이 힘드시다면… 현대철학의 사유들을 살펴 보세요.
이젠 그곳에서도 세상을 이원론으로 표현해야 하는 언어적 한계 상태는 벗어났거든요.

은인자중의 미덕을 기대합니다. __()__


추가... 원래 제대로 가고 있던 길에서 벗어남이 참으로 의아하네요... http://blog.daum.net/myungta4/247

사실 말씀이 이해가 안됩니다.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불교공부와 상관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아무투 제 최종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면,

언어로 이해해야할 가르침이 있고(오온)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가르침이 있습니다(열반)

1.적어도 열반자리, 피안, 섬 등으로 표현되는 열반을 두고   마치 없는 것처럼, 오온이 전부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

2.대승은a인데 대승을 b로 정의하고, 대승을 비판하는 경우나

3.부처님을 초기경전에 나와있는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여기는 것에 대해, 수준 떨어지는 방편이라고 격하하는 것

4.오온-열반, 윤회-해탈, 차안-피안, 바다-섬, 소멸-불사등등으로 명백하게 구분하시는 부처님의 법문을 '이원론'이라고 격하하시는 부분

이 점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부처님의 '오온'에 대한 가르침, 무상,고,무아, 유무중도, 연기, 4성제 등등의 가르침은 인정합니다.

즉 초기경전에 위배되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세속에서 업을 지으면서, 남들에게는 출가하여, 알아차리면서 업을 짓지 말라고 하는 식의 모순되는 가르침에 대해서도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는 세속에서 업을 지으면서… 니는 출가해서 업을 짓지 말아라…
누가 그럽디까? 혹시 연꽃님? ㅋㅋㅋ 그렇다면… 상종을 하지 말아야죠^^.

이런 소리는 한 적이 있네요… 재가와 출가는 연장선이고… 심출가와 신출가는 스펙트럼이다
제가 한 그 말을 혹시 그렇게 이해하신 건가요? 심출가든 신출가이든 근기이고 정진입니다, 입이 아닌…

초기경전을 저처럼 아직 제대로 안 배우신 분이… 위배 어쩌고 저쩌고 하면… 신뢰성의 의심!!!

4. 오온-열반, 윤회-해탈, 차안-피안 ~ 이것을 이원론으로 받으면 당연히 신비주의-초월론이 됩니다.
이분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재가 됩니다. 우리의 선택적 행동과 결부되는 실현이라는 현실.
이원론은 비-경험의 형이상학적 실체의 원소들을 전제해야 하는 반면에 이분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차생고-피기… 차멸고-피멸 ~ 연기-윤회… 연기하지 않음=열반-해탈 ~ 차안/피안 등은 이분법적 동의어!
이해 되시남요?

3. 부처님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佛=불을 파자하면 인간이 아님… 인간을 넘어섬의 의미입니다.
거기서 유일신, 초월신, 하나님, 비로자나불로 나아가면 오바하는 것이며… 제 정신의 초기불자가 아닌 거죠.

2. 대승은 중생이 할 수 있는 온갖 종교적 사유의 혼합-탕입니다. 저는 그 속에서 베다-우파니샤드-힌두적 변천을 보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배우려 하며… 대승의 일부는 왜 거기서 주저앉게 되는 것인지 추론해 보며… 나중에 다시 반복되는 서양철학사의 원형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대승의 어떤 부분들을 잘못 내세우는 경우 그것이 역사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건 님도 잘 하고 계시던 거 아닌가요, 예전에는?

1. 본인이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시는지 아시나요? 혹시 거기 학당의 언어적, 사유적 행태에 너무 많이 이미 습화되신 건가요?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한 이해는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의 일차적 유용성은 언어로 이해한 불교를 이해한 것으로 즐거운 착각을 하는 것이며
언어의 이차적 유용성은 불교가 아닌 것을 불교라고 우기는 것들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이해 가능?

좀 터프했더라도 양해바라며… 오히려 님이 저보더 터프함을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__()__


추가... 수부티 님의 종교성과 삶의 청정을 추구하는 열정은 존중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실함만으로 이미 성립된 체계를 극복하려면
그 체계가 성립된 역사성 이상의 치열한 노력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언감생심 아닌가요?

말도 안 되는 황당함을 보이는 얄팍한 인문학적 현학과
신뢰할 수 없는, 껍딱의 불교를 내 세우는 곳들이 일부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어디가 그런지?


역시 이해가 안갑니다^-^ㅋ

역시 불자라면 계,정,혜 3학의 실천으로 입증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을 초월한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고, 복을 기원하는 '남방'불자들의 모습에서 저는 이미 초기불교나 대승불교나 사실상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제가 대승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출가를 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속세생활 속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선정을 추구하는 모습이 저의 가치관과 딱 맞기 때문입니다.

초기불교의 천천히 움직이면서 알아차리는 방식으로는 속세생활 못합니다.ㅎ
마냥 집에서 호흡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아무튼 글쓰는 것은 이것으로 마치며,
금생에서 큰 성취가 있으시길 바랍니다_()_

다시 한 번
무상에 대한 지각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꽃 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될른지요?
선불교에서 말하는 초견성이
초기불교의 깨달음의 네 단계 중(사향사과)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요?
궁금해집니다.
10가지 족쇄를 기준으로 사향사과를 구분한다면
견성은 1단계 '흐름에 든 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계금취, 유신견 이 두가지는 확실히 날라갑니다)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탐진치도 열반(절대계)의 작용으로 보기 때문에 열반자리에서 탐진치만 다스릴 수 있으면 아라한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직접 체험해보고 판단할 문제일 것입니다.
  • 견성은 대승적 사유!
  • 2017.06.01 10:50
  • 수정 | 삭제 | 신고
여실견과 여실지로 검색해 보세요.

수다원은 계금취견-유신견-의심의 삼결을 넘어간 단계입니다.
칠청정으로 바꿔 말하면, 계청정-심청정-견청정-도의청정을 이룬 단계이고요.

견청정의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에 의해 유신견이 소멸되며

도의청정의 원인과 결과를 식별하는 지혜,
연기를 보고 법을 보는 지혜의 실현에 의해 사성제에 대한 의심이 소멸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견성은 법안이 아닌 그저 사량-분별-형성적 사유의 해체 단계로만 여겨지며 ~ 몰라!!! ~
계금취견-유신견-의심에 대한 “불퇴전”적 소멸의 자내증에 대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쌍팔배-성인의 길…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본다… 무선부지-무지불선-도종선지-득지열반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갈애=십분결-소멸은 "탐"-"진"-"치" 소멸의 연속적 스펙트럼의 길입니다.

도과를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__()__


  • 알~라뷰! ㄹ~이얼리!
  • 2017.06.02 08:51
  • 수정 | 삭제 | 신고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탐진치도 열반-절대계의 작용으로 보기 때문에
열반자리에서 탐진치만 다스릴 수 있으면 아라한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

탐진치 소멸이 불가능하다… 부처님 가르침이 아닙니다. 불교가 아닙니다.


탐진치 소멸이 불가능하다 = 열반이 불가능하다… 라고 해 놓고
탐진치는 열반의 작용, 탐진치를 열반에서 다스린다… 무신 말인가요?

합쳐서… 횡설수설… 수부티 님은 불교보다는 카톨릭이 더 어울리십니다.


비로자나불도 수용하고… 유일신앙의 사유도 무애~하시니까
성당을 다니세요… 괜히 대승에서도 터지고, 소승^^에서도 깨지고 다니지 마시고.

중생의 개인에 의해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된
사당은 언젠간 반드시 부패하고, 퇴전합니다. 새김~하세요. __()__


ㄴ 대승불교는 오온 이외에 '참나''불성'이라는 순수의식을 하나 더 인정하지 않습니까? 제 8식이라고 하나요?

이 8식을 '열반자리'로 보고, 이 열반자리만 찾으면, 탐진치를 소멸시키지 않더라도, 탐진치를 다스리면서

세세생생 윤회하는 식으로 '보살사상'을 설명하더군요,

마치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단'자리만 찾으면 '칠정'(희노애락)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기독교에서 '성령'자리를 찾으면 '육,혼'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사실 오온은 관찰대상이 되야하는 데,

오온 이외에 또다른 의식이 있어야 오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다스릴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오온으로 오온을 관찰하고, 오온이 오온을 다스린다는 기존의 전제, 저는 이 부분은 좀 더 직접 수행하면서 연구해봐야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하신 분도 직접 만나봐야 할 것이구요,

아무튼 결과적으로 이 속세에서 그 어떤 일을 하든 선정몰입할 수 있는 비법을 제시하는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대승불교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실제로 지금 어떤 일을 하든 잡념을 다 날릴 수 있습니다.)

근데 알라뷰님이 저에 대해 정확히 맞추신게,

이런 가르침이라면 사실상 기독교와 동일해지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지금은 성당을 다니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인 한국불교 생활하는 것도 정말 잘 할자신이 있는데,

승가에 대한 평판도 않좋고, 사회참여율도 낮기 때문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성당을 다니는 중입니다.


사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다른'종교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를 이론적으로 맞냐, 틀리냐 따지기보다는

오직 말그대로 '와서 보는'방식으로 판단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저는 초기불교와 관련해서

글쓰는 것을 자중하려고 하구 있구요 _()_





대승불교는 오온 이외에 참나-불성이라는 순수의식울 더 인정한다… 제8식=아뢰야식

수부티 님 말고도 많은 분들이 그리 주장하고 있더군요… 그렇다면…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열린 주먹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네요. 맞나요? 아님 무식^^?

그러나 제가 살펴 본 바로는…
대승불교의 잡탕적 역사를… 어떻게 분류하고,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꾸면…
대승불교의 가르침들 중 일부는 부처님 가르침과 연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봅니다.

용수보살을 너무 멀리 보내지 말고…
세친보살도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대한다면 말입니다.
그리하면… 제8식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심≒의≒식의 동네를 벗어나지 않으니까요.


불교의 교학이 너무 어렵죠? 특히나 여기 한국에서는 말입니다.
교학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해를 내 삶의 진실에 접합시키는 것… 이건 더 아쉽죠?

중생의 진실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의 강조가 올바른 이해를 막아선 안 됩니다…
지금 나의 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지평의 진실로의 접근을 막으니까요.

(초^^)-상식적 대승불교와 카톨릭의 세간적 종교성은 유사합니다. 훌륭합니다.
몰-상식에 저항하는 상식의 무유정법에만 철저해도 아마 님이 저보담 더 발전하실 겁니다.

수부티 님의 시계생천… 행복과 평온의 성취를 기원하겠습니다. __()__


사두__()__사두__()__사두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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