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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답바가 명색이라고? 퓨어담마에 대하여 | 상윳따니까야
진흙속의연꽃 2018.06.18 12:15
삶의 과정의 12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연결의 12연기에서 말하는 NamaRupa(명색)'가 간답바라고 했습니다.
간답바에 대해 퓨어담마를 통해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중유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밴드 댓글입니다.

퓨어담마에서 말하는 간답바가 무엇인지 보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간답바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중유가 아닙니다.
간답바는 mental body로서, 재생연결시점과 죽음식 시점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몸이며, 6도 중생 모두에게 mental body가 있는데, 동물계와 인간계에서만 그 멘탈바디의 업력에 따라 여러번 몸을 받게 되는 정신적 몸을 말합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중유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비평을 하시려면 퓨어담마를 자세히 보시고 비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간답바는 아비담마와 전혀 모순되지 않으며, 간답바는 연기를 매우 잘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간답바는 모든 중생들 중에서 화생하지 않는 중생들의 멘탈바디를 말합니다.

좀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윤회에서 멘탈바디의 형성시점이 재생연결시점이며, 화생의 시점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도 간답바의 형성시점만 보면 화생입니다.
이 화생의 시점에서 육체적 몸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태생, 난생 및 습생으로 온전한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생은 화생의 간답바가 자궁에 들어가서 온전한 육체로 태어나는 것이고, 난생은 화생의 간답바가 알에 들어가서 온전한 육체로 태어나는 것이며, 습생은 화생의 간답바가 습지(육체성장지)에 들어가서 육체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화생을 그 이후의 몸성장과 관련하여 태생과 난생과 습생으로 더 세분화하여 4가지 형태로 태어난다고 경전에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연기에서 바와단계와 자띠단계를 이 간답바와 관련하여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기가 이해되지 않으면 붓다의 담마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말씀하시는 의미가 받아들여집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경문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만 의견을 드리면 간답바가 명색은 아니고 무명-行에서의 心行(名=비색, 名身=나마까야)즉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身, 까야)'이라고 경에서 표현하는 그것이 간답바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무명-행&식-----그리고 명색-육입...입니다.

부기:意成身에 배대되는 것이 名色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 어느 경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정자와 난자 그리고 간달바가 태생의 조건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논리에도 부합하다는 생각입니다

M038. 갈애의 부숨에 대한 큰 경 (Mahātaṇhāsaṅkhayasutta)

58. 그런데 수행승들이여, 세 가지 일이 조화가 되어 입태가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합하더라도, 어머니에게 아직 경수가 없고, 태어나야 할 존재가 현존하지 하지 않으면, 입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합하고, 어머니에게 경수가 있더라도, 태어나야 할 존재가 현존하지 않으면, 입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합하고, 어머니에게 경수가 있고, 태어나야 할 존재가 현존하여, 이러한 세 가지 일이 조화되어 입태가 이루어진다.
  • 주인과 글쓴이만 볼 수 있는 글입니다.
요즘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데, 세상에 대한 관심은 장애가 되었으면 되었지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단지 10초 수식관을 하면서도 얼마나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도 선정에 들지도 못하면서 남의 수행에 도움을 주려고 이것 저것 생각하는데 참 얼마나 스스로 우스운지, 붓다의 말씀대로 남의 양만 세고 내 양은 세지도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됩니다. 사소한 애정도 수행엔 장애입니다. 단지 10초 동안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제게는요.
사견을 갖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도 참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남이 지적을 안 해주면 웬만해선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우니까요. 오늘도 말씀 감사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즉시 새로운존재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중유(중음신-영가)는 없습니다.

중유는 석가붓다님 가르침과 무아에 위배됩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중유는 거짓입니다. 따라서 49재.천도재는 없서져야 됩니다.

흔히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저승을 간다거나 한많은 영혼은 저승을 가지못하고 구천을 떠돌아 다닌다고 합니다.

또한 무당들은 자기가 모시는 몸주신이 조상신.조상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석가붓다님 가르침으로 비추어보면 다 거짓입니다.

기본적으로 무아(영혼없음) 입니다. 여기에는 중유는 없습니다. 만약에 중유를 인정하면 그것은 무아가 아닌 유아입니다.

그러무로 영혼이 저승을 간다거나 한많은 영혼이 구천을 떠돌아 다닌다거나 조상신이니 조상령이니 하는 말들은 근본적으로 성립할수가 없습니다.



특히 무당들에게 빙의된 존재는 조상신.조상령을 위장한 악귀들이며 마귀이며 마구니입니다.

무당들의 삶은 불행한 삶이며 끝은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무당들은 죽으면 지옥입니다.

한국 대승불교가 무당마구니들과 히히낙낙 즐겁게 노는걸 보면 참으로 웃기는 코메디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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