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율장의 가르침 (41)

팔정도라는 뗏목으로, 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자 | 율장의 가르침
진흙속의연꽃 2018.07.19 14:04
요즘 틈날 때 원불교 경전을 읽고 있습니다.

기득 한국불교종단에서는 원불교가 불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계율에 대한 태도만 봐도 저는 한국의 수많은 불교 단체들 중에서는

그래도 원불교가 가장 대승불교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계율에 매우 관대한 한국 출가승의 모습에 회의를 느낀다는 윗분글을 읽고 마침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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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한 사람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대개 계율(戒律)을 말하였으나 저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도리어 사람의 순진한 천성을 억압하고 자유의 정신을 속박하여 사람을 교화하는데 적지 않은
지장이 되는가 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목사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종교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공연히 배척하는 수도 없지 않지마는 대개는 교리의 신성함은 느끼면서도 사실로 믿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 이면에 계율을 꺼리어 주저하는 수도 적지 않사오니 이러한 사람들은 계율이 없었으면 구제의 범위에 들었을 것이 아니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귀하는 다만 그러한 사람들이 제도의 범위에 들지 못하는 것만 애석히 알고 다른 곳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은 생각지 아니하는가. 우리에게도 서른 가지 계문이 있으나 한 가지도 삭제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그대로 지키게 하노라. 다만 계율을 주는 방법에 있어서는 사람의 정도를 따라 계단적으로 주나니, 누구나 처음 입교하면 저 세상에서 젖은 습관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능히 지킬 만한 정도로 먼저 십계를 주고 또 계단을 밟는 대로 십계씩을 주며 삼십계를 다 마친 후에는 계율을 더 주지 아니하고 자유에 맡기나니, 그 정도에 이른 사람은 부당한 일과 당연한 일을 미리 알아 행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그대로 방임할 수 없나니 자각있는 공부인과 초학자 다스리는 방식이 어찌 서로 같을 수 있으리요.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더 많거늘 방금 귀하의 주장은 천 만인 가운데 한 두 사람에게나 적당할 법이라 어찌 한 두 사람에게 적당할 법으로 천만인을 등한시하리요. 또는, 사람이 혼자만 생활한다면 자행 자지하여도 별 관계가 없을지 모르나 세상은 모든 법망(法網)이 정연히 벌여 있고 일반 사회가 고루 보고 있나니, 불의의 행동을 자행한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나서면 일동 일정을 조심하여 엷은 얼음 밟는 것 같이 하여야 인도에 탈선됨이 없을 것이며, 그러므로 공부인에게 계율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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