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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법복음 (6)

이진법복음선교회 태승철목사 "....그가 전한 것이 복음인가?..." | 이진법복음
날로새로운 2009.12.16 12:38
다음 글은 California 에 있는 Grace Community Church 의 담임목사이자 Masters College & Seminary 의 학장으로계시는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입니다. 이진법복음 선교회 관련자 여러분과 선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 생각을 정립하시는데 도움이 될까해서 올립니다.   아울러 Eugene, Oregon GOW 일동의 이름을 선교회 홈페이지에서   삭제해 줄것을 요청합니다.  

타락한 지도자가 복직해도 될까

    얼마 전에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전해받고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그것은 불륜 행위가 드러나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목회자가 다시 목사직에 취임하는 예배 의식을 녹화한 테이프였다.   그는 약 일년동안 상담과 회복의 과정을 거친후에 교회의 축복을 받으며 다시 공적 사역을 시작했다.  

    이런일이 도처에서 일어난다.   회복사역을 담당하는 팀들이 타락한 목회자를 회복하는 방법에 관한 지침서를 손에들고 마치 고속도로 갓길에 주차되어있는 견인차량처럼 다음번에 타락할 지도자를 기다린다...

    교회지도자들의 범죄는 오는날의 기독교에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락한 지도자를 용납하기 위해 지도자의 자격 기준을 형편없이 낮추는데 있다.   교회가 타락한 지도자를 복직시키는 일에 열심을 낼 아니라 심지어는 그런일이 비교적 짧은 시간내에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오늘날의 가독교가 그 뿌리까지 썩어 들어갔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어떤사람들은 타락을 경험한 지도자가 사람들을 더 효적으로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가증스런 죄인을 교회지도자로 세워 똥통의 바닥을 긁어내는   한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하는 것이 정말 옳은일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본받아야할 리더십의 표상은 다름 아닌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교회는 그분을 닮아야 하고, 교회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교회를 위한 리더쉽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 조건은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이다.   딤전 3:2, 10, 딛 1: 7 참조.   이는 아무나 충족시킬수 없는 어려운 자격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죄는 지도자의 평판을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실추시켜 지도자로의 자격을 영원히 상실하게 만든다.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바울사도도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려워 했다.   그는 고린도 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말헀다.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음행을 염두에 둔 표현이 분명하다.   그는 음행을 스스로에게 짓는 죄로 간주헀다.   고전 9: 27 참조.   성적 범죄는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죄다.   성적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더이상 교회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한여자의 남자라는 흠 없는 평판을 영원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잠 6:33, 딤전 3:2 참조.  

    일 년동안 공직에서 물러나 상담을 받으면 한번 실추된 명예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 순전한 인격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성경은 절대 아니다.   한번잃어버린 신뢰는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도덕적 순결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 지도자로서 일할수 있는 능력을 영원히 상실한다...

    그러면 타락한 지도자를 용서하는 문제는 어떨까?   타락한 지도자라도 마땅히 회복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다시 교제를 나누는 것은 가능해도 다시 지도자의 임무를 맏기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불순종 행위에 해당한다...

    교회는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 죄를 뉘우친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던 이를 다시 복직시키는 일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날뿐아니라 하나님이 설정하신 기준을 낮추는 일이다.  

    현대교회는 타락한 지도자에 대해 왜 그렇게 관대하고, 또 그 를 복직시키는 일에 왜그리 열심일까?   나는 그 주된 이유가 오늘날의 교회안에 죄와 불신앙이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이 지도자를 바라보는 기대 수준을 낮추면 교회는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거룩함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턔도를 취하게 마련이다...

    교회는 도덕적 순수함을 지키는데 패배한 지도자를 용납하기위해 기준을 낮춰서는 안된다.   오히려 높은 자격기준을 굳게 유지해 교회의 순결을 되찾아야 한다... 교회를 인도하는 지도자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도자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다 (abomination).    
  

    Adapted from The Master's Plan for the Church
© 1991 by John MacArthur. All rights reserved. http://www.gty.org/Resources/Articles/A256
태승철 목사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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