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의 추억 이시은 정월대보름 아침부터 흩날리는 눈이 내렸다.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던 겨울이었건만,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하는 날이라 하늘도 건조한 땅에 화재를 막을 생각이었을까. 일 년 중 보름달을 처음 맞이하는 정월대보름은 설과 더불어 큰 명절이었다. 정월..
선운사 동백 이시은 선운사 동백꽃 보러간다는 생각만 품고 살았지 처음 찾아간 그곳에 선홍빛 꽃잎은 절 마당에 큰스님 모습으로 서 있는 등걸 굵은 동백나무에는 지고 없더라 절기를 못 맞춘 무심을 들켜버린 무색함을 모를 리 없는데 알고도 모르는 체 독경소리 매달고 서서 산사 감..
포구의 추억 이시은 갈매기 끼룩끼룩 목 풀고 협괘열차 서너 뼘 남은 해를 지고 노을 헤쳐 가던 소래포구로 낭만을 구하러 갔다 컥컥 숨 몰아쉬던 열차는 사라진 지 오래 전 느린 걸음으로 열차인양 다리를 건넌다 갯내음 질펀한 개펄 사이 물길 오가는 통통배는 추억을 들추고 목소리 변..
그 섬의 소나무 이시은 작고 아담한 그 섬에 가면 목 긴 기다림으로 바다 향해 팔 벌리고 선 소나무 날 반긴다 기다림이야 어딘들 없으련만 내밀한 언약 바다에게 일러주고 바람으로 목축이며 인연을 새기고 온 뒤꿈치를 따라오던 너 오늘도 아슴한 육지 바라보며 부르는 너의 노래에 귀 ..
봄비 속으로 이시은 저 꽃 좀 보아 망울망울 조막손 펴들고 타오르는 불길 지축 울리더니 꽃 데려온 봄비 꽃 데리고 가네 며칠 더 쉬었다 데려가면 얼마나 좋을까 꽃편지 오가는 길 수 천리 이어지면 얼마나 더 좋을까 다시 못 올 이별 아닌 만남이 약속 된 작별이건만 섬섬이 눈물 돋는 ..
마지막 달력 이시은 자락을 접고 세월 저편으로 몸 묻어야 할 너는 며칠 남은 날도 지나가면 홀연히 길 떠날 채비 한 때문인지 아쉬운 표정도 없이 벽 기대고 장승처럼 서서 훌훌 옷 벗은 나뭇가지 건드리는 바람에게도 말 붙이지 않고 말 건네는 내게도 대답이 없다 마지막 남은 하루 저..
샘물 같은 내리사랑 이시은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한참 말을 배우는 손자녀석이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어가는 것이 기특하다. 녀석이 궁금해 영상통화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며느리가 보내 온 사진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어난다. 두 달 전 두 돌을 지냈다. 강보에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