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공생의 도구는 세 가지
- 도서관, 자전거, 그리고 시
시집살이 노래 | 자료실
언덕에서 2015.05.19 06:00
시집온 지 이십오년이 넘었네요.
시어머니께 여쭤보면 절대로 시집살이를 시킨 적 없다고 하실만큼의 시집살이를 하고도
서러웠던 일을 꼽아보라면 손가락이 모자라죠^^
가해자와 피해자는 늘 다르죠.
가르침이었다.
횡포였다.
흠...시집살이는 갑의 횡포군요^^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것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해지는 부녀요에서도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달팠는데 알 수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노래를 불러가면서까지 그 설움을 달랬겠습니까.
  • 주인과 글쓴이만 볼 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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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래는 그시절 여성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
흥겨운 우리 가락 오래만에 어깨가 들썩여집니다. 감사합니다.
국민학교 때 글쓰기 말본에서 처음 읽었던 전래 부녀요지요.
시를 쓸 때 자연스런 발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던 셈인데
당시의 민초들 특히 여성들의 고달픈 삶을 알게됩니다.
짠한 내용들이지요.
이 노래 채집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일까요?
자주 들었던 기억으로 아픔과 함께 향수도 느낍니다.
아직 그 그림자가 진한 경우도 있고
어쩌면 영원한 숙제도 있지만
이렇게 사는 모습은 이제 전설적인 모형이 되었고,
이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그만큼 빠르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도 많고 큰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을 만들면서 알게되었지만 비슷한 내용의 부녀요가 경북 각지방에 퍼져있고
심지어 경기민요, 남도민요로도 전승되어 있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어느 지방이던 삶이 고달펐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군생활을 한 지역이 위의 부녀요 채집지인 '경산'의 자인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외출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동네에는 '단오제'라는 고유의 행사가 열렸고
신라시대 때 왜군을 물리쳤다는 장군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한장군 놀이'라는 무형문화제가 있음을 목도하기도 했지요.
아마 그래서 이 고장에서 비교적 위의 노래가 잘 보존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곳에서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동대구역으로 가는 차를 갈아타고 휴가를 간 기억이 있습니다.
경산 자인면... 끝없이 이어졌던 구릉과 포도밭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우리 모친세대가 마지막 시집살이 세대인듯 합니다.
요즘 며느님들께는 말도 안되는 거죠.
과거...
서유석씨가 이 시집살이 노래를 현대풍으로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시집살이가 사라졌다고 봐야하겠지요. ^^;
좋으 정보 감사합니다. 위의 사진 좀 캡처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시기 바랍니다. ^^
헌대 저노래가 만들어진지가 꽤 오래 됐을텐데 그후로도 시집살이가 대물림 되었다는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저곡의 주인공들 또한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켰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것이 세상살이의 일면이겠지요.
남자들의 군대생활이나 권위주의적인 모든 생활 방식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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