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공생의 도구는 세 가지
- 도서관, 자전거, 그리고 시

시(詩)를 읽다 (200)

강릉바다 / 김소연 | 시(詩)를 읽다
언덕에서 2015.12.04 06:00
시도 시지만 사진을 보니 누추한 별뿐만이 아니라 누추한 생각을 헹구고도 남음이 있겠습니다.
윤회사상이 어느 종교던 다 있지요.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 방법이 다를뿐입니다.

다음생애가 보장된다면 같은길을 다시 걷는일이 지겹다는 말, 누구나 인정할겁니다.
하물며 잠깐의 생을 산 부부들도 웬만하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니.
시인의 정갈한 표현이 독특하고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답답하고 외로울때 바다를 가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바다는 그저 삶의 현장이지만 다른이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잖습니까.
아마 한국인들이 이처럼 싯적인 민족인것은 삼면이 바다인것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번 동무들끼리 동해안 바다열차를 탄 적이 있었는데 60대의 초로들은 어느새 소년 소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바다를 보았다는 이유 하나로 말입니다.
위의 시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나면 그 감동 때문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곤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교회와 러브호텔과 시인이 많은 나라라는 문정희 시인의 표현에 매우 동감하는 편입니다.
엉터리 시인이 많다는 비유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의 시와 같은 정갈한 시를 쓰는 분이 있기에
좋은 시인도 많은 나라라고 자부해봅니다.
저 시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우리말로 잘 닦여진 고운 느낌을 어떻게 반의 반이라도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잘 닦여진 길을 가다보니, 맘의 이상과 꿈은 자꾸 더 멀어지고, 누추한 생각은 더 차고 들어 와서,
순수한 사랑도 이 세상에서 내 몰리는 것이 현실아닐까요?
바다, 가까이에서 보아도, 떨어진 언덕에서 보아도 사람 맘을 정화 시켜 주는 것이고, 내 속의 잡다한 생각으로 아플 때는,
겨울 살 에이는 찬 바람이 불어도 겨울 바다를 찾게 되지요.

바다가 파도가 높고, 그 파도 바위에 부셔지는 포말도 아름다운 곳은 역시 동해안이 제일이지 싶습니다.
제가 어릴 때 관광지의 기념품 상점에 가면
고동이나 조개껍질을 아교로 붙혀서 만든 목걸이 같은 것을 팔았고
또 나무를 횡으로 잘라서 나무결에다 김소월의 시 등을 적은 벽걸이 액자도 있었습니다.
그런 액자를 하나 구입한 적이 있는데
누가 쓴 싯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용은 이랬습니다.
"바다는 증오를 씼어줍니다."
짧은 글귀지만 어린 저에게는 울림이 컸던 기억이 납니다.

부산은 동해와 남해를 동시에 끼고 있다고 합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해 서쪽은 남해라고 구분하고 있지요.
동해는 동해 나름대로 서해와 남해는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입니다.
성경에 많은사람이 가는 길은 넓고 편하지만
길이 좁고 협착한 곳은 사람들이 잘 안 다닌다 고 했듯이
내면으로 가는길 은 익숙한 것 과 결별 인듯 하네요
    
Hetsae님의 표현은 참으로 멋있는 해석이고
이 시인 역시 그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감상할 맛이 나는 시입니다.
시를 감상하다 보면 늘 감탄하게 됩니다.
저런 표현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말입니다.
짧은 언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참 어려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렇습니다.
'그러지 마요'
이 부분이 감동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두 줄에서 주어의 위치를 살짝 비틀어 바꿈으는 것이
외국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짙은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아, 참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현대시는 운율과 서정을 잃은 산문시가 대부분인데 이 시를 읽노라니 박인희의 '겨울바다'라는 오래된 노래가 떠오르네요.
김소연, 그녀를 선명한 시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난해시들이 넘치는 시대에 시인이 기침을 하는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이죠.
저는 '주동자'와 '오, 바틀비'라는 시를 좋아해요!^^ 제 블로그를 더듬어 보니 지난 4월엔가 올렸더군요.


주동자 -     김소연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여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 지성사
<수학자의 아침>은 제가 갖고 있는데
이 시는 처음 대하는 느낌입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뭘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

저는 쉬운 시가 좋은 시라는 저만의 개똥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김소연 시인의 시 중에 어떤 시는 그리 쉬운 시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난해하지 않아서 자주 읽는 편입니다.
그렇군요. 제게도 있어요. 난해한 시집은 저도 그냥 빌려서 읽습니다.
최근에 어느 문학상에도 거론되었던 어느 시인의 시집을 정말이지 부푼 마음으로 읽었는데
저로서는 시집 전체가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일기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문과 산문시의 경계가 흐릿하였습니다.
A와 B를 잘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책을 애써 읽고 또 읽어서 겨우 한 편 골랐습니다.ㅜㅜ
그러니까 감상이 아니라 연구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시를 느끼려 하지 않고 앞뒤를 재고 평가하려고 했던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시집을 선물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로 시를 안 읽는 세상에 머리를 굴려도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문학의 힘은 참선으로 향하는 걸까요?
한번 읽고 울림을 주는 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난해시의 수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단순한 독자여서인지 모르겠으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공생의 도구는 도서관과 시와 자전거였지요.
무슨 연구 논문을 읽는 것 같은 난해한 시들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공생을 방해하는 그 무엇이 아니겠는지요.

저는 나름대로 시를 꽤 읽은 편이라고 자부하는 편인데
제게 무지 어려운 시들은 일반 독자에게는 어떨까 생각하니 답답한 느낌입니다.
네가 뭘 아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입니다. ^^;;
놀라운 시지만, 놀라운 '해설'입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설명'이 놀랍습니다.
놀라운 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면 (...)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러지 마요"
에서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인이 다 있다니......
선생님 말씀처럼 놀라운 시이고
또 시가 독자에게 부여하는 혜택이 감동이라고 한다면
위의 시는 그러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지 마요' 이 부분에 와서는 시인과 직접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좋은 시입니다.
이제보니 저 파도의 모습이 아주 좋아서 잘 어울립니다.
주가 붙어 있지 않은 걸 보니까 직접 촬영하신 것 같습니다.
하이고, 선생님,
제가 사진 출처를 적는다는 것을 깜박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제 정신머리가 이렇습니다. ^^;;

그리고 제가 그 정도 수준의 사진을 찍는다면 그야말로 대가가 아니겠습니까? ㅎ
아하, 이런!
그럼 당장 바꾸겠습니다.
시가 주는 느낌을 아주 잘 나타내는 사진을 고르셨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파도 사진이 도대체 얼마나 많겠습니까.
가령 석양, 강나루, 여인들.....
사실은 기가 막히는 일이죠.
예, 오래 전 내쇼날지오그래픽이란 미국의 사진 사이트에서 찾은 사진인데
그곳은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게재하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사진이 매우 마음에 들었고
김소연 시인의 강릉바다에 매우 잘 어울리는 시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론이라는 것이 생긴 것은 최근이니까
저 사진은 헬기를 타고 찍었음이 틀림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길..인생..사랑은 무엇일까요?
편안하고
안락한 많이들 걸었던 그 반듯한 길을 가는것?
그건..재미없는 인생 아닌가요?
우설님께서 생에 대한 깊은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대부분 그러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곤 하지요.
탁견에 감탄합니다.
   - 눈물.-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눈물 나고
아파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나면
좋아서 눈물 난다.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 돕는 걸 보면
고마워서 눈물 나고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욕심내는 걸 보면
슬퍼서 눈물 난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아침을 열어가세요
감사합니다.     -불변의흙-
방문 감사드립니다.
두번이나 읽었는데, 제 마음에 온전히 시가 오지 않아요. ㅎㅎ
마음의 준비가 없이 허겁지겁 읽었나봐요.
언덕님의 해설은 더 심오해요. ㅎㅎ
그런데 어찌 이렇게 해석을 잘할수 있어요.
시 전공 국문학자 아니시죠?

저는 언제나 이런 실력이 될련지요~
일단 바쁜 일상을 정리해야 될것 같은데, 휴우~

다시한번 시를 읽어볼께요~
ㅎㅎ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그것을 전공한 사람들만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려운 이론을 내세운 평론가나 문학 관련 단체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것은 작가정신이라기보다는 먹이사슬에 불과한지도 모르지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세 줄이 너무 멋집니다.
혹, 옮겨가도(펌) 되는지요 ?

어쩌다 Blue & Blue 를 이렇게 늦게 알게되었는지.
요즘엔 한 번씩 들어와 휘 둘러보는데, 오늘은 '강릉바다'가 그리워지네요.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 오시기 바랍니다.
이 시는 너무도 유명해서 검색창에 제목만 두드려도 주루룩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언덕에서님 안녕하세요?
겨울에 강릉바다가 생각나게 되네요.
너무 아름다운 시 잘 감상하고 가네요.
그럼 건강 조심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휴일 되세요.
그렇지요.
'너무 아름다운 시'라는 표현이 이 시를 정의하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고 편안한 휴일 되시길 바래요. ^^
제목만으로도 설레이네요~~
강릉바다!
잘 읽고 갑니다 ^^
제목으로도 설레이지만
이 시는 너무 아름다워서 읽을수록 더 설레이게 됩니다. ^^
Oz의 마법사에서 " 노란 벽돌길을 따라가라 " 는 말이 나오죠.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학습된 수많은 지식들, 정보들이 가끔은 우리의 판단을 결정해 버리죠. 우리가 정말 자신의 단 하나뿐인 사랑을 만났어도 노란 벽돌길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린 그 사랑을 포기하기도 하거든요. 도로시가 그 노란 벽돌길에서 벗어나서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듯..시의 화자는 아마도 다음 생에서는 지금보다 힘들더라도 정말 지키고 싶은 사랑을 이번 생에서 경험한 듯합니다. 전생은 기억하지 못하고 후생은 알지 못하나 정말 그런 사랑을 이 생에서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네요. 후세에 바다의 파도만큼 격렬한 사랑을 하려고 마음먹지만 간과한 것은         다음 생에서도 아마 노란 벽돌길의 저주는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시인의 소원처럼 되길 바랍니다
아, 참으로 탁월한 해석입니다.
아마 이 시인도 이렇게 읽어주길 바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탄을 금치 못하며 시를 다시 읽게됩니다.
감사합니다.
익숙한 강릉바다로군요 ㅎㅎ 좋은글과 함께 잘 감상하고 갑니다^^
시는 강릉바다이고
사진은 태평양 연안의 어디쯤 이겠지요. ^^;
좋은 시와 사진 다시 보러 올랍니다

광주 - 구례는 잘 다녀왔는데
12월의 남도풍경에 아직도 취해서 ...

근무하기가 버겁습니다
한창 바쁜 시기거든요 회사업무가 ...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순위는 회사 업무겠지요.

그 무엇인가에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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