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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148)

2016년에 다시 만난 영화 <벤허> | 영화 이야기
언덕에서 2016.09.21 06:00
추석 연휴에 이 영화를 봤습니다.
보는 내내 마뜩치 않았지요.
마무리 부분에
뒤돌아 보지 마라. 앞으로의 생을 살아라..란 대화를 보기까지요.
그 두 문장의 대사도 제 형편과 마음이 일치해서 들어온 말인지라.
다른 사람이 물을 때
추천하지 않는다고.
굳이 보고싶다면 보라고는 했지만요.
예전. 중학교 다닐 때 단체관람에서 서서 본 게 나았다고 말했죠.
이른바 ...
2016년에 맞는 버젼으로 리메이크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작소설이나 이전의 영화의 감동을 매우 떨어뜨렸다는 느낌입니다.

아쉽게도 감동과 의미도 함께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연출 방향이 문제인 듯한데, 둘도 없는 형제이자 친구인 벤허와 멧살라의 팽팽한 긴장 관계가
나름의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급하게 처리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차 경주 장면에 다다르면 둘이 왜 그렇게 싸운대? 라는 의문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이 글은 책 이야기도 아닌 영화 이야기여서... 그런 생각으로 읽어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재미있는 얘기구나 싶어서 제대로 읽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구나 싶었습니다.
백미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저는 기독교를 가슴에 둔 사람들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무릎을 치게 만든
"두 사람 모두에게 이유야 어쨌든 ~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부분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만든 2천년의 역사는 전쟁과 증오로 일관되니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리메이크 된 이 영화에는 뒷모습만 나오던 그 영화와는 달리 예수의 얼굴이 전면에 등장하는데요.
그것도 유럽인의 모습을 한 예수여서 감독이나 제작자가 어떤 생각을 지닌 사람들인지 알 수 있을 듯했습니다.

벤허는 수없이 돌려보던 영화라 이번에 벤허 개봉한다는
소리에 눈길도 안 줬었네요,
또 찰톤 헤스톤의 벤허의 재개봉인 줄 알았습니다..리메
이크 벤허일거라곤 생각도 안했었습니다   ... 디즈니의
말레피센트처럼 내용을 완전 뒤집는 것이 아닐 바라면
오리지널 벤허를 능가할 만한 영화는 이번 세기에도 아
마 탄생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원작의 해석을 전작과는 아주 다르게 해석하고 있고,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어서 뭔가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존 리들리의 각본은 <벤허>를 ‘복수’가 아닌 ‘용서’의 테마로 재해석하지만
섬세한 감정선 표현과 인물 묘사가 수반되지 않는 연출은 각본의 참신성을 전혀 살려내지 못한 느낌입니다.

아마도 대작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적합하지 않는 연출자와 배역진의 선택 등의 결과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원작이 좋은 경우도 있고 리메이크 한 것이 좋은 경우도 있는데
언덕 님의 <벤허> 영화평을 읽으니, 제 좁은 마음에, 극장에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나 카레니나>를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것과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했던 두 편을 다 보았는데
원작이 훨씬 감동적이어서 나중에 본 것은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어요ㅜㅜ
1959년 <벤허>의 위용 때문이겠지요.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1959)는 1950년대 대형 서사극과 70mm영화의 유행을 일으킨 기념비적 명작이었습니다.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1959년 버전의 아우라는 그 이전에 있었던 1907년과 1925년의 무성영화 버전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만큼 강렬한 것이었으며, 리메이크 내지 리부트가 일상화된 할리우드에서도
‘감히’ 이 작품의 리메이크는 시도하지 않았을 만큼 <벤허>의 영화사적 위상은 절대적이었지요.
그래서 티무어 베크맘베토프가 메가폰을 잡고 <벤허>의 새로운 버전을 연출한다는 기획은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우려와 논란을 낳았습니다.
결국 완성된 이 영화<벤허>는 그동안 쏟아진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은 해외에서도 참패를 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활르 보니...
벤허와 가족이 로마군에게 체포되어 노예가 되는 장면은 반란자를 무분별하게 보호하다가 생긴 일이죠.
벤허 스스로가 자초한 일인데, 벤허는 빌라도의 졸개에 불과한 메살라에게 구해달라고 애걸합니다.  
메살라는 벤허를 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로 보였습니다.
그 이후 벤허는 메살라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다짐하지요.
메살라 입장에서는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 의견은 원작을 변형한 스토리가 영 엉망이라는 점입니다. ㅎㅎ
  • 언덕에서
  • 2016.09.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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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신 부분이야말로 각본이 어설프고   연출이 잘못된 대표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 쉽게 용서하는 부분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세상살이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ㅎㅎ
아마도 이번에 개봉한 작품은 원작의 충실함 보다는 흥행위주의 볼거리를 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작위적인 측면이 너무 드러나 보여서 원작을 여러 번 본 사람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었을테고 실제 흥행도 실패한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거 저거 다 떠나서 1959년이면 지금과 비교불가의 환경이었고 CG 도 구현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원작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이번작품으로     확실하게 비교되었네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보관하고 있는 DVD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번 영화를 본 젊은이들 대다수가 '좋은 영화'라며 극찬들을 하던데
1959년 판을 보지 못한 탓이겠지요.
그 영화를 보았더라면 절대 그런 평을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문.사.철이라고 부르는 인문학에서
고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 내용관 무관합니다만.
요즘 국산영화나 드라마를 볼라치면 어째서 손가락을 빨땐 엄지척 해서 엄지빨고 검지빨며 어째서 먼 황당하거나 슬프거나 오살맞을땐 꼭 세면대나 변기통에 오바잇을 하는 겁니까?     솔까 외국 아이들 할 때는 걍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틈엔가 국산영화나 드라마에 심지어 갈비집에서 갈비 뜯으며 그러는 꼬락서니   원숭이도 아니고 말이지 거의 재수없고 짜증나고 구역질 나네요 그게 그리 멋있었나 조선감독들은?...
  • 언덕에서
  • 2016.11.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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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감사드립니다.
"스트예프스키나 톨스토이 류와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군림하여 가르치려고 하는 설교조의 영화가 아직도 있다는 것은 그들(감독이나 제작자)이 관객을 개나 돼지와 같은 우스운 존재로 알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민초의 설움을 한 방에 날려주는 날센 비판에 마음이 통쾌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저는 저런 류의 소설이나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요즘 독자들의 수준은 높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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