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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102)

박영근 시집 『 솔아 푸른 솔아』 | 한국 시집 감상
언덕에서 2016.10.21 06:00
그동안 소개하신 시집들을 보면 대부분 시대의 아픔이나 우울함, 가난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민초들의 한, 개인의 탄식이나 회한 등이 녹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삶이 그런 것이니 이는 당연하겠지만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던 대중가요나 연극 영화등도 이와 비슷했으니 시 역시도 당시를 대변하는 얼굴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 그리움, 이별, 여인, 해, 달, 별.어머니, 고향..
시어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단어들은 매일 먹는 밥과같아서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글과 작가의 실제 생활,
발표된 글과 작가의 인성,
이런 것들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질까.
가슴 울리는 시를 씀에도 만사가 궁핍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인을 접하고 드는 객적은 생각입니다.

올리신 시들을 천천히 음미했습니다.
시인의 단어선택이나 표현력, 그리고 글을 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을 하면서요.

날씨가 영 좋지 않네요.
요 며칠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청명한 가을하늘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랑, 그리움, 이별, 여인, 해, 달, 별.어머니, 고향...
이런 것들이 우리삶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고 또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2013년 1월에 이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 시집이 99권째니 종착역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도 머지 않은 시기에 그러할 듯합니다.

학창 시절 함께 문학을 공부하던 친구 중에 유명 시인이 있고
저 역시 습작을 꽤 했던 터라 상당량의 시집을 갖고 있어서
그 중 100권을 시대별, 문예사조별, 이념별로 균형을 잡고자 했습니다만
능력부족으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니 가을을 많이 타시는 듯합니다.
저는 요즘 덤덤하기만 하니 많이 부러습니다. 하하~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고 시란 것이 이렇게 하여 사람을 움직이는구나, 실감했습니다.
이른이니까 굳이 "어머니께"라고 하지 않아도 좋을 것 아닙니까?
그리하여 "외롭습니다" 하니 인간의 길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른에 시인이 되어 당장 그만두게 되었다니......
87년 6월항쟁 당시 그는 인천 보르네오가구의 노동자였던 박영근의 삶은 ‘시인 겸 문화운동가’로 요약됩니다.
2006년 5월11일,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타계할 때까지 오롯이 노동자 시인으로 살았습니다.
48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 역시 선생님처럼 "어머니에게"라는 시가 참 좋았습니다.
이념이니 뭐니를 따지면 뭣하겠습니까.
그냥 읽어서 좋은 느낌이 오니 좋은 시입니다.

언덕에서 님, 너무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시가 오롯이 다가오네요!!
시집 <솔아 푸른 솔아>는 박 시인의 사후에, 백무산 시인과 김선우 시인이 엮은 것이군요...
박영근 선생님이 전북 부안 출신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전주고 1학년 때 김지하의 '오적'이 실렸다고 폐간된 <사상계>와 <창작과비평>을 읽었다네요.
2학년이 되기 전에 자퇴를 하다니, 안희정 도지사의 자퇴 사유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멀리서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귀에 들려옵니다.

......................어느 비공개 카페에서 가져온 토막글을 아래에 덧붙입니다........................

자퇴한 그는 고등학생들로 이뤄진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시를 써나갔다. 이 당시 소비에트 혁명을 빗댄 창작시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고 가택 수색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김지하의 <오적>을 소지한 혐의로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18세이던 1976년, 잡지 <학원> 4·5월호에 그의 시 '눈1' '눈2'가 입선작으로 실렸다.

1977년 가을 무렵, 그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영등포 뚝방촌(양천구 신정동)에 방 한 칸을 구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삶에 깊이 동화하기 시작했다. 인천 동일방직 노동자들과 토론을 벌이고, 교회 청년회에서 활동하며 교회 회지에 시와 문학비평문을 기고했다.

또 민주화를 바라는 기독교·재야인사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대학연합문학서클 '청청(靑靑)'에 참여해 시 창작활동을 활발히 해나갔다. 고교 중퇴에 보잘 것 없는 노동자 신분이었지만, 그가 민중문학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는 문학평론가들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석양녘, 나는 번지수도 없을 법한 박영근 시인의 집을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갔지만 그의 초라한 행색 앞에 내심 놀랐다. 시인의 행색이 저리도 민중적이어도 되는 것인가. 나는 그의 박학다식에 놀랐고 전라도 출신치고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그의 서울 말씨에 대뜸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이승철 시인의 추모글 '문학이라는 이름의 가시면류관 앞에서' 중에서)

군대를 제대한 1981년은 시인에게 많은 일이 일어난 해이다. 그는 민중문화운동, 민중신학, 학생운동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류했다. 신촌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며 동인지 '말과힘'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 '반시(反詩)'(1976년 창간된 시 동인지)에 시 '수유리에서'를 발표하면서 비로소 등단했다. 당시 그의 모습은, 등단 직후 박 시인을 만난 시인 이승철이 당시를 회상하며 쓴 글로 가늠해볼 수 있다.
저도 고등학생 때 '오적'과 <창비>를 읽었습니다.
최창학의 <적>과 <창>같은 소설을 읽고 충격을 많이 받곤했지요. ㅎㅎ

비공개 토막글이라 하셨지만 모두가 다 아는 내용 같습니다.
위 시집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그 민중가요를 지은 분의 시집 이군요.
노랫가사나 시인이 쓴 시나 모두가 시라고 정의하면 맞는지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ㅎㅎ ^^*
  • 언덕에서
  • 2016.10.21 16:25
  • 신고
노랫가사나 시나 비슷한 것이겠지만
그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문학인들도 엄연히 존재하지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알려주는 예가 아닐까 합니다.
가다가 가다가
울다가 일어서다가
만나는 작은 빛들을
시라고 부르고싶다..

자꾸 눈이가고 마음이 가는 이 대목이
저에게는
너무 좋습니다..

안녕하셨는지요
10월이 마지막 한주가 열렸는데
초 겨울같아요~뉴욕은!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늘 변함없는 좋은글
소개하시니
감사히 쉬어갑니다
10월 말...
한국도 며칠 사이에 초겨울 날씨가 된 느낌을 줍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
그런 노랫가사가 생각납니다.
풍요로운 가을이셨으면 합니다. ^^
  • 삭제된 댓글입니다.
  • 2017.05.15 15:20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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