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공생의 도구는 세 가지
- 도서관, 자전거, 그리고 시

高朋滿座 (176)

안셀름 그륀 수상록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 | 高朋滿座
언덕에서 2018.06.20 06:00
시발 비용....... ㅎㅎㅎ 저도 그런 비용이 꽤 들어간 인생입니다. ㅎㅎㅎ
글을 읽으며 벌써 10년은 전에 어느 천주교 신자가 한번 읽어보라고 준 어느 성인 평전(?)이 생각났습니다.
읽긴 읽어야 할 텐데 싶어서 버리진 않았습니다.
이 책 서평은 참 특이한 책을 아주 아주 잘 소개해주신 글이어서 이 책도 꼭 읽어야 하겠구나 싶고,
그러면 오늘만 해도 꼭 읽어야 할 책이 두 권이 늘어났으니까 이래저래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납니다.
어쨌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읽었던 책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친한 벗이 권하기도 한 책입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란 책을 읽은 후,
수도사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중용의 삶을 살기 위해서, 저는 아직도 한참 모자란
인간이는 사실도 재차 느꼈습니다.
시발 비용...
날로 어려운 용어는 늘어가고
이해는 어렵고... 재빠른 시대에 살아남기란 난망한 일입니다. ㅠㅠ
  • 언덕에서
  • 2018.06.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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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비용도 그렇고
탕진잼도 어려운 말입니다.
이런 말을 빨리 배우고 익숙해져야 할텐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
  • 청심
  • 2018.06.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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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진잼은 탕진 재미 아닌가요?ㅎㅎ
요즘 젊은 세대나 어린 세대가 하는 말을 뭐가 좋다고 배우려고 하시나요?^^
좋은 말도 아닌데, 이런 현실이다보니 국어가 엉망진창이 돼 가고 있어요.
TV의 자막에는 맞춤법이 틀린 경우를 종종 발견하고요, 많은 시청자는 그게
맞는 것인줄 알고 그대로 따라하다보니 언젠가부터 국어사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가 표준어로 등장하지요.ㅠㅠ
  • 언덕에서
  • 2018.06.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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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가치가 있어서 배워야겠다기 보다는
무슨말인지 못 알아듣기에 알아야겠다는 말이 맞을 듯합니다.
흡사 자신이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ㅎㅎ

TV의 자막에 나오는 말들...
'1도 모르겠다, 가즈아, 넘나, 개무룩... '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방송국을 폭파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낍니다. ㅠㅠ
언덕님, 너무 과격하세요, 방송국을 폭파하고 싶다고 하시니...ㅋㅋ
그렇게 말씀하시니 하정우가 나왔던 영화 제목은 기억 안나고 방송국을
협박하는 내용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 언덕에서
  • 2018.06.2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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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폭파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는 것이지
설마 폭파하기야 하겠습니까?
제발 PD들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남녀노소 할것 없이 해외파들이 많으니 그런 부작용이 생긴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발 TV자막에 한글을 올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TV처럼 파급력이 큰 매체는 잘못 된 한글을 걷잡을수 없이 변화시키니까요.
예를 들어 요즘은 우리가 배웠을때의 '숨박꼭질' 이 소리나는데로 '숨바꼭질' 로
바뀌었고 '설겆이' 는 '설거지' 로... 이런 식으로 바뀐게 한두개가 아니에요.
TV자막에 소리나는대로 올라가던 한글이 언젠가부터 국어사전에 그렇게 바뀌어서
많이 올라가 있지요. 물론 시대에 따라 불편한 단어는 바뀔 필요의 단어들도 있지만요.
언덕님과 저처럼 '국어 지킴이' 들이 그래도 많이 있으니 그나마 지금의 한글이라도
유지 되겠지요.
요즘은 언어가 뒤죽박죽, 외국어와 섞이거나 은어, 줄임말... 이런 것들로 정신이
없어요.ㅠㅠ
  • 언덕에서
  • 2018.06.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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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남한 생활 적응에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언어 장벽이었다고 한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외래어 사용이 지나치게 많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비속어가 일반적이어서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거지요.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 일어사전에 등재된 외래어와 비어, 속어가 의외로 많아서
섬나라 사람들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비아냥을 했더랬는데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ㅠㅠ
안녕하세요... 훌륭한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고마워요... (BF)    
반갑습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2600년전에 태어나신 부처님은 이미 '중도' 의 가르침을 설파하셨지요.
늘 느끼는 생각이지만 공자의 중용이나 그 이후에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를 지탄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당하신 의견입니다.
그러나 그 의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타 종교를 맹신하는 이나 비판주의 철학자 등 만인의 적이 되고야말겠지요. ^^
그래도 언덕님이 저의 의견에 동조 하시니 힘이 납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할 말은 다 하지요. 그래도 못 알아듣는 그들을 볼때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언덕님처럼 열린 시각과 사고로 대한다면 그 다양한 종교는 얼굴 붉힐 일이 없겠지요.
아랍은 종교전쟁으로 몇년씩 살상을 저지르고 있잖아요. 그들이 믿는 종교의 이웃을 '사랑하라'
는 것에 위배되는 큰 죄 입니다.
종교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들 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타종교 신자에 비해 다른 종교에 관해 배타적이지요.
성경 속의 예수 그리스도는 관용적인 분이었으나
국교가 된 로마 제국의 세력확장과 맞물려서 전도방식은 공격적으로 변모해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전도방식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구요...
사실, 17세기 이후 유럽 제국의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침략과 약탈에는
기독교(그리스도교)가 배후에 있었지요.

아랍의 전쟁을 예로 드셨는데,
이제 대부분의 종교는 생활양식일 뿐이지,
인간의 구원과는 관계없는 듯 보입니다.
타고난 성품이 중요하고 교육을 받으면서 선한 인간이 되겠지요.
그래도 종교생활은 사람의 악한 부분을 순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선한 이웃 역할을 하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잊을 만하면 신문과 방송을 오르내리는
종교인들의 범죄나 일탈은 눈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보노라면...
유럽의 경우, 교회나 성당은 노인들만 보이더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느낌이 없지 않구요.
급변하는 시대에서 종교의 역할은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중세시대인가요?(역사를 정확히 잘 몰라서...) 카톨릭이 부패하고 타락해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해서 신교(지금의 교회?)가 나온거잖아요.

우리나라가 못 살던 6.25 사변 이후에는 종교가 순수하게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은 물질이 풍요한 시대에 욕심은 끝 없어져서인가 많은 종교가
그 옛날 타락의 길을 반복하는건 아닌가 우려가 돼요.
그래도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많듯이 종교도 그렇다고 믿고 싶어요.

유럽이나 아메리카 쪽은 교회나 카톨릭이 하향세이고 오히려 동양의 불교에
관심이 많아 명상을 하거나 지식을 탐색하기도 한다지요.
유행가처럼 시대에 따라 종교의 흐름도 바뀐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구사람들이 동양의 불교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아직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늘어나겠지만요...
오히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을 볼 때는 서구 사회에서 종교 자체는 점차 쇠퇴하는 것임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지요.

우리의 대통령과 일부 정부 지도자들은 “이슬람은 평화로운 종교다.” 라고 하는 반면에
또 다른 지도자들은 “이슬람은 평화로운 종교가 아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서로 다른 말들을 들으면서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이에 따라 이슬람의 참 모습은 무엇이며, 미국에 있는 무슬림 성직자들이 외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혹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 있는 무슬림 성직자들이 외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요...
진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알면 무엇이 복잡할까요!?
진리는 하나인데 인간의 생각이 늘 복잡해서 그게 문제이고 싸움이 끊이질 않겠지요.
'진리는 평범하다고'들 말하지요.
저는 꺼꾸로 생각하곤 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은 진리가 아니다'

인간의 생각이 복잡함이 진리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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