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공생의 도구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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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176)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 『침묵의 봄』 | 高朋滿座
언덕에서 2018.07.06 06:00
월남전의 고엽제 후유증을 생각하면 저자의 경고가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에게 참으로 작고 초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60년대 초등학교에서 머릿니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어린학생들 머리에다 DDT를 살포했으니까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거의 무지몽매했지요.

얼마전 숲이 아름다운 모처에 가니까 큰 주의판이 붙었는데 솔잎혹파리방제약을 주입했으니 가까이 가지 말라는 거였는데 그 약 역시 맹독성이라 소나무 회생뒤엔 수많은 곤충들이 희생될테니까 얻는 거 뒤엔 희생이 따르는 건 명약관화한 일인데도 생태계라는 큰 그림에 여전히 미숙한 상태입니다.

농사= 농약 이라는 공식이 언제 끝이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에서 예를 든 생물학적인 접근이 아직은 초기단계라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효과를 경험한 재배자들에게 이의 설득력을 얻으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이 필요해 보입니다.
고랭지 채소재배단지를 가보면 큰 기온차로 그나마 농약을 덜 쓰는데도 1년을 통틀어보면 엄청난 량의 농약을 살포합니다.
유기농을 하겠다고 덤벼든 일부 뜻있는 사람들도 얼마 가지못하여 손가락셈에 굴복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몇 년 소규모 무농약 재배를 해보니 거의 수확을 포기해야 합니다.
블로그에 사진도 게재했지만 이런 채소를 시장에 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육안으로 매끈하고 예쁜 모양이 아니면 소비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기에 재배자들은 그 다음 생각을 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농작물에게 상당히 안정된 농약살포라고 말들을 하지만 막상 농약살포를 보게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상시 먹어야하는 고추는 그야말로 농약으로 버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장 자랄때나 수확기에 소규모가 아니라면 사흘이 멀다하고 농약을 치지 않으면 매끈한 고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좀 덜하다고 하지만 빨리 빨갛게 익으라고 착색제까지 치니까 ..
실상 소비자들은 그런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보여지는 결과물에만 집착하니까 농민도 별수는 없습니다.

대량공급을 맞추기 위해 동물들 역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니까 집단 밀식사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대량의 항생제사용, 사료의 일정화,
마블링조절을 위한 골분이나 지방질사료공급 등 모든 가축의 디지털화로 진행되니까 구제역등의 집단발병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지요.
제가 농사를 할때 단위면적당 최대의 곡물생산이라는 슬로건아래 밀식재배를 권장했는데 밀식재배가 수확량을 좀 늘렸는지는 몰라도 병충해나 세균성 질병으로 인한 농약살포는 극에 달했습니다.

과수농가의 걱정은 벌이 없다는 건데 덕분에 수정을 위해 사람이 고단해졌습니다.
사람의 손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정교한 수분의 전달자가 사라지니까 이제야 한탄을 합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여전히 매끈하고 달달한 농작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 뒤에는 어제도 오늘도 상상을 초월하는 농약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쓰신 것처럼 코앞에서 방사능 문제까지 덤탱이를     씌우고 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농약과 함께 먹고 마시다 죽는다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어쩌면 위의 이야기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어서 일정 세월 뒤 세상이 확 바뀌기전까지는 그냥 경고로 그칠 것 같습니다.

어쨌던 글을 쓴 저자가 지금의 환경을 보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일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애써 안 읽게 되었던 책. 침묵의 봄입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고전 중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요.
매우 과격하게 성토하는 형식으로 서술하지 않았을까 짐작했지만,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무척 합리적으로 어쩌면 냉정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저자가 환경과 지구에 대해 걱정하고, 미래의 후손들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은 따뜻하기 그지 없구요...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매우 광범위해서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제초제로 시작해서 확대됩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DDT에서 이야기가 시작하지요.
저는 어린 시절, 저를 괴롭혔던 이와 벼룩을 없애준 고마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있었더랬습니다. 하하~~
그리고 유독한 유기화학제품으로 넘어갑니다.
해충을 죽이기 위해 살포된 숱한 합성 화학 물질들이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되어서
최종 포식자에 이르기 까지 끔찍한 수준의 집단 폐사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오히려 유전자가 간단하고, 한 세대가 짧은 곤충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빠르게 진화하거나 변형하여
내성을 길러 승승장구하여 번성합니다.
그러나, 유전자가 복잡하고 한세대가 긴 포유류들은 이런 화학물질들이 쉽게 지방 조직에 침착되지요.
이 축적된 화학 물질의 독성으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불임 상태가 되어
짧은 시간 내에 생태계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무서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제초제는 그 보다는 약한 약품이라고 하지만, 죽으라는 잡초는 그리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실수로 먹은 애꿎은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아이고...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습니다.

선생님의 댓글을 읽으니 소름이 돋습니다.
뭘 먹고 살아야할까요?
제가 죽어서 땅에 묻히면 제 시체가 썩기나 할까요?
식구들이 먹지 않아서 식탁에서 며칠 동안 방치된 스팸은 여전히 썩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기로 했는데
그 항생제 삼겹살에다 농약 범벅의 상추와 고추를 상상하니 걱정스럽습니다.
하기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이라도 좋다는데, 제 때깔은 어떨는지요? 하하...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기를 못 갖는 여자들이 많아요.

과거에 책을 읽다보면 매장한 어느 시체는 이장할때보니 몇년이 지났는데 하나도 썩지 않았다는 글을 대할때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 훨씬 젊어서 어떻게 그런 신기한 일이 있지? 하고 신비롭게만 바라봤는데 그런 이유가
다 오늘의 글과 무관하지 않나봐요.
인도 북부지역 또는 티벳이나 네팔의 고원 지대에서는 지금도 조장을 하는 부족이 있는데,
(조장을 함으로써 죽은 이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나름의 믿음 때문이겠지요)
문제는 요즘 독수리가 사람 시체를 잘 먹지 않는다네요.
용이하게 먹기 위하여 도끼로 토막내어도 그렇답니다.
아마도 인간의 몸은 짐승조차 피할 정도로 오염된 게 그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어마어마한 여성입니다.
여러 가지가 생각나지만 개발을 옹호하여 지구 온난화 같은 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그렇게 주장하는 그 뻔뻔함을 어떻게 유지하고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겠습니까?
세상은 망하거나 말거나 미세먼지야 나오거나 말거나 나만 유리하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아주 즐비합니다.
이런 여성을 칭송하면서도 여전히 하던 일은 계속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묵하는 봄"
제목도 멋지다 싶습니다.
모처럼 이런 책을 소개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가는 곳 마다 동식물들을 멸절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점은 인공 화학 물질을 손에 든 뒤로는 무엇이든 다 파괴해 버리는 이상한(?)존재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잡초도 곤충도 다 자신이 할 일이 있는데,
자연 상태계나 천적을 이용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비용도 절감됨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늘여놓은 화학 공장들이 이쪽으로 눈을 돌려 행정 조직에 로비를 해서
자신들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결국 이런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었겠습니다.

저자의 말이 다 맞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가 보낸 메시지는 후손을 위한 지구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근년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며, 경유가 친환경 이라고 호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희망을 가져본다면, 태안만에 흘렀던 그 엄청난 기름떼를 전 국민이 달려들어서 방제작업에 나섰고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불과 1년만에 물 빛을 되찾았던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 책이 아직 의미가 있다는 건 비극적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혜안을 가진 이들이 제발 좀 높은 자리까지 갔으면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부엌에서 사용하는 유독물질은 매우 호감 가는 용기에 담겨 있으며, 사용하기도 쉽습니다.
흰색 또는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입힌 부엌용 선반 벽지는
한 면뿐 아니라 양면에 모두 살충 성분이 묻어 있지요.
살충제 제조업자들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해충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DIY 안내책자를 만들어 배포합니다...
쉽게 손이 닿지 않는 구석, 캐비닛의 갈라진 틈에도 버튼을 누르듯 손쉽게 디엘드린을 뿌릴 수 있습니다.
  • 언덕에서
  • 2018.07.06 16:57
  • 신고
요즘 다시 쓰레기 분리 수거 이야기가 시끌합니다.
중국에서 폐자원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리도 난감해졌는데,
그러면서도 일본 폐자제는 수입한다고 하는 군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유는 재활용 쓰레기가 양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다음 정권에는 이 부분을 적폐라고 반드시 명시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종이에 코팅을 한 포장지나, 분리해서 버리기 어려운 포장 용기들을 볼 때마다
왜 이런 걸 제대로 규제하지 않은가 잠시 떠올리곤 했는데 이 계기로 좀더 좋은 시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농산물의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농약이 나왔겠지요.
먹을거리는 풍부해져서 인간의 수명은 배 이상이 늘었지만 생태계는 파괴되
고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싯점이에요.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긴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많은 사람
들에게 공급할수 있는 양이 부족한걸까요?
많이 고민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다 같이 공존할수 있어요.

제가 우리 아이들 어릴때 제초제가 멀리서 들어 간 상추를 먹고 쓰러질뻔한
적이 있어요.
제초제가 일반 농약보다 훨씬 더 독하다는 얘기를 그 이후에 들었지요.
그걸 먹은 후유증이 커 시간이 지나서도 장 건강이 안좋아져 한동안 치료를 받
았던 기억이 납니다.
벌레를 잡겠다고 뿌려댄 살충제가 어디 벌레만 잡겠습니까?
살아있는 모든 것이 제거 대상이지요...
박멸! 지구 끝까지 쫓아 가서라도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터미네이터마냥
인류의 무시무시한 번식력은 식량 증산, 수명 연장을 위한 전투적 행위의 전리품을 목표로 합니다.
그것은 인류의 밥그릇에 다른 어떤 개체의 숟가락도 들이대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지요.

고추와 상추와 같은 채소나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도 흐르는 물에 씼으면 농약이 제거되니
껍질채로 먹으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말을 믿어도 될지 의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만 아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제초제를 뿌리면 비가 올때 흙속에 스며들어 나무들의 줄기를 타고 과일의 과육에
퍼지니 껍질만 벗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제 몸이 체험한 경험담을 말씀드렸어요.
근래에는 항공방제를 하는 것을 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만,
대기 중에 살포된 살충제는 목표가 되는 대기 중에, 초목에, 강물에,
그리고 대지에 떨어져 쌓이면서 다양한 생물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지요.
그래서 강에는 더 이상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되고,
봄이 되었지만, 노래하는 새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침묵의 봄’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던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침묵의 봄>으로 정한 듯합니다.

화학물질을 해충의 방제에 사용하다가 오히려 환경이 오염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서 해충 방제에 천적을 활용하는 기법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해충방제를 손놓고 있으라는 주장은 아니구요...
방제는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환경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이용한 방법은 피하라는 주문입니다.
대개의 생명체는 나름대로의 자기보존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안전 범위는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안전한 범주에서는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있고,
그대신 정확한 정보를 국민 일반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위해성 평가와 위해성 관리, 그리고 위해성 소통이 불필요한 오해와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길이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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