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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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203)

고대소설 『삼한습유(三韓拾遺)』 | 古典을 읽다
언덕에서 2019.02.22 06:00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선조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대체로 생활수준이 낮을수록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한 것인가 싶었습니다.
최근에도 아프리카의 할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죽하면 자결한 향랑을 소재로 한 이런 소설이 나왔을까,
당시에도 그 사회상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싶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다 기록하면 몇 권의 소설이 될 것이라는 여성을 최근에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남편을 '주인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남편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건 전통도 아니고 단지 여성과 남성을 주종관계로 보는 것인데,
이런 호칭들이 일본 사회 의식을 콘트롤 하고 있다고 그곳 여성들은 생각하는 것이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일제시대 때 초등학교를 다니셨던 제 어머니도 이웃에게 아버지를 칭할 때
'우리 주인'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학자들의 저서를 읽으면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들은 남편에 버금가는 권력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던데
위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 뭐가 맞는지 아리까리한게 사실이지요.

오래된 이 소설을 읽으니 실사와 허구, 역사와 비역사의 교직을 통해 삼국시대의 인물,
중국의 인물, 불교․선계의 수다한 가상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요.
그들 모두를 그물망처럼 연결해 대화를 엮어나가고 있는 치밀하고 기발한 작가의 구성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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