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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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202)

고대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 古典을 읽다
언덕에서 2019.03.29 06:00
이 내용을 소개하신 것은 개인적으로는 감명 깊습니다.
실없다 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세종대왕기념사업회(1979)에서 낸 국역 "장릉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뒤편에 원문이 영인되어 있습니다.
그만한 사정도 되지 못하여 심지어 한 권짜리 "기형도전집"까지 갖다 준 데도 모르고 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지금도 갖고 있으니,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는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1/3쯤 읽고 포스트잍이 붙어 있는 걸 보면 다 읽지도 못한 채 넣어 놓았으니
그건 못마땅하고, 언제 이어서 읽자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니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더러 정치의 모습을 보면서 단종과 세조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에 대해 사사로운 답도 하지 못하는 빈한한 사고를 서글퍼함은 물론입니다.
저는 '정의'라는 개념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드신 단종과 세조의 경우를 보면
단종이나 사육신과 생육신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논리가 정의겠지만
세조와 그를 따르는 부류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논리가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히틀러나 모택동도 자신들이 정의라고 주장하였지 않습니까?
역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다수와 그에 희생 당하는 이들의 입장에 의해
정의나 진실은 늘 왜곡되기 십상이라고 판단됩니다.

저는 조선시대의 역사가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 같은 형태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왕권(대통령 중심제)이 약해지면 신권 강화를 주장하는 세력(내각책임제)이 강해지고,
반대로 신권이 약해지면 왕권강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발호하는 것처럼
역사는 늘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현재에도 진보와 보수라는 입장을 가진 두 세력은 늘 자신이 정의롭다고 주장하면서
너나 할 것없이 부패한 모습을 보이니
고 마광수 교수의 지적처럼 '별 것도 아닌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날 따름입니다.

'기형도 전집'을 소장하고 계신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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