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236)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 존 스타인벡 | 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5.04.20 23:40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람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 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

하지만 사람이 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땅을 직접 보지 않거나, 시간이 없어서 땅을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거나, 땅 위를 걸어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그 땅은 그 사람을 닮아 가지.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 없어. 땅이 그 사람이니까. 그 사람보다 더 강하니까. 그 사람은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아져. 그냥 재산이 많을 뿐이지. 그 사람의 땅의 하인일 뿐이야. 그것도 원래 다 그런 법이라고.

: 분노의 포도1, 78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4.7.11. (1판22쇄)
어머니는 몸집이 큰 사람이었지만 뚱뚱하지는 않았다. 출산과 일 때문에 몸집이 커진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회색 천으로 만든 헐렁한 겉옷을 입고 있었다. 천에는 원래 색색의 꽃무늬가 있었지만, 지금은 색이 다 바래서 작은 꽃무늬가 바탕보다 조금 더 밝은 회색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옷은 어머니의 발목까지 내려왔다. 넓적하고 강해 보이는 맨발이 부지런히 바닥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강철 같은 회색을 띤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뒤로 틀어 올렸는데, 숱이 적어서 매듭이 아주 작았다. 주근깨가 있는 강인한 팔은 팔꿈치까지 드러나 있었고, 오동통한 손은 섬세했다. 마치 통통한 소녀의 손 같았다. 어머니는 햇빛이 비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통통한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기보다 온화하게 잘 절제되어 있었다. 개암 빛깔의 눈은 온갖 고생을 다 겪고, 계단을 오르듯 고통을 극복해서 대단히 차분하고 초인간적인 이해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그것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가족의 요새며, 그 요새는 결코 점령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고통과 두려움을 인정하면 톰 영감과 자식들도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런 감정을 부정하는 법을 연습해 왔다. 또한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족들이 먼저 살폈기 때문에, 어머니는 별로 웃기지 않은 일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습관을 익혔다. 그러나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것은 차분함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아야만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또한 가족들을 치료해 주는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손은 점점 더 자신 있게, 냉정하고 침착하게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중재자로서 어머니는 여신처럼 냉정하게 항상 옳은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흔들리면 가족도 흔들리고, 자신이 심하게 동요하거나 절망에 빠지면 가족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분노의 포도1, 152~153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4.7.11. (1판22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 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넌 아직 어려서 앞날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난 그냥 지금 이 길만 생각해.

: 분노의 포도1, 256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4.7.11. (1판22쇄)
앨이 트럭에 시동을 걸어 주유기까지 후진시켰다. 앨이 말했다.
“가득 채워 주세요. 아마 7갤런 정도 들어갈 거예요. 그러니 기름이 흐르지 않게 6갤런만 넣어주세요.”
뚱뚱한 남자가 기름 호스를 주입구에 넣으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구제니 뭐니 말들은 하지만.”
케이시가 말했다.
“난 이 나라를 걸어서 돌아다녀 봤습니다.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가 보기에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항상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 뿐. 사람들은 왜 그걸 생각하지 않죠? 지금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도 알고 방법도 알아요. 움직여야 하니까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움직이는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걸 원하니까 움직입니다. 뭔가 좋은 걸 얻으려면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뭔가를 얻고 싶다면 직접 나가서 얻어야죠. 사람들이 화가 나서 싸우려 드는 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난 이 나라를 걸어서 돌아다니면서 당신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뚱뚱한 남자가 펌프로 차에 기름을 넣자 펌프 계기판의 바늘이 움직이며 기름의 양을 기록했다.
“맞아요.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되는 거요? 난 그걸 알고 싶소.”
톰이 짜증을 내며 끼어들었다.
“그건 절대 알 수 없어요. 케이시가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당신은 계속 같은 질문만 하고있으니. 당신 같은 사람들을 전에도 본 적이 있소. 그건 질문이 아니라 그냥 노래 같은 거야. ‘우리가 어떻게 될까?’ 이런 노래. 당신은 답을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오.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사방에는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쩌면 당신이 금방 죽게 될 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어. 당신은 뭘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오. 그저 자장가 삼아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지. ‘우리가 어떻게 될까?’”

: 분노의 포도1, 263~264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4.7.11. (1판22쇄)
♣ 서부의 땅은 이제 막 시작되는 변화의 물결에 불안해하고 있다. 서부의 주들도 폭풍 전야의 말들처럼 불안해하고 있다. 대지주들도 변화를 감지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변화인지 전혀 알지 못하므로. 대지주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공격한다. 점점 영역을 넓혀 가는 정부, 자꾸만 성장하는 노동조합 같은 것들을. 그들은 새로운 세금제도, 새로운 계획들을 공격한다. 이런 것들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임을 모르고서. 원인이 아니라 결과. 원인이 아니라 결과. 원인은 깊숙이 숨어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수백만 배로 늘어난 굶주림. 한 사람의 굶주림, 기쁨과 안정된 삶에 대한 굶주림, 이것이 수백만 배로 늘어났다. 몸과 마음은 성장하고 일하고 창조하고 싶어 안달하고, 그 열망이 수백만 배로 늘어났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후의 분명한 기능, 일하고 싶어 안달하는 몸과 단 한 사람의 욕구 충족 이상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벽을 쌓고, 집을 짓고, 댐을 만들고, 그 벽과 집과 댐 속에 인간 자신의 일부를 넣는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그 대가로 벽과 집과 댐에게서 뭔가를 빼앗아 온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며 단단한 근육을 얻고, 머릿속의 생각에서 분명한 선과 형태를 얻는다. 이 우주의 모든 유기체나 무기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하고, 자신의 생각이라는 계단을 걸어 오르며, 자신이 이룩한 일보다 더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이 변화할 때나 붕괴할 때, 국민적, 종교적, 경제적 사고의 좁은 뒷골목과 학파와 사상이 성장할 때와 허물어질 때, 인간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면서. 일단 앞으로 발을 내디딘 후 뒤로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반 발짝 물러설 뿐이다. 결코 한 발짝을 온전히 물러서는 법은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 이렇다는 것을 이미 아는지도 모른다. 검은 비행기에서 나온 폭탄이 시장에 떨어질 때, 포로들이 돼지처럼 찔려 죽을 때, 짓뭉개진 시체들이 흙먼지 속에서 추악하게 말라 갈 때, 그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때의 고통이 그렇게 생생하지 않았다면, 폭탄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목이 베여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폭격을 하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데도 폭탄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를 두려워하라. 폭탄 하나하나는 정신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대지주들이 살아 있는데도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를 두려워하라. 패배로 끝난 파업 하나하나가 누군가 발을 내디뎠다는 증거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고통받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 때문에 죽으려 하지도 않는다면 그때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의 근간이므로, 이것이 이 우주에서 독특한 존재인 인간 자신이므로.

: 분노의 포도1, 313~315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4.7.11. (1판22쇄)
그녀(애니)가 어머니(조드 부인)를 향해 반쯤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누구든 한 번이라도 자선을 받으면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에 상처가 생기죠. 이건(천막촌 이름으로 먹을 것을 외상으로 사오는 것) 자선이 아니에요. 하지만 자선을 한번 받으면 결코 잊지 못하죠. 틀림없이 제시는 자선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래요, 없어요.”
제시가 말했다.
“난 있어요.”
애니가 말했다.
“지난겨울에. 나랑 남편이랑 애들이 전부 굶고 있었죠.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날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구세군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우린 배가 고팠어요.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저녁 식사 때문에 우리가 설설 기게 만들었어요. 그 사람들이 우리 체면을 짓밟았다고요. 그놈들, 그놈들이 얼마나 미운지! 아마 조이스 부인도 자선을 받아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게 자선이 아니라는 걸 몰랐을 거예요. 조드 부인, 여기 천막촌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우쭐거릴 수 없어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물건을 줄 수 없어요. 대신 천막촌에 물건을 기부하면 천막촌이 나눠 줘요. 여긴 자선 기관 같은 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사납고 거칠게 변해 있었다.
“그놈들이 얼마나 미운지 몰라요. 남편이 비굴해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놈들이, 그놈의 구세군이 내 남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요.”
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 분노의 포도2, 188~189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3.11.27. (1판19쇄)
“우리 천막촌 구경하러 가자.”
두 아이는 줄지어 늘어선 천막들 사이를 걸으며 멍하니 넋을 잃은 표정으로 천막들 안을 전부 들여다보았다. 4번 위생반이 끝나는 곳에 크로케 경기장으로 꾸며진 평지가 있었다. 아이들 여섯 명이 진지하게 경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천막 앞에서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 긴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다. 루티와 윈필드는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도 끼워 줘. 우리랑 같이 놀자.”
루티가 소리쳤다.
아이들이 시선을 들었다. 머리를 땋아 늘인 여자 아이가 말했다.
“다음 경기 때 끼워 줄게.”
“지금 하고 싶어.”
루티가 소리쳤다.
“지금은 안 돼. 다음 경기까지 기다려.”
루티가 위협적인 표정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난 할 거야.”
머리를 땋아 늘인 여자 아이가 나무망치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루티가 그 아이에게 달려들어 손으로 때리고 몸을 밀치면서 나무망치를 빼앗았다.
“내가 지금 할 거라고 그랬지?”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이 지긋한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루티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나무망치를 꼭 쥐었다. 부인이 말했다.
“저 아이가 하게 해 줘. 네가 지난주에 랠프한테 한 것처럼.”
아이들은 바닥에 나무망치를 내려놓고 말없이 경기장 밖으로 몰려 나갔다. 그리고 멀찍이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루티는 아이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무망치로 공을 친 다음 그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와, 윈필드. 망치를 잡아.”
그녀가 소리쳤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윈필드가 지켜보는 아이들과 함께 서 있었던 것이다. 윈필드 역시 무표정한 눈으로 루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티는 일부러 보란 듯이 공을 쳤다. 발로 땅을 차서 커다란 먼지 구름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녀는 재미있게 노는 척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루티는 공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한꺼번에 친 다음 자신이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가 다시 방향을 바꿨다. 갑자기 그녀가 나무망치를 든 채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와서 놀아.”
그녀가 명령했다. 그녀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잠시 아이들을 노려보다가 망치를 던져 버리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이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땋아 늘인 여자 아이가 윈필드에게 말했다.
“다음 경기에 널 끼워 줄게.”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저 여자 아이가 다시 와서 얌전하게 굴거든 그 아이도 끼워 줘라. 너도 못되게 군 적이 있잖니, 에이미.”
경기가 계속되었다. 조드 네 천막에서는 루티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 분노의 포도2, 190~192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3.11.27. (1판19쇄)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잘 보았습니다.ㅣ 명절 잘 보내세요
미국 대공황시기의 모습이 우리 농사짓는 분들의 모습과도 흡사하네요. 애써키운 작물의 수요. 공급이 맞지않아 가격조정을 위해 억지로 농작물을 썩히고
눈물을 삼키는 우리네 농민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책 리뷰 감사합니다.
등록
텍스티콘 텍스티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