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등
실체가 없는 모양 찾아 부단히 길 떠납니다

마음 곳간 (31)

망상에 끄달려 번뇌하는 종 | 마음 곳간
법등 2019.01.26 09:44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
집착이란!
항상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항상하기를 바라고,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그 어느 것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항상하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오직 변화한다는 그 진리만이 변화하지 않을 뿐이다
변화하는 것이 진리라면 그대로 변화하게 내버려 둬야 한다
어리석은 우리가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거스를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대로 산다는 말은 변화하는 대로 변화를 받아들이며 산다는 말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모든 수행자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반드시 변화한다
내 마음도 변화하고, 상대방의 마음도 변화하고, 나의 사랑도 변화하며
나의 소유물들도 다 변화하고, 내 몸뚱이 조차 변화하여 공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는 그렇게 변화할 뿐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모든 수행의 시작이며 끝이다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변화에 내 삶을 내맡기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내 앞에 펼쳐지는 그 모든 존재며 경계
그 모든 것은 변화라는 진리의 한 모습이며 그것은 그대로 진리의 나툼이고 부처의 나툼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수행자의 첫 번째 수행은 변화하는대로 변화할 수 있도록
어느 것 하나 붙잡아두지 말고,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섭수’의 수행이다

선생님 말씀을 옮겨봅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
있는그대로 보라

우리가 세상 살다보면 마음에 안 드는 일, 화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안 좋은 소리 들었을 때, ‘내가 지금 이렇게 화가 나고 있구나’ 하고 먼저 알아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항상 ‘내가 어리석음에 빠지려고 하지 않나’, 이것을 챙겨보는 겁니다.
그 챙겨보는 힘이 점점 강해지면, 지혜를 증득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의 핵심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욕심을 버리라 했는데 ‘내가 왜 욕심이 일어나지?’ 하고,
머리를 굴리면서 분별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정념(正念)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수행의 기본입니다.
그 다음,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됩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그것이 진짜 공부이고 수행입니다.
그런데 ‘오늘 철오 스님 법문하러 온다 하는데, 어디 무슨 소리 하는가 보자!’
이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면 법이 안 보이는 겁니다.
‘아이고! 스님이 법문한다는데 부처님 법 잘 설하겠지’ 하고 마음을 팍 열면 법이 마음속으로 팍팍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살림살이를 단순하고 간단하게 꾸려야 됩니다.
복잡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고 세상 살 때 무슨 일이든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지혜로워지고, 단순한 게 바로 지혜입니다.
또한 일마다 만족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재가신자들이 이런 걸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부처님 법과 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잘 본다고 바깥쪽으로 마음을 돌리면 세상을 하나도 모릅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를 제대로 챙겨보는 지혜가 있으면, 바깥은 저절로 다 알게 됩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져서 자기 자신을 잘 보는 사람은 남도 잘 봅니다.
그런데 마음보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항상 대상을 통해서 생겼다 없어졌다 합니다.
마음이 마음으로 대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형상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생각도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온갖 것이 대상이 되면서 끊임 없이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대상을 선정해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 이것이 소위 말하는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대상을 통해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열심히 보면, 대상은 없어지고 알아차리고 보는 힘이 세어집니다.
그 힘이 세어질수록 지혜로워집니다. 그것이 공부의 핵심입니다.
나중에 대상은 없어지고 보는 힘도 필요가 없어, 보는 힘도 본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첫째, 번뇌는 마음 작용

따라서 인식이 일어나는 근거에 의하여 계산하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의 인식기관인 6근(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등의
인식대상인 6경(境)을 대상으로 할 때, 세 가지의 감정이 생깁니다.
즉, 괴롭다[고수(苦受)]고 하거나 즐겁다[낙수(樂受)]고 하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사수(捨受), 또는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고 합니다.
그리하여 6×3으로 18이 됩니다.
이 18가지에 대해 각각 더럽다[염(染)]고 하거나 깨끗하다[정(淨)]고 합니다.
또는 탐내거나[탐(貪)] 탐내지 않거나[무탐(無貪)] 합니다
. 그리하여 18×2로 36이 됩니다.
그리고 각각에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36×3으로 108이 됩니다.

둘째, 6근이 6경을 대상

고수·낙수·사수뿐만 아니라 좋다[호(好)]고 하거나,
싫다[오(惡)]고 하거나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평(平)]고 합니다.
그리하여 6×(3+3)으로 36이 됩니다.
여기에 각각 과거·현재·미래의 경우가 있습니다
. 그리하여 36×3으로 108이 됩니다.
이상 두 경우는 구체적인 번뇌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인식을 통해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계산한 것입니다.
반면에 다음은 구체적인 번뇌의 모습을 통해 계산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파불교(아비달마불교)에서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다소 복잡하여 우리를 좀 힘들게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앞서 6가지 근본번뇌를 언급하였습니다.
탐(貪), 진(瞋), 치(癡), 만(慢), 의(疑), 악견(惡見) 등입니다.
마지막 악견은 다시 유신견(有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으로 나누어져 총 10가지가 됩니다.

근본번뇌에 대한 설명은 다음 호로 넘기겠습니다.
이러한 번뇌는 고제의 지혜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집제·멸제·도제의 지혜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습니다.
사성제의 지혜로 끊어지는 번뇌는
사성제의 도리를 보았기(깨달았기) 때문에
끊어진 번뇌라 하여 견혹(見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성제의 지혜에 의해 끊어지지 않는 번뇌도 있습니다
이는 이후 더 깊은 수행을 통해 끊어지는 번뇌이기 때문에 수혹(修惑)이라고 합니다.
5견과 의는 견혹에 해당되고, 탐, 진, 만, 의는 견혹과 수혹 두 종류가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한 번뇌는 욕계, 색계, 무색계에 각각 연결되어 구분됩니다.
예를 들면 욕계의 탐욕은 끊기 쉽지만 색계, 무색계의 탐욕은 상대적으로 끊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색계, 무색계에는 진을 일으켜야 하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진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각각 삼계에 있는 견혹,
수혹을 이렇게 저렇게 계산하여 욕계의 번뇌는 36종,
색계의 번뇌는 31종, 무색계의 번뇌는 31종으로 총 98종이 됩니다
여기에 다시 근본번뇌에 따라서 일어나는 10가지 수번뇌(隨煩惱)를 합쳐 총 108번뇌가 됩니다.

아무리 많은 번뇌가 있다 하더라도 착한 마음으로 신명나게 정진해나간다면
번뇌는 단지 종자로 있을 뿐 현행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번뇌 또한 실체가 없는 것, 그 모습을 바로 깨쳐 안다면
‘백겁 동안 쌓인 죄가 한 순간에 모두 사라진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는 경전의 말씀처럼 평온한 마음이 자리할 것입니다.


나무 아미 타불^)^
글 몇줄 읽었다 하여 드러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그 글이 되려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 한다.

맞는 말이다
글을 생각 드러내는 도구로만 간직하면 그것이 되려 장애가 될 수있다
하지만 글의 의미를 실천한다면 그것은 지혜가 된다

문자반야가 머리속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문자반야를 토대로 바른 삶을 실천하는 수행법이 나온다

여기서 바른 삶이란,
그 지혜를 바탕으로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확고한 다짐 즉 보리심을 내고 실천하는 삶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들을 이용해 어설프게 자신만을 치켜 세우려는
또 다른 장애를 스스로 만들게 된다..
안녕하세요?새벽이 밝아옵니다
아름다운 봄날.꽃들 무엇하나 버릴게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지 못했습니다.안타까움만 더했던날.
서로 사랑하고.아껴주고 돌아보는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늘 건강빕니다.
귀한 인연밭이 열려 찾아주시는 행보가
덕을 쌓으시려나 봅니다^)^
무시로 들락거리는 손님들이 다반사지만,
별아님은 훈훈한 댓글로 마음씀씀이을 보여주셨으니
덕분에 감사드립니다  

마음 다스림이라!
이미 일어난 나쁜 법은 끊어 버리는 것이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법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좋은 법은
마음으로 능히 생겨나게 하는 것이요,

이미 일어난 좋은 법은 마음을 다잡아 잊지 말고 더 자라나게 하며
이 네가지 마음을 다스려 정진하고
스스로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줄과 뼈가 무너지고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나쁜 짓을 절대로 하지 말고

이것을 ‘마음 다스림’이라 하느니...

나무 석가 모니불_()()()_
정성을 다하는 삶은 비록,
그것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으로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언제 어느곳에서 무엇을 하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진솔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나무 석가 모니불_()()()_
안녕하세요? 저의방엔 편안하게 오셔도 됩니다.
제방이니까요.그래서 블로그 생활했습니다.
집이 ,,,강원도 산불쪽입니다     글을쓰고 전달하게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수있는일이 글뿐입니다. 요즘 어수선합니다.여러가지.
그런데 분류를 하고     비공개라 불편하셨지요?어떤분에 의해 그랬습니다.공개로 서너달있다가...쏘옥쏘옥 사탕처럼 빼가는데..다들 위로하시고 글을 읽고 싶어하시는 분만 들어오십니다.그런데 냉정한 블로그 세상인것같습니다 아까 알았습니다.어제든지 오세요 예.아가처럼 빈공간에 들어오셔도됩니다.한참 찾았습니다.1월달이 그립습니다.그땐 아무도 댓글을 달아주지도 않았고.바라지도 않았습니다.아깐 어떤분의 글을 읽고 울었습니다.좋으신분들도 많습니다. 언제든지 오세요 여유를 가지시구요,불교입니까? 전 아무것도 않믿어요 언제든지가고 화엄사처럼 편안하게 머무를곳을 못찾았습니다.그저 염원하고 별을보고 달을보고,고운발걸음 깊음 감사드립니다...늘건강빕니다.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걱정이 생겼을 때는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을 날려 버리듯이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고
자기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거리낌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고
근심없는 자,

평안에 돌아간 자가 될것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산중 초막에서
나무 석가 모니불_()()()_
“겉모습이 비꿘다고 네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스스로의 움직임이다

그럴싸한 변화에만 휩싸여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변화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복이 있다.”
참는 것이야말로 힘의 원천이로다
참는 사람은 악을 품지 않는 까닭에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반드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복이 있다” 는 그것을 다 누리지 마세요
복이 다하면 몸이 빈궁에 처해지게 마련이지....
복이 있거든 항상 스스로 아끼고 권세가 있거든 항상 공손해져라(하심)

살림살이에서 교만과 사치는 처음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가르침이 뛰어나더라도 무명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아픔을 외면하기가...!

또한 그 교리, 교학이 출중하더라도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말이다

“사람들이, 생명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는 가르침을 큰 뜻으로 삼는다
불교교리가 아무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배고프고 아파하는 생명을 외면한다면 심오한 교리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생명력이 다 함이 없기 때문에 아파하는 것은 중생들이다

그래서,
산중 불교에서 도심불교로 내려와야 한다 고 소신있게 말해본다
마음속 깊이 사유하세요 _()_

나무 석가 모니불_()()()
일심으로 염불하라  

사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희고 밝은 것이기에 염불도 필요 없고
, 참선도 필요 없고, 마음공부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잖아요.
쓸데없는 잡념, 번뇌, 망상, 좋지 못한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일으키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공부를 절실히 해야 해요.
생각을 완전히 비우기는 어렵지만 생각을 좋은 쪽으로 돌이켜
염불로 정화시키기는 어렵지 않아요.
염불을 하면 업장도 소멸되고 질병이나 고통에서 다 벗어나게 됩니다.
염불에만 마음을 두면 정신이 집중됩니다.
정신이 집중되면 정신통일이 됩니다.
정신이 통일이 되면 참선해서 깨우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염불수행이 어째서 좋으냐 하면
참선은 자기 힘으로만 하는데,
염불수행은 자력도 필요하지만 타력이 더 많이 증가되는 겁니다.
항상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리운 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편단심으로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부르면 되는 거지요.
그리하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
불보살의 법력이나 원력, 위신력의 힘에 업히는 겁니다.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한 임시대기소입니다.
극락보다 더 최고가 열반적멸(涅槃寂滅)이죠.
번뇌망상이 고요해서 다 사라진 그 자리를 적멸이라고 해요
. 나고 죽는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적멸락(寂滅樂)입니다.
극락세계는 성불하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 계시면서
성불 못한 중생들을 임시수용을 해서 성불시키는 교육도량입니다.
염불을 일심으로 하세요. 딴 생각하지 말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고통스러울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죽기 전에도 염불하고, 죽을 때도 염불만 해야 해요.
사람이 숨 떨어질 때가 가장 중요한 거예요.
숨 떨어질 때가 가장 고통이 심하죠.
과거에 지은 업이 일시에 다 나타나는 겁니다.
마음공부 하지 않은 사람은 그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공부를 많이 하고,
염불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숨 떨어질 때도 미리 알고
염불수행을 지극히 잘하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불보살 들이 나와서 영접을 하신다는 겁니다.

평상시 훈련을 쌓아야 죽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놀라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그러하기에 평상시에 훈련이 되어야 해요.


안녕하세요?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날이기를
기원합니다.오늘하루 행복하세요.
귀한 인연으로 찾아주신 님
서로에게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으로
날마다 행복한 하루를 열어 봅시다.

나무 석가 모니불-()()()-
일심으로 염불하라    

사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희고 밝은 것이기에 염불도 필요 없고
, 참선도 필요 없고, 마음공부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잖아요.
쓸데없는 잡념, 번뇌, 망상, 좋지 못한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일으키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공부를 절실히 해야 해요.
생각을 완전히 비우기는 어렵지만 생각을 좋은 쪽으로 돌이켜
염불로 정화시키기는 어렵지 않아요.
염불을 하면 업장도 소멸되고 질병이나 고통에서 다 벗어나게 됩니다.
염불에만 마음을 두면 정신이 집중됩니다.
정신이 집중되면 정신통일이 됩니다.
정신이 통일이 되면 참선해서 깨우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염불수행이 어째서 좋으냐 하면
참선은 자기 힘으로만 하는데,
염불수행은 자력도 필요하지만 타력이 더 많이 증가되는 겁니다.
항상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리운 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편단심으로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부르면 되는 거지요.
그리하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
불보살의 법력이나 원력, 위신력의 힘에 업히는 겁니다.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한 임시대기소입니다.
극락보다 더 최고가 열반적멸(涅槃寂滅)이죠.
번뇌망상이 고요해서 다 사라진 그 자리를 적멸이라고 해요
. 나고 죽는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적멸락(寂滅樂)입니다.
극락세계는 성불하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 계시면서
성불 못한 중생들을 임시수용을 해서 성불시키는 교육도량입니다.
염불을 일심으로 하세요. 딴 생각하지 말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고통스러울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죽기 전에도 염불하고, 죽을 때도 염불만 해야 해요.
사람이 숨 떨어질 때가 가장 중요한 거예요.
숨 떨어질 때가 가장 고통이 심하죠.
과거에 지은 업이 일시에 다 나타나는 겁니다.
마음공부 하지 않은 사람은 그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공부를 많이 하고,
염불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숨 떨어질 때도 미리 알고
염불수행을 지극히 잘하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불보살 들이 나와서 영접을 하신다는 겁니다.

평상시 훈련을 쌓아야 죽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놀라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그러하기에 평상시에 훈련이 되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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