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5 #2 KOR★ (13)

문명5-(#2-2) 일본군의 북진 view 발행 | CIV5 #2 KOR★
스마일루 2011.10.08 10:03
조선은 일본의 야욕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죠.

당시 대마도주는 중립적인 입장이였기 때문에 계속 조선 조정에 일본이 곧 올것이다 라고 보고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방군 수포등 군사적 문란과 재정적 문제로 제대로 방비하지 못했다는게 아쉽네요.

딱 당시 조선 정치의 모습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는 것과 비슷하더군요 ㅋ
예.ㅋ 1편에 쓴 내용이 그것입니다.ㅋ
진관체제 제승방략... 국사검정 준비할때 많이 보던 단어들... ㅋㅋㅋ
^^;;;;ㅋㅋ
화차 화력이 정말 대단하네요 ㅋㅋ 이거 화차로 이기는거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아주 멋지죠 화차~ㅋㅋ
중국 지원군은 보통 미션다깨고 일본 본토 공격하러 드갈때는 되야 오던데요. ㅋㅋ 그전엔 야만족들이나 만주족이랑 놀고 있던데..
느리긴 하죠.ㅋㅋ
두번째이야기가 벌써끝이라니 아쉽습니다.
스마일루님의 팬입니다......
맨날 눈팅하다가 오늘에서야 댓글올립니다;;;;;;;;;;;;;;;;;;;;
댓글 자주 올려주세요~ 이번 연재는 매편 연재분량이 전보다는 줄어든 편이에요.^^; 양해바랍니다.ㅠㅋ
오! 스마일루님이 제 예상보다 훨~~~씬 잘 버텨주시는군요. 전 이번화에서 전주 빼앗길줄 알았는데 ㅋ. 서울이 빼앗기면 경기도 일대가 넘어가고 경기도 일대가 넘어가면 해주까지 금방이니 평양이 빼앗기는건 시간문제죠. 이번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명나라 지원군이 올때까지 버티는게 아니라 서울을 사수하여 병력을 모아 반격해아합니다. 명나라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뒷북만 치는 역활이죠. 물론 역사속에서 그렇죠(그러면서 군량은 꼬박꼬박 받아먹고 덕분에 우리병사들과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었죠. 심지어 조선수군은 일본군과 전투로 죽는 사망자 보다 굶어죽거나 전염병으로 죽는 비전투 손실이 많다고 합니다. 유성룡이 쓴 정비록을 보면 명나라군사는 실컷 먹고 토하면 백성들은 그 토를 먹으려고 달려들고 힘이 없는자는 그냥 뒤에서 훌쩍거리기만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만큼 백성들은 명나라때문에 도탄에 빠졌는데 선조가 한짓을 보면 가관입니다.).
그리고 여진족도 관리 잘해야 합니다. 아니면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함깨 겪는 비극을 맞이할수도 있거든요.
크, 그 정도였나요 명나라 군대가.. 여튼 그 시절은 끔찍한 시기였지요. 흠...
임진왜란 때 피해입은 지역
평안도- 이곳은 평양 이남은 일본군에게 피해를 많이 보았고 평양 이북은 일본군에게 빼앗기지 않았어도 명나라 군대때문에 피해를 많이 봄. (임진왜란이 끝난후 광해군 때 후금군에게 패배한 명장수 모문룡과 요동에 있던 명군이 가도로 피난함. 그런데 후금군을 막지않고 도리어 조선을 공격하여 많은 식량을 약탈함. 정묘호란 이후 또 공격하여 조선백성들을 10000여명 넘게 죽이고         그 목을 후금군의 목이라고 속임. 그런데 인조를 중심으로 한 지배계층은 모른척을 함. 결국 병자호란 이후 임경업장군을 중심으로한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의 손에 전멸함. 아마 평안도 사람들은 명나라의 멸망을 통쾌하게 생각할거임)
함경도- 이곳은 원래부터 조선정부에게 착취당한 지역. 그래서 조선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음. 가토가 지휘하는 일본군이 오자 국경인과 국세인을 중심으로 한 친일파놈들이 왕자 2명을 넘겨줌. 결국 정문부장군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병이 친일파놈들을 다 죽여버리고 길주성을 탈환하여 가토의 일본군을 격파함 (게다가 조선이 전쟁중인것을 안 여진족이 약탈질을 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심각해졌음 임진왜란이 끝난후 조선기병 500여명이 여진족 10000여명을 대파함 - 노토부락 전투 이러한 함경도 최정예군을 이끈 김자점은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이 포위당했는데 급히 내려오다가 토산에서 패배한후 그냥 꼼작도 않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김자점이 청나라의 첩자였다고 합니다.)
황해도- 이곳은 신각(조선육전에서 최초로 승리한 장군 상관 도원수 김명원의 모함으로 참수당함)이 방비를 들인곳 그 덕분에 이정암장군이 여기서 연암대첩이라는 큰 승리를 거둠. 덕분에 의주가 안전해 졌고 선조도 그 공을 인정 선무공신으로 책봉함
경기도- 일본군에게 힘없이 빼앗김. 일본군은 한양에서 처음에 노략질은 안하고 신사적으로 대했지만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자 학살을 시작해서 매우 큰 피해를 입음. 나중에 내려온 명군에게 또 피해를 입음.
강원도-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이 6000여명을 이끌고 강원도로 진격. 조선군은 영원산성에서 저항을 했지만 결국 패함
경상도- 말안해도 알겠지만 임진왜란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 경상 우도는 진주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병에게 빼앗김. 일본군은 전라도로 가려고 진주성을 쳤지만 김시민을 중심으로 한 조선군에게 대패함 (1차 진주성전투). 이 전투로 인해 김시민 장군은 일본에서 이순신장군보다 더 유명해졌음. 나중에 일본군이 2차 진주성 전투에서 12만 대군을 이끌고 진주성을 초토화 시켜버림. (이때 경상도에 정기룡이라고 육지의 이순신이 있었는데 일본군과 60번 싸워 60번 이김 나중에 상주성을 탈환함)
전라도-         조선수군과 진주대첩, 그리고 웅치 이치고개 전투로 인해 일본군이 전라도를 유일하게 함락을 못시켰음. 결국 무능한 원균의 칠천량 해전으로 인해 조선수군이 전멸하자 전라도를 함락시킴. 일본군의 분풀이 때문에 전라도는 경상도만큼 초토화 됐음
충청도- 이곳은 신립장군이 충주에서 배수진을 치다가 진 곳. (그때 배수진이 최선의 방법이었음, 만약 문경새재에 방어선을 쳣다면 조선군 8천명은 아마 3천명도 안됐을 거임) 고경명의 전라도 의병이 충청도 금산성을 탈환하려고 하였으나 실패. 조헌의 700여명 의병이 다시 탈환하려고 하였으나 역시 실패. 하지만 일본군도 엄청난 피해를 입어서 결국 퇴각했음
제주도- 이곳은 조선팔도에서 가장 피해를 안본곳. 일본군 2척이 제주도를 공격하였지만 조선군 수백여명이 저지함. 따라서 제주도는 가장 안전하다고 봄.
울릉도,독도- 이곳은 공도정책 때문에 아무도 살지 않았고 물론 일본군도 이곳을 침입하지 않음

에고 이거 작성하느라 힘들다 ㅠㅠ
어이쿠;;;; 이렇게 많이 작성해주시다니..... ㄷㄷㄷㄷ
잘 읽었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ㅋ 연재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죄송하지만 23전 23승은 군사정권에 의한 허구입니다...유명한 명랑대첩의 경우에도 국지전에서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당시 일본선단을 섬멸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투후에 병력의 열세로 결국 목포쪽으로 후퇴하였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일본에 있는 비총, 귀총 무덤이 보여줍니다.         서남해로 도망간 조선수군에 대한 분풀이로 왜군이 순천 여수 지역등에 대해 무차별 살육을 자행하엿고 목을 베면 전공보고가 힘들었기 때문에 귀와 코를 베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해전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순천왜교성 전투와 같은 육지전도 여러번 치루었는데 최후에는 함락시켰지만 초기 수차례 공성전에서는 (명군의 비협조로 인해??) 실패 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10년 전에 밝혀진 학계 연구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았죠. 현재 대부분 임진왜란 전공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역사실 사실을 밝혀낸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깍이는건 아닌데도 말이죠...
백전백승이라는 허구는 박정희 정권 당시 군사영웅주의 우상화를 위해 어용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또 이순신 장군의 전공이 왜군의 호남지방(유일하게 남은 조운 수급지역) 진출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던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금산전투와 진주성 전투에서 옥쇄한 수많은 의병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일본육군이 호남에 그대로 진출했을테고 이순신장군의 활약도 지속될 수 없었을 겁니다. 조선의병들 특히 호남과 경남의병들의 활약도 언급되었으면 합니다^^ 당시 조선 군사체계 부패하고 와해단계까지 갔지만 군장비의 일부분에서는 일본보다 오히려 앞섰다고 봅니다.(대포, 활(편전), 신기전 등) 물론 개전 당시 군사들의 전투경험이나 조직에 있어서는 현저히 차이가 났던 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북선하나에 의지해 임진난을 극복한 것은 아닌데 말이죠..
쓰다보니 너무 많이 썼네요.^^;; 연재를 보면서 거북선 하나로 임진왜란이 극복된 것처럼 게임진행이 되어 보여서(ㅠㅠ) 아쉬움에 너무 주절거린것 같습니다. 항상 스마일루님의 연재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일루님의 연재를 지켜보는 많큼 좀더 폭넓은 관점의 역사적 서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예 감사합니다.ㅋ 저도 지적해주신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뭐 분명 해전에 대해서는, 즉 바다위에서는 패배한 적이 없다고 보는게 맞는 시각인듯 합니다. 말씀해주신 부분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_______^
헉... 그랬군요...
그랬군요... 저도 몰랐습니다.
군사정권의 허구요?ㅋㅋㅋㅋㅋㅋ 이분 순조 시대까지 통영에서 이순신 장군 제사가 계속 치러졌고 그 때마다 주민들은 상복을 입었다는 것을 알면 이걸 허구라고 하시려나? 실록을 읽어보면 정말 사람 하나를 이정도로 신격화 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말입니다.
  • 그냥
  • 2011.10.15 17:23
  • 신고
명량대첩은 승전이 맞습니다만... 해전은 원래 아무리 큰 승전이라도 상대 선단을 섬멸시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본 함대 133척 중 31척이 부숴졌고, 조선의 함대는 13척중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었으며, 명량에서의 전투에서 먼저 퇴각한 쪽도 일본입니다. 이걸 승전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 어느 전투를 승전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순신 신격화는 군사정권에 의한 허구다! 내가 파해쳐주겠어!'라고 임진왜란을 연구하려고 달려든 사람들 중 대부분은, 도리어 이순신 빠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이순신이 워낙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에, '보나마나 한국 인물이라고 과장했겠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23전 23승 기록은 절대로 허구가 아닙니다. 그와 견줄만한 제독은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봐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순신장군의 업적은 빛나야 합니다...23전23승 무패정신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19세기 초 나폴레옹과 마짱뜨고 있던 영국의 유명 제독 넬슨제독도...` 내 전승이 의미있다 해도 동양의 한 제독의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이순신장군의 해전사는 전세계 해전사를 통털어서 가장 위대한 해전이 아닌가 하네요..고작 13 갖고 133척이나 되는 함대를 무찔러 본적있나요...그것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 모를까 불리한 상황에서...
으으으 일본... 꼭 이기시길 ㅋ
ㅋㅋ감사합니다.ㅋ
ㅎㅎ 행주대첩이 좀 앞당겨지게 됐군요. 한성 방어만 어찌 잘 된다면 전쟁의 향방이 뒤집히게 되겠지요 ㅎㅎㅎ
ㅋㅋ 기대해주세요~
(일본에게) 큰 공을 세운 사람들

1위 선조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임금이었다는게 정말 행운이었을 겁니다. 이분은 의심이 많아서 원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선조는 도망만 다니고 요동으로 튀려고 했죠...왜군이 한양에서 철수했을때도 왜군이 다시 북상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매우 느릿느릿 내려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광해군은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헀을때도 무려 이천까지 내려와 의병들과 관군들을 독려했죠. 이런 잘난 아들이 두려운 나머지 외면을 했답니다. 선조는 의병장들을 되게 싫어 했는데 제 생각에는 자신과 많이 비교되서 였을겁니다. (의병장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선조는 전쟁발발시 도망만 다니고 자기 나라를 버리려고 했으니 비교가 될만 하죠.)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의병장이라는 석저장군 김덕령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정유재란 때 의병이 일어난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후 선무공신을 책봉할때 60전 60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육지의 이순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충의공 정기룡장군은 아예 3등공신에도 들어가지 못했죠. 게다가 전쟁중에 큰 궁궐을 다시 세우자고 하는둥 이상한 명령을 많이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자기와 자기랑 피난간 사람들이 명나라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일본에게 멸망되었을테니 자기가 조선을 구한거나 다름없다고 했죠.

2위 원균
이분은 우리나라의 3대 황당한 전투 쌍령전투(조선군5만 vs 청군 500. 조선 패), 칠천량해전(판옥선200척vs 일본수군 50척. 조선 패), 현리전투 (국군 3개 군단 vs 중공군 1개 중대. 남한 패) 중 칠천량 해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죠. 그당시 조선수군은 동북 아시아 최고의 수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수군을 모조리 끌고 나와서 부산을 치려고 했습니다. 칠천량에서 일본 함대 2척이 와서 판옥선 4척을 불사르자 이를 신호로 일본 함대 50척이 습격했습니다. 이때 원균이 모든 조선수군을 상륙시켰습니다. 상륙한 조선수군을 집합한 다음 원균은 이렇게 소리쳤죠. '모든 군대는 고향으로 돌격' 이란 명언(?) 과 함께 도망갔습니다.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동북아시아 최강의 수군은 이렇게 와해됬죠. 사실 일본수군이 조선수군을 이기려면 판옥선을 기어올라간 후 백병전을 벌여야 하는데 문제는 판옥선은 일본수군 함대인 안택선과 높이가 2m나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접근하기 전에 판옥선은 화포로 일본수군을 날려버립니다. 운좋게 접근한다고 해도 판옥선이 안택선을 부셔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판옥선을 갖고도 진 원균이 정말 대단합니다. 원균이 이긴 유일한 해전은 기문포 해전으로 나무를 하던 왜군 38명을 전멸시킨 해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조선군 사망자는 150여명... 원균은 바퀴벌레처럼 칠천량해전에서 죽지 않고 진주까지 도망간 다음 사라졌다고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균이 선조보다 순위가 낮은 이유: 원균이 칠천량해전 패배 덕분에 일본군은 전라도로 마음껏 진출할수 있었죠. 덕분에 전라도가 넘어가고 죽을 사람이 모래알처럼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균이 살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사람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만약 원균이 유능했더라면 조선수군이 전멸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이용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선조는 바로 이순신장군님을 죽여버렸을 겁니다. 원균이 너무 무능한 덕분에 이순신 장군님이 다시 복직되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위 명나라 군대
명나라 장수인 조승훈이 명군 5000명을 이끌고 의주에 온 후 평양성을 탈환하려고 했죠. 조승훈은 잘난척만 엄청한 후 조선군과 연합하여 공격했지만 대패. 5000명 중에서 겨우 수십명만 살아남아 조승훈 장군과 함께 도망갔죠. 조승훈은 명나라로 튄후 조선이 자기 명령대로 안해서 졌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명나라의 맹장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 4만 7000 여명은 제대로 잘 싸워줘서 평양성을 탈환했죠. 그 덕분에 일본군 전세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김시민의 진주대첩, 호남관군의 활약, 조선수군의 승리, 의병의 유격전 덕분에 이미 일본군 전세는 뒤집어져 있었죠.)   하지만 벽제관 패배후 이여송과 명군은 겁쟁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황금을 받고 일본군을 보내주는 등 오히려 일본에게 도움을 줍니다. 한마디로 명나라 군대 덕분에 일본군이 퇴각할때 아무 방해도 없이 조용히 부산포로 퇴각할수 있었죠... 그 후 명군은 조선백성의 목을 베어 일본군을 베었다고 자랑하지 않나 일개 쫄병이 황해도 관찰사를 죽이지 않나... 덕분에 군량미만 아깝게 됬죠. 사실 양심이 있다면 광해군때 파병해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육군은 직산전투와 평양성 탈환전에서 승리했으니 밥값의 10분의 1 은 치른 셈이죠. 하지만 문제는 명나라 수군입니다. 먼저 명나라 주력 함선은 사선입니다. 사선은 길이 15~20m에 탑승인원 60~80명정도이고 호선은 길이10m 정도에 탑승인원 20~30명정도입니다. 사선은 단층으로 지어진 작은 배입니다. 조선의 판옥선은 물론이고 일본의 아다케나 세키부네에 비해서도 훨씬 작습니다. 불량기 같은 중형 화포는 탑재가 불가능하고 호준포란 소형 화포만 탑재하는데 너무 약해 전투에선 사용하지 못하고 신호용으로나 씁니다.(진린은 그런 호준포로 왜선 수십척을 격파했다고 우깁니다.-_-;) 여기에 명나라 군대의 비상식적일 정도로 형편없는 전의를 더하면 사실상 바다에서 왜군을 상대하는건 무리, 그래서 기효신서를 지은 척계광은 육지에 올려놓고 싸웠습니다.노량해전 당시 도독 진린과 등자룡은 판옥선을 얻어 타고 참전했는데 등자룡의 판옥선에서 실화가 발생해 등자룡이 죽고 진린도 왜적에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한것을 이순신 장군이 급히 구하러 나섰다가 그만 본인이 총에 맞아 전사합니다. 진린은 굉장히 침통해했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조선 수군이 세운 전공을 모조리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에 이런 포위된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 창칼로 왜군 수백명을 죽였다고 헛소리 나불댑니다.(선조31년 12월 21일 실록참조)

참고- 내 배경지식, 각종 역사 블로그 등

연재 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
문명5에서 아시아 권 문명에는 머스킷 총병이란 이름대신 조총병등 아시아지역쪽 이름에 맞게 바꾸어주었으면 좋겠군요.

물론 밸런스를 위해 효과는 똑같아야 하고요... 이름만.
뭐 그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거죠 뭐.ㅋㅋ
부산은 만주에 팔고, 자유완성 기술자로 대구에 히메지성(...)을 지으면 대구를 지켜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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