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5 #2 KOR★ (13)

문명5-(#2-4) 탄금대 전투 : (2) 김여물과 신각 view 발행 | CIV5 #2 KOR★
스마일루 2011.10.22 00:22
저 중요한 시기에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참 많았죠? 에휴...
세종조-세조시기때 이런 난리가 터졌으면 잘 막았겠지만 그때 당시 정말 군역이 막장이라.. 결국 서울을 포기하는군요.
서양인들 이거 하면서 임진왜란 관련해서 위키 많이 뒤질듯 합니다. 그리고 놀라겠죠.
맞습니다. 좀 문제가 있었죠.
이순신만한 장수가 육지에도 있었으면 막을수..있었으려나요..
분명 쉽진 않았을 겁니다. 수적 차이가 너무 심했으니 말이죠. 그래도 일본군의 진격속도는 충분히 늦췄을테고, 그랬다면 큰 도움이 되었겠지요.
1594-5년쯤에 전주-목포 사이에 의병이 생기면 저희 조상님 연재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김덕령' 장군이신데, 광주 출신 이실겁니다. 그나저나 명나라 군대 뭔가요 ㅋㅋㅋ 곧 오기야 하겠지만 진린은 고사하고 병사들이 코빼기도 안보이다니요 ㅋㅋㅋㅋ
그러니까요. 좀 느립니다.ㅠㅠ
조선의...조선의...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버리시다뇨!!!!!!!!!!!!!!!!!!!!!!!!!!!!!!!ㅜㅜ
아 역사적으로도 한양을 버리고;;; 게임상에서도 한양을 포기해야하니;;; 이무슨....ㅜㅜ
어쩔수가 없네요.ㅠㅠ
'한니발 전쟁'을 극복한 공화정 로마가 생각나네요..같은 반도국가이면서 역사 진행 방향이 서로 달랐죠..

당시 로마는 수도에만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국가가 아니라 면과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러니까..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동맹도시를 포함한 '로마 연합'의 패권국이죠....
한니발이 이끈 카르타고군과 16년이나 전쟁을 겪었으나 다행히 수도가 함락되지 않았음.
정설에는 로마같은 대도시를 공격할 때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고 배후에서 동맹군이 가담하여 수도 로마를 포위하는 카르타고군을 공격할 우려가 있었고, 한니발 자신이 전략상 수도 함락보다는 '로마 연합'의 해체를 우선 했기 때문..

로마인은 동족끼리 싸울 때에도 타민족과 호응하면서까지 조국을 위협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공동체 의식이 강했고 특히 시민군이었던 로마 보병의 위력이 대단했음..단 기병이 너무 약해 갈리아,누미디아 등 다른 기마민족의 힘을 빌렸지만요..ㅋ

암튼 한니발 전쟁 이후 '전쟁기계'로서 눈을 떠 군사대국으로 급성장해 대륙과 해양 양면으로 진출한 로마..
임진왜란에다 병자호란까지 엄청난 대가를 치뤘으면서도 반도의 지정학적인 문제(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줄다리기 균형점 역할)를 해결못하고 쇠퇴한 조선..

어디서 읽었는지 몰라도..'지정학은 역사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그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로마에 대해서도 문명4워로드 연재에서 다룬적이 있었는데요, 역시 지정학 중요하죠... 제 문명 연재들 대부분의 기반이기도 하구요. ^^
하... 이렇게 해서 왜나라가 어머니의 나라를 야금야금 먹고 있군요.. 나쁜 것들... 뭐 백제와 신라가 어머니의 나라였으니까 조선은 상관은 없겠지만...
^^;;;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ㅋㅋ
해주방어선에 거북선2개 옆에있으면 막기 좋을꺼 같은데... 남해 막아도 어자피 병력올라올꺼면 그냥 지원사격하는게 더 나을수도 있겠네요... 스마일루님이야 이순신 재현한다고 일부러 저런거 같긴 하네요 ㅋㅋㅋ
그래도 넘어오는 애들이 있어요. 막아주긴 줘야 되거든요.ㅋ
히데요시가 병농분리했습니다.   병농일치와 병농분리는 전문적경험과 화력이 확연히 다른 건 확실합니다. 정말 조총을 다루는 병법과 실력 조총 생산량이 당시 독점하다 싶고 전국시대 쌓아온 내공은 상상이 안갑니다. '노부나가가 쌀을 찧어 도요토미가 반죽한 떡을 힘안들이고 도쿠가와가 먹었다'   조선은 정말 전라도를 거점으로 유능한 이순신에 의해 재해권을 장악해 보급로를 끊는 것이 결국엔 의병의 일으킴으로 연결됬고 종결되는 걸 보면 역사의 필연같습니다. 히데요시에 의한 전쟁의 몰락이 불안정하게 통일된 일본을 에도막부의 설립으로 안정화시켰고 문화를 피웠죠. 전에 제가 분단된 한국은 양질의 설비로 70%의 석유를 수출하는 가능성의 섬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만.   통일된 한국이나 분단 된 한국은 없습니다. 임진왜란도 결국 가능성을 한국으로부터 찾으려는 일본의 오랜 망각이었습니다. 섬나라는 결국 외래문물이 들어오면 그대로 흡수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점에서 한국은 다릅니다. 하늘이 열린 날(개천절)이 국가행사인 국가는 없도 홍익인간사상이 국조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자본주의4.0 신자유주의가 아닌 한국형 <홍익인간자본주의>가 대안이 될 필연성은 가능합니다. 정치인도 아니고 일개 20살이지만.. 플라톤과 공자가 맞붙는 국가가 한국 뿐이라면 중국의 근대화는 우리는 위대한 중화사상이라는 중국것에 미개하지만 활용할만할 서양의 기술을 접목할 뿐이다. 서구제국주의 아편전쟁 청일 전쟁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은 지금도 서구에 적대감을 갖고 있고 일본은 완벽한 탈아시아로 관습까지 완전한 서양것 바꿔 열등감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뚜렷한 비전이 없습니다. 대륙이면서도 섬나라 '중국'과 동북아시아 외국인 '일본'... 정말 차축시대에 따라 미국에서 중국아 주도권을 쥘까요? 유교(우선인간이되어라)仁-보수적관습이라면착각. 유교는 타종교와 호환가능) + 자연과학 + 홍익인간 => 결국 유교를 정확히 구현하고 이해하는 곳은 한국뿐입니다. (플라톤)자연과학은   본래 과학문명인 우리에게 체계적성과를 주고 홍익인간사상은 동반성장 + 고용 + 복지를 지속하고 건전한 자본주읠 낳을겁니다. 한국에서 답은 필연입니다.   수많은 침략과 전쟁에서 우리는 필연을 요구받은 겁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한국은 놀라운 <엠파이어 팍스 코리아>이고 새 자본주의를낳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에 대해선 스마일루님의 연재에서 잘 다뤄졌음합니다.
쉽지 않겠는걸요..ㄷㄷㄷㅋ
항상 잘보고갑니다 ^^.
특히 조선의 장수분들께 더 감명받고갑니다^^.
이과출신이여서요, 거의 전혀 모르네요;; ㅎㅎ.
저도 이과출신이라 마찬가지입니다ㅋ 찾아보며 하고 있어요ㅋ
  • 가시나무
  • 2011.10.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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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사이 난이도 신으로 임진왜란 깼는데. 기대한 것 보다는 안 어렵더군요. 스포일댈까바 조심해야합니다만.. 명 지원군은 서울 회복하고 났더니 물 밀듯이 오더군요. 이거 뭥미..;;;; 누루하치는 가끔씩 와주시는 센스.이건 또 머셔..;;;;
  • 가시나무
  • 2011.10.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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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회복할 때 에이스 컴뱃 6 였었나, 동영상이 기억나게 만들더라는. 그 동영상 대사가 "제군들, 오늘 우리는 수도 그리스메리아를 회복한다."..
예ㅋ신으로해도 별 차이는 없더군요. 1편에서   설명드린것처럼, 바다를 건너와야 하다보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대신 일본까지 점령하기는 좀 어려워지구요. 본토에 병력이 바글바글하더군요ㅋ
  • 가시나무
  • 2011.10.24 10:06
  • 신고
잃었던 도시 다 회복했더니 그냥 승리창이 뜨던데요. 부산 회복하고서 나가사키 정벌을 계획 중이었는데, 승리창 떠버려가지고 멍 했다능. 순간 의욕 상실. "몇 턴만 조금 더" 를 클릭하면 댑니다만, 승리창이 떠버리면 급 의욕 상실이 되어버려서.. ㅎㅎ
이상하다 난 왜 개척자로 해도 잘 안되지
제목이 김여물과 신각인데 신각이 누군지 설명을 안해 주시넹...
개인적으로 임진왜란하면 이순신, 곽재우, 권율, 김시민, 신립, 이여송 이정도밖에 모르는데...
윗글을 제대로 안 읽으셨군요ㅠㅋ 끝에 있어요ㅋ
  • 가나다라마바사
  • 2011.10.26 11:02
  • 수정 | 삭제 | 신고
겨우 2줄 있잖수...
신각이 어떤 인물인지 말해줘야죠
걍 일본군 전멸시킨뒤 누명쓰고 참수당한것만 말해주셨음
신각은 부원수이며 전에는 황해도절도사였습니다. 조헌과 친척사이였죠. 조헌이 일본의 침략을 알아채고 신각보고 병장비를 수리하라고 했죠. 신각은 그말을 듣습니다. 결국 그 덕분에 황해도에서 의병장 이정암이 연암대첩 (조선군500vs 왜군 6000) 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덕분에 선조가 더 안전해 질수 있었죠. 그런 말을 올리셨으면 좋았을텐데. 함튼 연암대첩을 기대해봅니다.

'너희들이 병으로 싸운다면 우리는 의로 맞선다!' - 연암대첩에서 의병장 이정암의 말
드디어 기다리던 의병이 나왔군요. 홍의장군 곽재우의 군대인가? 근데 화려한 데뷔와 함께 곧 전멸하겠군요. 문제는 전주와 한양이 점령당하다니... (지금 전 전주에 있음 ㅠㅠ) 태조 이성계가 지하에서 통곡하겠군요. 자신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전주와 한양이 점령당하다니. 평양까지 빼앗기는건 아니겠죠? 평양 빼았기면 명나라지원군만 기다리며 손가락만 빨아야해요. 전 조선이 혼자힘으로 일본을 무찌르고 일본본토까지 점령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역사속에서도 한양이야 점령되었었으니까요.ㅋㅋ
의병은 서울이 점령되야 나옵니다.
아, 원래 그런거군요?ㅋ
김(자) 여(자) 물(자) 되시는분의 후손입니다
김여물과 명(중국) 8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찾을수가 없내요
20여년전 신문에 실린 글귀라 기억이 감감, 기억을 살려보면 대충…
(처음 신문을 대충읽어 내려가던 저의 시선이 “본관은 순천인이다”에 고정됬고 김류(할아버지)는 알면서 그의 아버지인 김여물을 몰랐던 본인에게 씁쓸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중국 사신(명이라 기억됨)이 한양에 입성했고 무력을 뽑내기 위해 그들이 자랑하던 8장군들(황제의 친위군으로 추측되는 당시 명 최고무력집단의 우두머리들)과 일단의 군졸들을 데려와 조선을 겁박할때였다
그들은 안하무인         했고 태도는 거만하기를 하늘을 찔렀다 조선의 국왕에까지도 무례했다
드디어 올것이왔으니 그들 사신일행과 8장군들이 무장(대검괴 같은 무기를 소유)을 하고 궁궐에 입성 임금과 대면 하려했다. 당연히 궐문(광화문의로 기억됨)을 지키는 경비장병들이 막고 무장해제를 요구 하지만 명의 8장군들이 조선의 한성경비장병들을 죽일것처럼 겁박했다
그때 김여물 장군이 궁문수비장 이었던것의로 유추된다
장군은 8장군에게 내기힘겨루기(싸움)를 권하며 자신을 이기면 무장을하고 궁궐에 입성할수있다고 했고 8장군중 가장힘써보이는 자와 붙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김여물장군이 그를 들어 머리를 궁문주추돌에 내려찍어 꼿으니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한다
그일후 사신일행의무뢰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임금을 배알했고, 서둘러 자신들의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끝으로 현 한국화약 김승연회장은 그분들의 직후손입니다.

위 기사을 확인해 주실분 있으신지요?
신문을 스크랩해 보관했는데 분실했읍니다 또한 순천김씨세적에도 또 인터넷 순천김씨종친회 씨이트에서도 찾지못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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