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5 #2 KOR★ (13)

문명5-(#2-13) 1598년 11월 19일 - 마지막회, 후기 view 발행 | CIV5 #2 KOR★
스마일루 2011.12.25 13:11
감사합니다.^^ 좋은 기억 되셨으면 좋겠네요~
우리나라 역사엔 참 아쉬운 점이 많지요 찰나의 순간이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모습들이 한국역사엔 많지요
율곡이이 선생의 십만양병설을 궤변으로 받아들이지만 않았다면
또한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지지했다면 후에 일본군이 다시
조선을 식민지화 시키기 위해 쳐들어올 때 쇄국이 아닌
개방을 적극적으로해 서양의 문물과 기술 제도 등을 좀 더 일찍
받아들였더라면...참 한국인으로써 굉장히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바쁜 세상속에 우리들은 정작 중요한걸 또 놓치고 있지 않나 합니다
맞습니다. 생각해볼부분이 많지요. 그래서 역사를 항상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구요.
  • 부산갈매기
  • 2012.03.2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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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전에 스마일루님이 하시다가 맨처음 죽은 일본군 장군이 고니시 유시나카였습니돠.
헛 그랬나요.ㅋㅋㅋ
율곡 이이 10만 양병설과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받아서 방어 준비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실부인 "네네(키타노 만도코로)", 다이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충언 듣고 동쪽(조선, 명)으로 진출을 포기하고 훗카이도 북쪽과 쿠릴열도 지역을 침공 했더라면 일본과 러시아가 대립 중인 쿠릴열도대해 분쟁이 없을 것이죠...

침략이 없더라도 명나라와 조선이 붕당정치이나 문치 위주 정치와 무기 개발과 군 기피로 인한 국방의 허약으로 인해 일본의 다른 다이묘이나 북방의 민족이 누군가는 했을 것이고   똑같은 일이 벌어졌겠죠...

한때 유럽의 제국이었던 폴란드나 스웨덴도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확실히 국방에 소홀한 면이 있었죠. 흠...
안녕하세요 재미있는 문명연재 잘 보았습니다.
다름아니라 저도 이거보고 임진왜란 시나리오를 신나게 했는데.. 끝에 "잠깐..한턴만 더!"가 활성화 안되고 메인메뉴로 돌아가기만 클릭할수 있게 불이 들어오더라구요.. 혹시 원인 아시거나 의심되는거에 대해서 조언좀 얻을수 있을까요..?
엇 그런가요.... 글쎄요 모르겠네요. 옵션에도 딱히 없는 내용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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