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의 노트
봄날의 외침

나의 이야기 (7)

마흔 하고도 일곱 살 아줌마의 동창회 나들이 | 나의 이야기
산바람 2012.05.21 21:00
금오도에는 다녀오셨는지요?
전 등산에 미쳤다가 달리기에 빠졌다가 지금은 살짝 여행에 빠지는 중입니다.^^
그 중에 가장 훌륭한 중독은 등산이었던 것 같아요.
경비도 많이 들지 않고.... 몸에 무리도 없고...... 정신건강에도 좋고.....
달리기는.....
대회에 나갈 때 직업 삼아 하는 일도 아니니까 '이번에는 천천히 달리리라' 하는데
동호회 사람들이 "참가자 명단을 보니 이번에는 몇 등 할 수 있겠어." 하면
또 죽을 둥 살 둥 달리게 되지요. 마라톤은 뭣모르고 달릴 때 처음 몇 번만 행복했지요.
그래도 등산과 달리기는 저렴한 취미생활이었는데 여행은 그렇지가 않아서 중독될까 살짝 겁이 나지요. 아줌마인 저보다 훨씬 알뜰한 우리 딸도 여행에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아서 이러다가 된장모녀가 되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아이가 고3이 되니까 엄청 힘들어해서 9월부터 보라카이 여행을 계획했어요. 아이가 지칠 때마다 그 카드를 내어 보여주면서 응원을 했지요. 그 당시에는 딸도 저도 몹시 지쳐서 보라카이가 더욱 매력적이었는데..... 1월에 막상 떠날 때는 딸이나 저나 쉴 만큼 쉬어서 덜 좋을 것 같았는데 여행이 끝난 직후부터 다음에는 어디로 떠날까 경비는 어떻게 충당을 할까 그 연구중이랍니다.^^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기는 한데 남들이 원하지 않는 것까지 베풀다가 어느 순간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 제 단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상대에게 서운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베풀려고 노력 중이지요.
학생들이 저에게 편지를 쓸 때 국어샘이라 많이들 거북해하는데 그 심정을 샘 때문에 이해하게 되었어요. 시인에게 글을 쓰려니 부담스러움에 그나마 끄적거리던 것도 잘 안 되네요.^^
가까운 시일 내에 퇴직을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남편이 하는 일이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한없이 늘어진 시간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요. 적당히 틀 속에 갇혀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방학 때마다 확인하잖아요? 한 십 년 정도 어렵게 버티다가 정 힘들면 과히 죄의식 느끼지 않고 그만 두려고 해요.
무엇을 하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생계를 위해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적합한 것이 교직생활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노안이 많이 진행되어서 책을 읽을 때나 컴퓨터의 글씨를 볼 때 좀 울적해지고 아이들에게 외면당한다 생각할 때는 심하게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아닐까요?
그래도 훌쩍 떠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음에 감사하며.... 이 정도면 족함을 넘어 과분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저런 일로 이제야 글을 보게 되었네. 어제는 출근하지 않고 내 평생 처음으로 '연가'라는 것을 하루 써 봤어. 애사 같은 집안일이 없고는 한 번도 쓴 적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용인까지 다녀오게 되었지.
아직 금오도는커녕 2월 첫 주 외에 산에도 못 가고 있다네. 설에다. 집안일에다 핑계에 묶이다 보니 몸을 뺄 수가 없었어. 금주말에 보길도 모임이 있는데 그 다음주 방학하면 그 때나 금오도를 기웃거릴 수 있을는지......
여행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어제 오전 서너 시간 동안 쌀쌀한 날씨에 민속촌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영하 18도 혹한 속에 덕유산 6시간 걸을 때보다 더 피곤하더군. 예전에 우리 조부님이 '놀기가 더 된 것이다.'고 하시더니 그 말씀이 역시 명언이었어. 산행보다 더 힘든 느리게 걷기, 난 자신이 없다네. 그래서 속도를 올리고 체온을 올리며 땀을 빼는 등산에 쉽게 몸과 마음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싶어.
산바람 선생 모녀의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에 축하를 전하면서 어제 빼먹은 보충수업 보강 때문에 이만 줄이려 하네. 늘 그렇듯이 차분하고 진지하면서도 자기 삶을 알차게 꾸려 나가는 멋쟁이 산바람 선생의 모습 오래 오래 보여 주시기 바라네.
용인에 있는 민속촌에 오셨군요. 그곳에서 저희 학교가 그리 멀지 않는데..... 19일엔 저도 학교에 갔어요. 짐을 가지고 오느라고.... 5년 간 몸 담았던 학교를 떠나 새 학교로 옮겨가요. 오늘 새 학교에서 업무분장을 발표했는데 3학년 담임을 하래요. 용인고에서 3학년 담임을 1년 했다고는 하지만 아는 것도 거의 없는데..... 그래서 오늘은 그냥 멍하게 지내고 있어요. 무엇을 준비하며 이 어중간한 시간들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학교가 집에서 가까운 것은 참으로 마음에 들어요. 느린 걸음으로는 40분, 좀 빠르게 걸으면 30분이니까 출퇴근하면서 운동도 해결이지요. 개교한 지 2년밖에 안 된 학교라 주어진 틀에 맞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저에게는 조금 버거운 면도 있겠지만 세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5년 간 같이 생활했던 샘들과 헤어지려니 아쉽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생각에 두렵기도 한 이 시간이 얼른 지나고 다시 조금은 풀어져서 더욱 편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도 며칠 안 남은 자유시간을 만끽하시길.....
자리를 새로 옮긴다는 것은 기대도 되지만 낯섦에 대한 조금의 긴장과 부담이 없지 않을 텐데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수업 시간이 좀 많아진 것 외에 담임을 놓고 보니 난 마음 가벼이 새로 3학년을 맞았네. 몇 조금 지나지 않아 금방 발톱을 드러내기야 하겠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하라는 대로 자세도 바로 하고 겉옷도 벗고 하며 어른 대접을 해주기는 하는군.
며칠 전 중산리로 해서 천왕봉에 다녀왔네. 지난 주말에 다녀온 보길도는 조금 지루하고 오래된 고향처럼 가까이 하기는 뭐하면서도 멀리할 수도 없는 모습만 보였는데 새 길로 오른 천왕봉은 급경사라 숨은 헐헐거렸으나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지.
용인까지 다녀온 일은 보람도 없이 끝나버려서 지금 생각하면 허무하기도 하네만 시간 때우며 둘러본 전통 가옥의 여유가 조금은 기억에 남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힘겨운 3월도 그러 할 것이고 더 고통스러운 내 주위 삶의 일면도 역시 그러 하리. 잎 피고 꽃 번지는 봄날을 기다리는 맛으로 오늘도 등 뒤의 모악산에 눈길 가끔 보내며 위안을 스스로 찾으려 하네.
산바람 선생의 일상에도 보드라운 봄바람이 어서 흐르기를 기원하리.
학교를 옮길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커요. 그래서 전근한 해가 저에게는 가장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지요. 최고봉은 용인고 처음 왔을 때인데요. 그 때는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2년째부터는 내가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학교에 잘 적응했지요. 타시도전출을 한 것도 그렇고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옮긴 것도 그렇고 남편이랑 주말부부다하다가 동거(?)를 시작한 것도 원인이겠지요? 샘은 중산리로 해서 천왕봉에 다녀오셨네요. 저는 당일치기 할 때는 백무동계곡에서 세석산장 들렀다가 장터목으로 해서 천왕봉에 다녀오구요. 방학 때 1박2일 할 때는 구례화엄사에서 시작하여 천왕봉 갔다가 백무동으로 내려오는데.... 진주는 낯설고 함양은 익숙한 고장이라서 그 틀을 못 깨고 늘 그 코스로 다녔어요.
제 기억에 거주지 근처의 학교로 옮긴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새 학교에 익숙해지면 운동량을 좀 늘리려고 해요. 건강도 그렇고 다이어트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매년 매년 잘 살아내면 이담에 퇴직했을 때 그다지 후회는 되지 않겠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용인고 아이들만큼 착해서 그리고 수업 듣는 태도는 용인고 애들보다 좋아서 그닥 힘들지는 않아요. 다만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이틀째 했더니 오늘 아침에는 몸이 신호를 보내더라고요. 어차피 3월은 죽음의 달이니까 죽었다 하고 잘 견뎌봐야지요.
대학에 들어간 딸아이를 보면서 내 대학시절도 저랬을까 싶어요. 공부에 짓눌려 안쓰럽던 얼굴이 활짝 피었어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요즘입니다.
그제는 개강파티를 한다고 술을 몇 잔 마셨나 봐요. 11시쯤 귀가한 아이가 딸꾹 딸꾹 거립니다. 그 모습이 참 귀여웠지요. 마음 한 켠으로는 제 부모를 닮아서 술을 너무 즐길까 걱정이 되기도 했구요. 피는 못 속이는 건지 아이가 맥주보다 소주가 훨씬 마시기 수월하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쓸쓸하기는 하지만 그 만큼 제 할당량을 해 나가고 있다는 뿌듯함도 느껴져요. 산다는 것이 뭔지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서 미래에 올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를 간직한다면 삶도 그다지 고해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봄이 오면 제 출퇴근길에 개나리와 벚꽃이 저를 응원해 줄 거예요. 선생님께서도 올해는 더욱 평안하시길 빕니다.^^
교원의 꽃이 교장이라면 교사의 꽃은 3학년 담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이제 어떤 학년 담임도 안 맡지만, 내 생애에 부장 일 년도 않고(중앙에서 2학년 주임을 한 번 했고 여기서 환경부장을 억지로 반 년 맡았지만) 교직 황혼에 이른 데 대하여 한 점 아쉬움이 없지만 그래도 3학년 담임을 했던 것만은 은근한 보람으로 간직하고 있어.
무엇보다도 새로 옮긴 학교에 쉽게 마음 붙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봐도 요즘이 산바람 선생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 같아. 그 기쁨 오래 이어가기를 기원하겠네. 할당량을 완수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비키는 연습이 부모 노릇이 아닌가 싶기도 해. 현재 과업을 즐겁게 이루며 여유 있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산바람 선생의 깨달음에 귀 기울이며 크게 공감하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맞는 주말 기분이 드는군. 보충수업을 한다고 해도 방학 때야 만날 여유를 부리다가 이제 한껏 긴장하고 정신 없이 보낸 한 주일이니까. 저녁에 신임 환영회를 한다는데 한 주일 동안 묵적지근했던 긴장을 한 잔 술에 풀어내라는 뜻이겠지.
문제는 내일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아직 못 정했다는 점이야. 좀이 쑤셔서 그냥은 주말을 곱게 못 보낼 텐데. 그래도 인근에 이미 답사한 산이 많으니 내일 아침 문득 길이 알아서 날 데리고 떠나겠지.
날씨가 널뛰기하는 것을 보면 꽃바람 폭죽이 곧 터질 것도 같아. 교정엔 벌써 쑥이 제법 자랐더라고. 고3 담임의 무거운 어깨에 부디 황금빛 찬란한 꽃소식이 어서 번지기를 바라네.
어제는 학부형 총회, 신임교사 환영회를 했어요. 열 분의 어머님을 모시고 조금 긴장된 시간을 가졌지요. 신임교사 환영회는 많은 샘들이 식사만 하고 빠져나가서 조금 썰렁했지만 관리자들의 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억지로 술자리를 강요하는 것만큼 고역은 없는 것 같아요. 모의고사 보는 날, 분위기 탓에 과음을 하고 그 다음날 내내 고생을 했던 터라 술을 자제했지요. 그리고 이어진 2차에서는 3학년 담임들끼리 모였는데.....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어 10년 동안 사교육계에 계셨다는 국어샘과 언쟁이 있었어요. 방과후 수업에 관한 의견차 때문에 벌어진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제 자격지심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공교육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강남의 스타 강사처럼 수업을 해야 한다.'는 말과
'나보다 다른 샘이 먼저 방과후 신청이 마감된 것은 견딜 수 없는 치욕이다.'
는 말에서 발끈해서 새 학교 옮기고 이주일만에 제 성질머리를 들켜버렸네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어요. 아니었으면 십 년도 훨씬 위인 선배교사에게 술주정한 꼴이 되었을 수도....
오늘 오전 내내 그 샘과 일 년을 잘 지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좀 힘들었어요.
어쩌면 수업분배에 대한 서운함도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3학년 화법만 담당하고 저에게는 2학년 문학까지 맡겨놓고 스타강사와 같은 방과후수업 운운하니 약도 올랐겠지요.
암튼, 후배교사들 앞에서 선배교사와 언쟁을 벌인 것은 별로 잘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워낙에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구분이 심한 사람이라 앞으로 일 년이 걱정이네요. 그 동안 간직했던 전교조에 대한 호감도 잃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고요. 아마도 제가 사회생활에서 아직 배우지 못한 태도를 갖게 해 주시려고 그 선생님과 함께 1년 근무하게 하셨나 봐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 샘을 정도 이상으로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익산에 사는 친구가 오늘 햇볕이 장난 아니게 좋다는 문자를 보내왔는데 저는 음지식물처럼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보냈네요. 청소하고 모의고사 문제 풀고..... 수업준비도 해야지요. 스타강사처럼은 못 해도 아이들을 많이 재우면 안 되니까요.^^ 오늘도 샘께서는 산행을 하셨겠군요. 부러워요.^^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선배일 수 있겠군. 나름대로 자신감이 충만한 분인가 싶지만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학생에게 공부하게 하는 교사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늘 고뇌를 한다네. 실은 부족한 실력을 그런 식으로 얼버무려 보고자 하는 속셈도 없지 않겠지. 어쩌다 보니 나도 2학년 2권, 3학년 3권 교재 준비를 해야 하게 생겼네. 시간도 국어과에서 가장 많은데 그것이 2학기까지 계속된다는 점.ㅠㅠ
물론 3학년 수능 끝나면 숨통은 틔겠지만 그것 기대하고 덜컥 물었다가 요즘 된통으로 낑낑댄다네. 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라고 하는데 참 쉽지 않은 노릇이지. 그 분과는 몇 번쯤 잘 지내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언젠가 이야기했던 정중한 무관심으로 가면 되겠지.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 보내기도 부족한 세상에 힘들게 억지 웃음 꾸미기도 어려운 노릇이고.
산바람 선생 말대로 함양 기백산, 금원산으로 해서 용추 계곡을 돌아 내렸어. 아직 숲이 메말라서 특별한 감흥은 없으나 맑은 물이 참 좋아서 몇 번이나 탄복하며 사진으로 모셨지. 벌써 생강꽃이 노랗게 번지는 모습에 용추 푹포 엄청난 물소리 같은 환희를 가슴에 안았다네. 다녀와서 몇 줄 끼적이는 재미로 산행을 일삼지. 독자라고 서너 명이 채 안 되지만 기록한다는 데 뜻을 심는 편이니까.
학생들이 시들거릴 때 휘파람을 불어 깨우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좀 신선한 모습인지 따라하기도 하고 함께 깨우기도 하며 웃음으로 넘겨 주니 고마울밖에. 머리 빠져 꾀죄죄한 노털(?)에게 그런 반응이라도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은 황사 탓인지 꾸무레한 하늘이 무겁지만 마음만은 '네가지 김준현' 말대로 환하게 웃으며 하루 보내시기 바라네. 워낙 수업 부담이 크다 보니 3주차인 지금쯤 마음이 좀 가벼워질 때도 됐는데 아직 그런 여유를 찾을 수 없군.
햇살 좋다고 기별 주는 좋은 벗과 행복한 우정 역시 오래 가꾸기 바라겠네.
항상 삶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덜한 무게로 우리를 맞는 친절함을 잃지 않는 것 같아요. 제 성질머리를 봐 버린 그 샘이 조심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월과 함께 제 호불호가 분명한 성질머리도 약해진 것인지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을 바꾸었지요. 강좌를 개설해놓고 아이들이 오지 않으면 '오히려 잘 됐다' 생각하고 아이들이 오면 '그래도 와 주니 고맙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쩌면 모든 불편함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제 욕심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함양은 제가 경남에서 근무할 때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곳이예요. 경남에서 지내는 9년 중 6년을 함양에서 지냈기 때문일까요? 지금도 함양이 가끔 그립답니다.
우리 교무실은 부장 샘까지 여덟 분이 생활하는데 제가 나이로 2인자이지요. 부장 샘은 저보다 한 살이 어려요(?). 그래서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진 않지요. 근데 그것도 또한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만든 짐이 저를 눌러서 제 장점을 다 날려버리고 단점만 모아오면 안 되잖아요?^^
저는 운동을 걷기로 하고 있답니다. 출퇴근길에 걷고 저녁식사 때 아들내미 밥해주러 또 한번 더 왕복하고..... 대충 하루에 걷는 거리가 10킬로는 되는 것 같아요. 저녁에 아들이 친구랑 외식을 하면 5킬로로 대폭 삭감이 되지요.
지금은 야자시간인데 우리반 6명, 옆반 1명 이렇게 7명의 감독을 하고 있지요. 숫자는 적지만 애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감독하는 보람이 있어요. 아이들과도 그렇고 저 자신에게도 약속을 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10시까지 감독을 하니 조금 힘들긴 하지만 나름 보람도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어쩌나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아요.
햇살이 좋다고 기별주는 친구가 제주도 겨울여행 가는 돈을 모으자고 통장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바쁜 것도 없으면서 미뤘네요. 얼른 문자 보내야겠어요. 중 1 때 친구와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서 가는 제주도는 특별하겠지요? 주말에는 산에 못 가는데 지금쯤 남한산성은 참 이쁘겠네요. 오고 가는 길에 보니 개나리도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던데..... 내일은 더 이쁜 모습으로 저를 반기겠지요? 살아있음에, 그것도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한 뼘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타인을 수용하며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들 공부하는데 시끄럽겠어요. 민원(?) 들어오기 전에 이만 줄입니다.^^
날마다 야간 자습 감독을 하려면 정말 힘들겠네. 몇 명 안 되면 조용하여 안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시간은 어디 가겠는가? 날마다 열심히 걷는 모습도 정말 산바람 선생다운 면이네.
무엇보다도 득도의 자세로 학교 생활을 여유있게 영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나이가 들다 보면 무언의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기도 하더군. 나야 보직 한 번 제대로 맡아보지 않았지만 젊은 후배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은연중 상당한 부담이 되더라고. 그래도 여러 모로 잘 적응하는 산바람 선생을 보니 흐뭇하네.
아들 녀석이 어렵게 취업을 하여 방 얻어 주고 이사해 주느라고 지난주 분당까지 오가느라 촌사람이 마음고생 좀 했네. 직장이라야 맘에 안 차지만 그래도 그렇게 밥벌이를 시작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고. 서너 평밖에 안 되는 방에 아들을 밀어넣고 돌아서는 부모 마음이 참 무겁더군. 전주에서 자리를 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수도권에서 적응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며 스스로 가슴을 다독이기도 했고.
한 시간 남은 수업이 나를 부르는군. 감기로 고생하지만 그래도 일상이 끝나는 건 즐거운 일이지. 잘 지내시게.
아드님께서 취직을 하셨군요. 축하드려요.^^ 분당이면.... 저희 집하고 가까울 수도 있겠네요. 저희 집은 성남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예요. 아이들이 커가니까 이제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어릴 때 잘 못 해주었던 것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 거니까요. 아들 저녁밥을 차려주는 것도 그래요. 아들도 애 아빠도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데요. 그 아이 어릴 때 무관심에 방치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거라도 해 주어야 맘이 편해요.
고등학교 시절 샘의 모습을 정확히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제가 모르는 면도 많으시겠지만 아마도 선생님과 저는 교사로서 많이 닮았을 것 같아요. 승진욕심은 아예 없으셨던 것 같고, 쇼맨십도 거의 없으셨고, 아이들의 평가를 약간 두려워하시는(?) 분 아니셨던가 합니다. 저도 그래요. 교감 교장 샘보다 아이들의 눈이 더 무서워요. 그리고 관리자들의 눈이야 피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눈은 피할 수 없어서 늘 긴장상태지요. 제가 보충수업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선생님들은 수강신청이 마감되었는데 제 수업은 마감 안 되는 것이 비참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업을 할 때 몹시 부담이 되기 때문이지요. 제 수업을 신청해준 아이들에게 무언가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말을 버벅거리고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요. 물론, 몇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영 고약스러운 느낌이예요.
전 우리 아버지를 참 존경하는데.... 교직에 와서 생긴 버릇 하나가 나이드신 샘을 보면 우리 아버지랑 비교하기예요. 그것으로 그 선생님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신 울 아버지를 참 무능한 분으로 회고하신답니다. 그리고 많은 면에서 우리 어머니의 평가가 옳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닮아 저에게도 그런 무능함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때로는 그런데 그 무능함을 편하게 느끼기도 하니까 아버니께서 주신 거라면 뭐든지 좋게 생각하는 못 말리는 딸이지요?
가끔 수업시간에 아버지 이야기도 해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랑 위도에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풍랑이 거세서 나오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어요. 그 날 나가야 월요일에 학교에 갈 수 있으니까요. 배가 안 떠서 못 간다는 아버지 말씀에,
"그럼 버스 타고 가면 되지?"
"하영아! 버스도 안 다닌단다."
"그럼 아빠 택시 타고 가자"
라고 말했대요. 전 기억에 없고 아버지 말씀이.....
지금처럼 그 때도 참 영민하지 못한 아이였던 거지요.
그런데 그 후에 우리 아버지께서 ...."
"아이가 학교에 꼭 가야한다는 성실함이 있고 택시를 먼저 말하지 않고 버스를 먼저 말했으니 절약정신도 강하고.... 내 딸이지만 정말 대견해"
라고 칭찬하셨지요.
만약 우리 아버지께서 섬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육지에 나가자고 한 저를 멍청하다고 비난하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참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지 못하는 것이 많이 미안하지요.
1교시 진로시간에 자율학습시키고 6교시 수업 준비를 하는데 졸음이 밀려오네요. 그래서 수다를 떨려고 블로그에 왔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 비록 곁에 안 계시지만 그런 감동이라면 정말 오래 지니고 가끔 꺼내어 맡아 보는 귀한 향수 같을 거야. 어찌된 일인지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온통 채워져서 아쉽기만 해. 조부님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고 보니 아버지도 이젠 연로하셔서 안타까울 때가 있지. 조부님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아직은 마음일 뿐이야. 나 어려서 장수 읍내 굿(아마 논개 축제였던 듯)을 보러 가는데 아버지가 나를 업고 가신 기억이 내 추억의 밑바닥에 들어붙어서 그래도 아버지를 긍정하는 자그마한 끈이 되곤 한다네. 그래! 새끼들에게 정말 잘해주고 좋은 기억을 심어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이미 늦었음을 깨달을 때가 있더군. 그래도, 이제라도 챙겨 보려는 몸부림으로 먼 길에 오가며 자식 뒷바라지한다고 하지만 녀석들 맘에 얼마나 찰는지 원!
무엇을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거지.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자식 농사마저 그저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으로 요즘 맘이 무겁지만, 이제 어쩔 것인가. 좀 모진 말로 앞으로의 삶은 이제 녀석들의 몫이라는 안일한 치부로 넘기기만 하네.
학생들에게 죄나 짓지 말자는 생각으로 종 치기 1분 전쯤 교실에 들어가면 왜 일찍 들어왔느냐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일 외에 무엇이 있으랴 하며 귀를 막을 뿐이지.
어느 새 청소 시간이네. 늘 그렇듯이 활기차고 즐거운 나날 보내시기 바라네.
오늘 1교시에 우리반에서 화법 수업을 했는데 종치기 2분 전쯤에 끝났어요. 좀 일찍 끝내준다고 해놓고 겨우 2분 전에 끝내서 미안했는데 애들이 그래도 이렇게 일찍 끝내는 것이 처음일이라네요. 깜짝 놀라며 "내가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어?" 물었지요. 용인고에서는 연계교재 지문 한 세트만 하고 끝낼 때도 많았는데 판교라고 너무 긴장했었나 봐요. 애들에게 저는 깐깐한 선생님, 불편한 선생님일 거예요. 작년에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착해도 너무 착한' 선생님이었는데..... 해마다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긴 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오래 가겠어요? 금방 여기저기 허점이 많은, 무원칙에 무질서한 선생이라는 것이 들통 날 거예요. 그래도 아침 출근길에 잊지 않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수양이 부족해서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부아'를 낼 때가 있지만... 그런 자신도 너무 나무라지는 않으려고 해요. 살면서 남이든 자신이든 지나치게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곳 성남에서 오래오래 살고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을 보면 여기서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당장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 정은 들었겠지요? 아이들을 다 떠나보내면 남편이랑 전주나 여수쯤 내려가서 여유있게 살고 싶은데.... 그 때는 또 아이들 곁에서 손주들 재롱을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네요. 탄천에 무료풀장이 여러 곳 있어요. 거기를 지날 때마다 우리 승휘 애기도 얼른 세상에 나와서 저런 곳에서 놀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거든요. 아직 자격증 시험에 목을 매달고 있으니 그런 날은 아직 멀었겠지요?
저도 자식농사를 그리 잘 지은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신경을 써주지 못한 깜냥에는 그런 대로 제 갈 길을 가 주니까 고마울 따름이지요. 아들은 대학공부는 뒷전이고 데모만 열심히 했던 제 아빠에 비하면 한결 미래가 밝아보이고요. 딸은 학과보다는 동아리에 목을 매었던 제 엄마에 비하면 과에 소속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니까 또 좋아보이고요. 둘다 그저 그런 대학에 취직이 잘 안 되는 학과에 갔으니 선생님 말씀처럼 지들이 뿌린 것을 거두면서 살겠지요.
내일은 남편이랑 오랜만에 전주 나들이를 갑니다. 마라톤할 때 인연을 맺었던 샘이 삼례공고 교감으로 발령이 나서 세 부부가 모여 한 잔 하기로 했거든요. 그 샘은 기공에서 같이 근무했고 다른 샘은 같이 근무하지도 같은 동호회 소속도 아닌데도 지평선 마라톤대회 때 저음 본 저를 위해 동반주 해주셨던 분이지요. 덕분에 여자부 1등을 할 수 있어서 제가 은인을 찾았는데 마침 군산상고 상과 샘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세 부부 모임을 하고 있지요.
살면서 고마운 분들이 참 많은데 잘 챙기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요. 삶의 길목에서 제가 놓친 고마운 분들을 찾으러 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내일 전국 연합 모의고사를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들뜨는 건 이 나이에 뭐랄까, 일을 피하고자 하는 진심어린 치기가 아닐는지? 오전에 다른 학년 수업 한 시간 들어 있다고 해서 그러는 건지 오후에만 감독 한 시간을 넣어준 후배 샘에게 고마움을 느껴 보네. 여기는 오늘 눈이 다 내렸는데 다 큰 녀석들이 그것을 두고 또 희한해 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아직 맑은 지평이 많은 까닭이리라는 생각을 하네.
산바람 선생이 전주에 다녀갔는데 그 무렵 날씨가 안 좋아서 불편했겠군. 나는 긴 감기의 터널을 벗어나 겨우 숨을 돌리면서 조부모님 제사 모시러 장수에 다녀왔어. 12시가 다 된 시각에 눈 덮인 비행기재를 넘어 오는데 겨울 눈보다 훨씬 조심스럽더군. 발밑이 간지러워서 혼났네.
아직 자리를 못 잡은 딸아이가 서울 나들이 할 일이 있대서 챙기며 이래저래 마음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봄이 왔으되 봄을 못 느끼고 마는군. 이맘때쯤이면 산에 들에 산나물이 지천일 텐데 며칠 전 억지로 미친 듯한 바람 속을 헤쳐 쑥 두어 줌 뜯은 것 말고는 산에 발길 올리지 못했어.
많지는 않지만 출제다 뭐다 해서 또 신경 쓸 일이 있고, 푸념 같지만 댓 권 수업 준비를 하며 가까이에 있는 뒷동산에도 못 가는 처지가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이 계절이 지나면 나도 조금 숨 돌리고 따스한 햇살 밟으며 산길 더듬을 날이 있으리라고 믿어.
마라톤을 그냥 취미로 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전문적인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네. 대단한 집중력이고 체력인 거지.
아들녀석 미금역 부근에 방을 얻어주고 보니 분당이라는 곳이 내가 좋아하는 단독주택도 많아 보이던데 워낙 나와는 인연이 없는 현실이라 눈길도 줄 형편이 아니지만 핏줄이 자그마한 뿌리나마 내린 곳이라 이젠 예사로 보이지 않는군. 가까이 산이 있어서 그것도 좋고 가까이 물길도 좋아서 그것도 눈에 드는데 그야말로 화중지병이겠지. 아이들 수도권에 보내면서야 내가 시골에 뿌리내린 점을 아쉬워하게 되었네. 내가 그 인근에 살았더라면 적어도 새끼들을 옹색한 뒤주 같은 곳에 가둬 넣지 않아도 좋았으리라는 때 늦은 후회!!
그런 점만 빼면 전주가 시간이 느리게 흘러서 참 좋아. 아무래도 수도권의 계획 도시만은 못하지만 조금 복잡하고 불결하고 비좁아서 불편해도 그런 대로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특히 쾌적한 자연을 인위적으로라도 조성한 수도권과 달리 방치된 지방 도시에서 느끼는 박탈감 같은 것이 솔곳이 피어오르기도 하지. 하지만 이제 새로운 세상을 찾기가 쉽지는 않아서 이대로 만족하게 되는가 봐. 생각 같아서는 대전 정도가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역시 그것도 마음대로 될는지 모르겠어.
괜한 넋두리가 길어졌네. 불순한 봄날이지만 일상 속의 행복을 자양 삼아 늘 즐겁고 건강한 나날 보내시기 바라네. 여기는 이제 풀풀 날리던 눈이 그쳤군.
저도 수도권 생활이 각박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런 대로 만족하는 이유가 아이들에게 있어요. 아들이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관세사 시험 모의고사를 보러 가는데 태워다 준대야 왕복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고요. 딸은 성남에 살았기 때문에 수시의 적성전형으로 수도권 대학을 뚫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도 지방 소도시에서 제가 누린 여유를 만끽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전주에서 느꼈던 삶의 여유, 느림의 미학은 여기서 사치처럼 느껴지거든요. 일단 여기 와서 그토록 좋아했던 달리기를 접어야 했지요. 익산에 살 때는 클럽의 주말 훈련을 못 나가면 일요일 내내 우울했어요. 괜시리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거의 마라톤에 미쳤다고 하는 편이 나을 걸요. 치골에 금이 갈 정도로 연습하고 어떨 때는 일주일에 두 번 풀코스를 달렸으니까요. 그냥 천천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록 단축과 입상을 목표로....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과했고 그 벌을 지금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에 미칠 수 있었던 그 때가 제 인생의 봄날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탄천을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요.
미금은 탄천이 아름다운 동네지요. 딸아이 학원이 미금 근방이라서 아이가 학원공부하는 동안 탄천을 걸었던 때가 있어요. 서울대 병원 부근이었는데 걸어도 좋고 물을 바라보며 책을 읽어도 참 좋았지요.
전주에 갔을 때에는 날이 궂어서 추위에 떨고 왔어요. 그래도 반가운 분들을 만나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지요. 그래서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고들 하나봐요. 저번 주 토요일에는 제자 결혼식이 울산에 있어서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녀왔어요. 좀 특별한 제자라 먼 것을 감수하고 나섰는데 꽃나들이객까지 몰려 6시간 동안 차에서 시달려야 했지요. 식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결혼식도 다 끝나고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2월에 인천에서 신랑감을 만났을 때는 부잣집 막내아들처럼 귀티나게 보인다 했는데 사진 찍을 때 보니까 부모님께서 모두 장애인이셨어요. 그런데도 그렇게 반듯하게 잘 자란 신랑이 마치 제 사위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졌지요. 저도 그런 사윗감을 얻고 싶다는 소망 하나를 품고 올라오는 길은 훨씬 짧고 수월했답니다.
그 제자가 청첩장 뒷장에 적은 말,
"너무 멀어서 오시라고 말씀드리기도 죄송하지만 제가 교사가 되게끔 이끌어주신 샘을 모시고 하는 결혼식은 더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개념없이 날뛰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이 생활이 견딜 만 하네요. 좀 있으면 수업종이 치고 1교시 마치고 날을 세운 아이와 연장전을 펼쳐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성질도 꽤 죽었는데도 아이들과 불꽃이 튈 정도로 부딪힐 때가 있어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네요. 한 시간 내내 제가 좋아하는 조관우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삭이고 있는데도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요. 연장전에서는 흥분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교사답게 아이를 지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몇 차례 주례를 한 적이 있어. 그때마다 다시는 맡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결심을 하곤 하지만 막상 제자가 찾아와서, 그것도 배필될 아가씨와 찾아와서 부탁하면 참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스스로 깨곤 한 적이 있네. 요즘은 조금 뜸하지만 제자들 혼인하는 모습 보는 것도 나름은 흐뭇한 보람이더군. 어쩌면 그것도 가르침의 연속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고.
학생들과 예리한 사금파리를 들이밀며 나누는 혈전은 사람 참 피곤하게, 아니 더 나아가 아프게도 하더군. 2년 전 담임하다가 두어 달 병원을 오가던 일을 생각하면 참 돌아보기 싫은 나날이었어. 학년에 따라 당기는 맛이 있는 학생들이 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유난히 튀쳐나가고 냉소적이거나 고개를 배틀어 버리는 학생이 많아서 학급 분위기를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해도 있었어.
요즘 학생들 다 그렇다고 일반화하기 어려운 그 분위기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부분 학생들의 질과 그 학교에 대한 지망 여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더군. 다행이라면 올해 3학년 중심으로 수업을 하고 2학년 조금 하는데 작년과 대비적으로 마음 편하게 살고 있어. 구태여 큰소리 할 일도 없고 내가 하는 작은 말에도 학생들이 웃으며 반응해 주는 데는 참으로 살 맛이 나지.
이 나이의 선생을 웃으며 반겨주는-그것이 내 착각일지라도-분위기에 이끌려 즐거이 종치기 전에 학급으로 달려가곤 하지.
힘들었던 몇 년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이 계절을 감수하고 있다네.
아마 조관우 씨 노래를 구태여 듣지 않았더라도 산바람 선생은 그 날을 잘 넘겼으리라고 믿어. 늘 그렇듯이 우리 일상이 누구에게 크게 험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8교시 수업이 목전이네.
조관우 노래를 들으며 잘 삭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또 아이들이 귀엽고 하는 짓에 헛웃음도 나고 그러네요. 제 막내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기싸움을 한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지요. 근데, 사람의 나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에서는 멎는 성질이 있나 봐요. 교직에 처음 나왔을 때에 비하면 조금 아주 조금 나아진 정도라고나 할까요? 아니 교사로서 제가 질적으로 성장했다기보다는 열의와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식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예요.
저번 주 금요일까지 중간고사 주간이었어요. 지난 학교에서는 공동출제 때문에 많이 시달렸었는데 이곳은 단 둘이 출제를 해서 그런지 불안할 정도로 가뿐하게 끝났습니다. 요즘은 용고에서 필요없는 곁다리 일에 시달린 게 아닌가 곱씹어 볼 정도로 일이 줄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토요일에는 남편이랑 탄천을 걷고나서 동네 횟집엘 갔지요. 남편은 소맥을, 저는 소주를 마시는데 학부형님이 전화를 하셔서 동석을 했지요. 우리 부부, 학생 부모님 이렇게 넷이서..... 그 집 아이가 학년초에 가출을 해서 하마터면 학교를 그만 둘 위기에 처했었는데 담임의 노력으로 아이가 맘을 잡았다고 늘상 과분하게 고마워하시는 분들이지요. 김치를 담가 가져왔는데 어디냐고 물으시기에 횟집을 덜컥 말하고는 그 때부터 부담감에 술맛이 떨어졌지요. 남편이 중간 계산을 하고 좀 지난 후 학부형님이 오셔서 자리를 함께 했어요. 아버님은 64년생, 어머님은 65년생, 저는 66년생, 그리고 우리 남편은 67년생이라고 재밌어하다가 남편에게 머퉁이를 얻어먹었지요.^^ 그 쪽 부모님은 광주분들이라 더 편하게 느껴져서 그만 제가 과음을..... 부정맥으로 시술을 받기 전까지는 그래도 곧잘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조금만 과음했다 하면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자야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어제는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의 휴일을 그렇게 허비하고 오늘 학교로 출근할 때에는 엄청 허무하더군요. 내일부터 2학년이 수학여행을 가서 그래도 하루에 한 시간씩 수업이 줄었네요. 선생이 이렇게 수업하기 싫어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 걸요.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애들이 픽픽 쓰러져 단잠을 청하는데..... 옆반에서는 서술형 점수 확인하느라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월요일이네요.
1교시 수업 마무리하면서 시간을 확인하다가 고마운 문자를 발견했네. 잘 지내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군. 3학년 여덟 반 2시간씩 수업을 하면서 출제도 일부만 하게 되어 부담이 많이 줄었어. 젊은 선생님들이 채점까지 맡아 해 주시니 고마울밖에.
봄인가 했더니 벌써 더위에 녹아내리는 아이들의 군상을 일으켜 세우다 보니 여름이 오긴 온 듯하이. 담임도 아닌데 그것도 산적 같던(여학교에 있다가 처음 와서 보니까 시커먼 사복 입은 학생들이 딱 산적들 같더군.) 남학생들 정서로 마련한 초코파이 케익과 스승의 날 노래를 선물 받았네. 문 열자 들리는 노래를 단 칼에 제압하고 수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내가 평소에 부는 휘파람으로 촛불을 끄라는 녀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서른 살' 젊은 나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말았지. 조는 녀석, 사담하는 녀석들을 불러내어 '미운 놈'에게 주는 떡이라며 초코파이를 하나씩 강제(?)로 먹이고 그러고도 남아서 수업 끝내고는 5번대 학생들을 불러 고루 나누어 먹였지. 32년 만에 처음 맞는 놀라움이고 감동이었어.
이런 일이 없었더라도 담임이 아니니 그러려니 했겠지만 막상 학생들의 정성을 받고 보니 참 고맙더군. 뜻밖의 도움을 받고 과도하게 굽실거리는 사람처럼, 학생들의 밝은 미래를 축원하는 찬사까지 몇 번씩 해 댄 것을 보면 마음속에 그런 자리를 기대하는 못된 사심이 없지는 않았던 셈이야. 돌아보면 스스로 좀 부끄럽지만 다른 때보다 수업 태도도 더 좋아진 것 같아서 위안을 삼은 시간이었어.
기분 좋게 마시는 술 한 잔은 건강에도 나쁘지 않다고 하니 나도 피하지 않네. 다만 예전처럼 자리의 끝을 보던 습관은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스스로 절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제법 오래 쓴 몸이라 그런지 사방이 조금씩 닳고 있다는 느낌을 받다 보니 고물차 조심히 다루듯 노력을 하게 되더군. 지난주 산행을 안 했더니 한 열흘 사이 체중도 조금 올라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네. 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묻는데 한두 번이 아니고 등산을 많이 해서 그러노라고 일일이 답하기도 좀 머쓱하더라고.
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학생에게나 관리자, 학부모들에게, 나 하고 싶은 말 하면서 크게 눈치 안 보고 오늘까지 지낸 것이 참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를 자리도 내게는 없었기에 다만 학생들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것이 때로는 누군가를 불편하게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흉 거리가 되기도 했으리. 그런 점을 수긍하고 보면 그래도 그런 대로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글 쓰는 동안에 내가 주례를 했던 제자가 보낸 꽃바구니를 들고 오는군. 고맙기도 하고 조금 부담스럽기도 한, 그러면서도 없으면 조금 서운해 할 묘한 상황이야. 이런 것이 선생의 복잡한 심경인지 원!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네. 일상의 담담한 바람 한 줌이 행복의 찬가라는 것을 알기에 늘 그렇듯 여일한 나날 보내기를 기원할게. 꽃가루가 온 세상의 신록을 덮어도 오월 중순 기쁜 마음 한아름으로 이 글을 적네.
작은 마음을 담은 문자에 이렇게 큰 고마움을 표하는 샘이 저에게는 평생을 두고 닮아야 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샘의 댓글을 보면서 또 한번 교사로서 샘과 제가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제 모습이 다른 샘들께 불편함으로 다가갔으리라는 자각도 없었는데 친한 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늘 열심인 하영샘 때문에 불편한 3학년 담임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런 민폐까지 살필 섬세함이 저에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이든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어제도 오늘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교직에 들어와서 단 한번도 승진을 꿈꾸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어요.
스승의 날의 불편함을 교단에 선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 없겠지요? 처음으로 남자반 담임을 하고 오늘은 편지는 단 한 장도 받지 못하는 그런 스승의 날을 보냈네요. 부모님들께서 정성껏 구워 보내주신 쿠키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먹이고 케익도 30등분 해서 먹이고 나니까 나눠 먹을 수 없는 꽃다발과 카네이션이 남았지요.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편지가 없어서 마음이 휑했습니다.
작년 담임을 했던 아이들이 야탑까지 와서 전해준 편지를 보고서야 노여운(?)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답니다. 교직 초년생이었을 때에 비하면 그래도 성숙한 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교묘한 기대감이 스승의날을 맞는 한 켠에 엄연히 존재했었나 봅니다.
오늘 반장에게 '근데, 정래야! 편지는 언제 줄 거야?'라고 못 참고 물었지요. 우리 귀여운 -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장군을 했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반장 왈,
"선생님! 제가 그걸 깜빡 했네요"
하긴 남편이라는 남자와 아들이라는 이름의 남자랑 26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네요.^^
여자 제자들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 고 3 때 싸운 두 명의 제자가 오늘도 역시나 한랭전선이더라고요.^^ 때로는 섬세함보다 남자아이들의 단순함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내일은 우리반 아이들을 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렵니다.
선생님의 스승의 날을 따스하게 덥혀준 해성고(?) 아이들이 참 멋지네요. 그런 제자들이 있어서 선생이라는 직업이 꽤 괜찮은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더욱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 보렵니다. 언제가 되었든 전주에 내려가면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을 찾아가 오래된 앨범을 펼쳐보듯 여고시절을 돌이켜 볼 날도 오겠지요. 그 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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