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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5단계를 겪은 후 만나게 되는 것? 톨스토이 <이반일리치의 죽음> | ♡책 후기♡
김작가 2018.08.23 18:25
죽음이라는 문제는 직접 당해 보지 않고는 뭐라 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요?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아야 제대로 느낌이 올 것 같으네요 ㅠㅠ
한때는 시한부의 생을 살아야했던떼가 있었지요 ...
마음을 내리고 내려도 무서움과 두려움이 밀려오는날들이었지요 ... ^^

아주옛날 나에게는 책이라함은 수면제를 뜻하는것이였지요 ... ^^
이제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그렇지않겠지하였는데
아직도 책장을 펴고있자면 스르르 잠을 자고있지요 ... ^^
태풍대비는 하셨겠지요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
제19호태풍 솔릭 무사히 지나가길 바랍니다^_^
잘보고 갑니다
공감하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도 기쁨이 함께하시며
마음이 넉넉한
소중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주인과 글쓴이만 볼 수 있는 글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인 <이반일리치의 죽음>이란 책 소개를 잘 해 주셨군요
언제 구독해야겠어요
역시 작가님인지라 남 다른 면모를 엿 볼수 있군요

이제 이번 비로 인해 더위도 한풀 겪기겠지요
그 동안 더위로 인해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
2018년 8월28일 화요일....
잘 지내셨나요...?
귀를 기울려 9월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창문 커튼 사이로 9월을 기다리는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쳐갑니다.
왠지 좋은 것들로 다 채워질것 같은
기쁨 일렁거리는 하루되소서....
8월 마지막주 수요일입니다.
오늘도 하늘은 뒤덮은 구름과 시원한 바람속에 하루가 시작되었네요.
8월의 시작이 어제인듯한데 어느덧 8월도 3일밖에 남질 않았네요.
오늘도 활치찬하루 즐거운시간되세요~~~
죽음이란 단어는 정말 싫은데...
귀한자료 즐감하고 갑니다.
결국 그를 통증으로 해방 시켜 준 것... ???

죄송해요. 글이 너무 완벽해서 뭐 꼬투리라도 하나 잡고 싶어서요. ^^;;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이라는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 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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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펼치기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책 한권을 푹 빠져 읽은 느낌입니다. 잘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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