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당 태종이 두려워한 양신, 위징 | 중국
Uesgi 2014.01.16 17:15
중국 소설 <서유기>에서 점쟁이에게 이기려고 비내리는 시각과 양을 속여먹은 용왕의 목을 베는 역할로 위징이 등장합니다. 용왕이 죽을 운명을 피하기 위해 당태종에게 하소연하고, 이에 당태종은 위징을 자기 옆에 꼭 붙여놓고자 둘이 바둑을 두는데, 위징이 바둑을 두는 과정에서 깜박 잠이 드는데, 알고보니 위징이 꿈 속에서 천제의 명을 받아 용왕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에 죽어버린 용왕의 저주로 당태종도 죽어서 지옥으로 가서 자신이 죽인 형들의 유령을 보기도 하는 일을 겪는데, 왕이 죽었으니 장례를 치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위징이 가로막습니다. 이는 정말 죽은게 아니라, 용왕의 참소로 인해 재판을 받기 위해 저승에 행차한 것이니 곧 돌아올거라고 하지요.

과연 위징의 말대로 당태종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에 깨달은 당태종은 커다란 불법대회를 열게 되고, 이 불법대회에서 경을 읽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삼장법사였습니다. 이 불법대회에 참석한 관세음보살은 삼장법사가 읽는 경이 소승불교라고 비판하고 승천하니, 삼장법사는 서역에 대승불교의 경전을 얻고자 서역으로 떠나게 되죠.
위징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죠. 그 정도로 명망있었던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고 저자가 당대를 서유기 시작시점으로 잡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 바라쿠다
  • 2014.01.2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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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김씨는 정권을 잡고서 정조가 죽자 정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원범(철종)을 옹립하여 정조가 다져놓은 조선의 왕권을 쇠퇴하게 하고 철종은 강화도에서 사귀던 여인을 잊지 못하고 병사하게 되지요. 이때부터 조선의 급격한 쇠락이 시작됩니다. 전국적으로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민란이 일어나 전 국토가 피로 물들게 되지요.     이를 막아보려던 흥선대원군의 많은 노력도 정치적 실권을 가진 안동김씨의 농간에 모두 실패하고 결국 국력만을 따지면 일본과도 크게 뒤질게 없는 조선이었지만 총 한방 안쏴보고 종묘사직을 넘기게 됩니다. 이완용? 이런 친구들은 그들의 앞잡이일 뿐이지요. 요즘 보니 명문대가랍시고 화면에 종종 나오더군요. 6.25라는 커다란 내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민족주의세력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학살당했지만 안동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만 충성을 외치던 경상도와 몸으로 싸워야 했던 전라도가 서로를 혐오하게 된 건 이 때부터입니다. 혹자는 80년대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지역감정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만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는 적더군요. 지금에 와서 친일파와 그 추종세력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 많은 무리수를 두고 있다지만 민족주의세력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큰 피해를 보았던 나이드신 분들이 바보노릇을 하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겁쟁이일까요?
조선역사에 대해서는 저도 배우는 입장이라 뭐라고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동/서 그리고 남/북 갈등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고 경상도나 전라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린아이들까지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김좌진 장군과 그 6촌 동생 김종진 님, 의병장을 지냈던 김복한 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구 주석이 안동 김씨입니다.
개화기때 조선과 일본의 격차는 많이 벌어져있던 상태였죠. 조선이 뒤져도 많이 뒤져있었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원하던만큼이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개혁을 시도해봤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전무하진 않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안동김씨는 고려태조 왕건때부터 쭉 유력한 집안들이였는지라, 천년의 역사를 가진 집안이 국가에게 영향력을 안끼칠수가 없었을테니, 조선의 운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고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은 안동김씨나 친일파보단, 박정희 전대통령의 편파적인 도시개발산업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생략해서 쓰신거라 생각되지만 혹시 몰라서요,,, 정조 다음에는 순종-헌종-철종 순으로 왕위가 이어집니다. 물론 말씀하신데로 안동김씨가 철종 옹위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정조가 급사하고 어린 순종이 왕위를 이어 받았을 때 위징같은 양신이 정권을 차지하지 못했다는게 우리 역사의 슬픔이죠. 세도정치로 19세기를 그냥 날려 먹었으니까요.
문득..우에스기님..스타일이라면...당나라..군사들의 군장모습과..일러스트가..쪼메..나와야 지요..^^
아! 지난 번과 이번 이야기는 다른 사이트에 올린 글을 가져오느라고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당태종을 보면 한국인들의 역사인식문제가 떠올라 한숨이 나옵니다.
그 길고 방대한 중원역사중 가장 정치를 잘했기로 정관의 치라 칭송을 받는 인물이, 한국인들 대부분에겐 고구려에게 패배한 퍠륜아로 인식되고 있으니 말이죠.
제가 어렸을때 사극 정관의 치를 보고 많이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서 구해서 볼 수가 있는지... 고증도 엄청났던걸로 기억합니다. 공방전장면에서 우에스기님이 올린 게시물들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중 사극에선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던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국수주의 역사관이어서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흥개발국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역사에서 칭송받는 지도자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 천리길
  • 2015.12.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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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라는 4권의 책이 있습니다... 한번 찾아 보십시요...
갑자기 삼국지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조조가 적벽대전이라고 읽고 사실 적벽전투에 가까운 전투에 퇴각하면서 그랬죠 효봉(곽가의 자)이 살아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며 후회했죠
비슷한 일화가 많은데 아마도 빗대어 이야기한 경우 일 겁니다.
이민서의 서하집에 요렇게
~魏徵若在。不使朕有此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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