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역사상 최초의 포격전 – 콘스탄티노플 공성전 | 터키
Uesgi 2014.09.30 11:32
육군을 동원해 찍었다는 그 영화군요.
근데 영화를 다 보진 않고 부분적으로만 봐서 모르겠는데, 배를 육지위로 끌어다가 북쪽인가로 바다쪽에서 공략하려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건 뭔가요? 어쩐지 뻘짓한것같던데...ㅎㅎㅎㅎ;;;
해상 봉쇄를 당했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바다에서도 공격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워낙 오래 전 기억이라...

기억으로는 쇠사슬로 아예 만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봉쇄했었을 겁니다.
  • 장지현
  • 2014.12.0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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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은 > 자로 생긴 반도의 육지방면(서쪽) 한쪽면을 강력한 성벽(테오도시우스 3중성벽)으로 막아서 방어력을 높인 도성이었는데요. 이 >자지형 중 북쪽 바다는 금각만(Golden Horn Bay)이라는 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만의 입구를 쇠사슬로 막아놓으면 적의 해군이 진입하지 못하여 북쪽 면 전체의 방어부담이 사라지는 큰 이득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안그래도 해군이 약한 편이었던 오스만투르크군은 콘스탄티노플 북쪽 금각만 방면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메흐메드 2세는 주변의 숲을 밀어서 목재를 원통형으로 가공하고 이를 바닥에 깐 뒤, 전함을 육지를 통해서 금각만으로 옮겨버립니다.

본래 비잔티움 제국군은 자국군과 교황의 원군, 베네치아 의용군 등을 합쳐서 8000명도 되지 않는 적은 수였는데, 바다쪽의 방어가 불필요해진 점,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난공불락의 성벽에 힘입어 8만 이상의 오스만투르크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금각만 방면까지도 방어해야하는 어려움이 겹치자 대포공격에 따른 성벽붕괴 복구인력 및 농성전 인력을 비약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고,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에도 큰 기여를 하게됩니다.

그렇게본다면, 배를 육지위로 끌어다가 북쪽 바다로 공략하려는 장면은, 영화에서 꼭 나와야하는 중요한 장면이 되지않을까요?^^
오, 그렇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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