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몰랐던 임진왜란 (2) - 수군없이 도박한 고니시 1진 | 한국
Uesgi 2016.03.24 00:09
결과로만 보면, 원균이 1진/2진과 싸우다가 인력까지 소모할바엔 차리리 그 인력이 이순신장군 휘하에서 다시 모인게 다행으로 보입니다. 칠전량에서 워낙 거하게 말아먹은걸 보면 싸운다고 해도 잘될것 같지도 않네요
원균이 보존한 것은 판옥선 4척에 극소수 병력에 불과했습니다. 박홍과 원균 모두 자침시키고 불지르면서 와해되었습니다. 단 한 발의 화살도 날리지 않은 채로 조선수군의 2/3이 사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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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우수사 원균이 우후(虞侯)를 시켜 병영을 지키게 하고 백천사(白川寺)에 달려가서 관망하다가 우리나라 어선을 적선인 줄 알고 당황하여 노량(露梁)으로 물러났다. 우후가 그 소문을 듣고 성중 노약자(老弱者)를 나가라고 독촉하니 죽은 자가 많았다. 어느 섬의 군사가 그 형세를 보고 모두 흩어졌다. 남해 현령 기효근(奇孝謹)은 창고를 불태우고 달아났다. 원균은 적이 여러 성을 연달아 함락시켰다는 말을 듣고 주사(舟師)를 인솔하고 가덕도(加德島)로 향하다가 적선이 바다를 뒤덮으며 오는 것을 보고 퇴각하여 돌아오니 여러 장수도 차차 흩어져 갔다.

... 우수사(右水使) 원균(元均)은 군영을 불태우고 바다로 나가 다만 배 한 척만을 보전하였다. 병사와 수사는 한 도(道)의 주장(主將)인데 하는 짓이 이와 같으니 그 휘하의 장졸(將卒)들이 어찌 도망하거나 흩어지지 않겠는가. 양산(梁山)의 가장(假將) 밀양 부사(密陽府使) 박진(朴晉)도 창고와 병기(兵器)를 불태우고 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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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은왜군이 이미 조선수군의 위력을 절감한 상태였고 벼르고 별러서 충분한 전력을 가지고 끌고다니며 결전으로 유인했습니다.                 이번 이야기 상황과 완전히 다릅니다.                

차라리 배설이 판옥선 12척을 가지고 달아났듯이 원균도 초기에 경상우수영 전력을 가지고 그대로 달아났다가 전라좌우수영과 합세했다면 임진왜란 판도는 크게 달라졌겠죠?
문득...지도를 보니..제주는 전략적인...가치가 떨어지는 건가요??차라리...제주를 평정하고 그곳을 전진기지삼아..
공격진을 두갈래로 나누어...전라도 곡창지대와..한성을 바로 공격하는것도...나쁜 선택은 아닌거 같은데...
아니면 그 당시 왜선이 항해술이나...장거리 항해가 좀 부족한 수준이었습니까????^^ㅎ..막
내 뱉어 보네요..
대마도라는 훌륭한 전진기지가 있었고 제주도는 당시에 인구나 부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전쟁발발 첫날부터 부산이라는 조선 최대 항구 중 하나를 점령했으니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죠.

왜군 육군의 진격속도가 워낙 빨라서 수군까지 육상에 올라가 따라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원균이 이순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신이 된 거죠? 저정도면 역적급인데? 조선 조정이 바보였나여? 뭐가 어떻게 돌아간거죠?
일단 한반도 끝까지 달아난 선조가 남해안의 전황에 대해 제대로 알 리가 없겠죠? 원균 등의 허위 과장보고가 더 먹혀들었고 자세한 이야기는 위키 등에 있으니까 확인해보세요.
지금은 원균을 성웅과 같은 선상에 놓는 사람이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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