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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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년인생(熟年人生) 십계명(十誡命)
맑은별 ★ 2019.06.09 21:29
오늘은 날씨가 흐린가운데

기온이 쌀쌀하다는

기분이 드네요

이럴깨 일수록

감기 조심하시구요

사랑합니다 ~~~ 불친님 ,

,,,,,,,,,,,,,,,,,,,,,,,,,,,,,,,,,
위로와 사랑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 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에서
맑은 별님 멋진영상   아름다운시잘 읽고 잘 보고갑니다
감미로운 음악 잘 들었습니다
하세요.맑은별님
행복의 소중함과 고운사랑,
그의미에 담은 귀중한글 잘 받았습니다.
온누리에 초록물결 활짝피고
하늘엔 잿빛구름 가득 시원한 날이군요.
오늘도 기쁨과 거움이 넘치는
멋진하루 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랄께요.
사랑이 오래 가는 비결  

    
진짜 사랑이니
가짜 사랑이니,
첫사랑이니 두 번째,
세 번째니 따지지마.

그 시간에 차라리
오늘 저녁에
둘이서 뭐 먹고 뭐하고 놀까,
그 생각을 해.

그게 훨씬 기분도 좋고
사랑이 오래 가는
비결이니까.


- 양순자의
《인생 9단》중에서 -





안녕하세요?

제주도 전북을 왕실에 진상하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 가 작업한 것은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이었습니다.

17세기 말 제주의 해녀는 약 1000여 명이었는데, 원래 이들은 대부분
전복이 아니라 미역을 땄습니다. 진상할 전복을 캐는 것은 주로
포작인(浦作人·제주 방언 ‘보재기’)으로 불리는 남자들의 일이었지요.

1601년 제주도에 어사로 파견됐던 김상헌(1570∼1652)이 쓴                                                                                                                                
남사록(南사錄)에 이와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포작하는 자들은 홀아비로 죽는 자가 많다…. 본주(本州)에 바쳐야
할 전복의 수가 극히 많고, 관리들이 공(公)을 빙자하여 사리를 도모하는
것이 또한 몇 배나 된다. 그 고역을 견디지 못하여 흩어져 떠돌다가….”
제주 목사(牧使)가 해적을 정탐한다는 구실로 포작인들을 남해안의 섬으로
데려간 뒤 전복을 따도록 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답니다. 광해군일기 1608년
기사도 “전복을 잡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로, 종일토록 바닷속에 들어가도
겨우 한두 개를 건진다”고 나옵니다.

수많은 포작인들이 수탈과 고역을 피해 제주도에서 전라도, 경상도 해안으로
도망쳐 나갔고, 300여 명이던 포작인은 18세기 초 88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694년 제주에 부임한 목사 이익태는 전복을 딸 남자가 급감하자 미역을 따던
해녀들에게도 전복을 캐 바치도록 했다고 해요.                                                                

해녀들의 바다 작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옛 전설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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