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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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시조 / 수필 (592)

이가은 시조시인의 작품 <대바구니에 빛살 담듯>을 낭송합니다. | 시 / 시조 / 수필
홍종만 2019.04.04 11:05
  • 산중문답
  • 2019.04.0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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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란Dai Lanh 포구의 아주머니를 만나다 4 (完)  




                                                       다이란DAI LANH 포구의 아주머니를 만나다 4



VINASUN 택시가 내리막길을 들어섰습니다. 가깝기는 봉로만 해변이고 멀기로는 멀리 닌호아 해변과 맞닿은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나선은 우로 돌고 좌로 돌며 내려가고 또 내려가 드디어 다이란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저기 보이는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식당 주인에게 다이란 포구 아주머니의 집이 어디인지 물어보자.’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떴으니 점심시간임에도 식당에서 밥을 먹는 손님이 한 명도 눈에 띠지 않았는데 우리 일행 열 명의 이방인이 우르르 몰려오니 주인과 점원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가 생존해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생존해 거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습니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 사진을 식당 사장님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그 사진을 보자 식당 여사장님이 ‘어?’라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홍종만 전우님이 사장에게 이 분이 살아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아~ 아~ 다이란DAI LANH 포구의 그 아주머니가 살아 계신답니다.

식당 사장님은 우리가 다이란 포구의 그 아주머니를 보러 왔다는 눈치를 챈 것 같았습니다. 사장님이 황급하게 전화를 걸어 뭐라고 하는데 목청이 꽤 컸습니다. 분위기는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식당 사장님이 군대 지휘관이나 된 듯 저만치 앞장서서 우리에게 빨리 따라오라고 주먹을 쥔 오른팔을 오르내리며 수신호를 보냅니다. 언덕배기를 올라 철둑을 건넙니다. 철둑을 넘으면 내리막길입니다.



전우들이 나보다 더 급했습니다. 전우들은 빠른 걸음으로 사장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나보다 앞선 전우들이 뒤를 바라보며 나에게 타박을 하듯이 ‘아~ 뭐해. 빨리 오지 않고.’ 라고 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하여 헐레벌떡 따라가지만 그날따라 바쁜 마음이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좌우로 몇 번 돌고 돌아 파란색 대문으로 나보다 먼저 전우들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나보다 먼저 대문 안으로 들어간 전우들이 좌우로 사선으로 줄을 섰고 내가 그 가운데로 걸었습니다. 마치 내가 사열을 받는 모양새였습니다.

50여 성상星霜 서리 찬 별들은 명멸할 때마다 자지러지며 소멸하였고 바람이 초원의 가운데를 가로지를 때 풀들은 등을 굽혀 바람이 지나갈 길을 터주었습니다. 바람은 풀들이 터 준 초원길을 따라 불어가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는데 그렇게 스쳐 지나간 바람의 흔적을 사람들은 세월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때는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가 우리를 대하는 처신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리 진하게 몸에 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나이 들어 장가들어 상봉하솔上奉下率하며 이리저리 치이고 부대끼는 세월을 지내다 보니 반백년 전 월남의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가 고마웠다는 생각이 절로 깊어졌습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늦철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아~ 우리에게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대해주셨구나.’라는 생각이 진해진 것입니다.

반백년 전 당시 월남전 때 월남군으로 적과 전투 중에 총상을 입어 다리를 저는 남편을 수발하며 열두 남매를 기르던 이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 전쟁을 치르는 주민으로 목숨이 경각이 달려 엄중하고 위태위태한 시절, 다이란 포구의 주민 개인들 간의 살아남기 위한 다툼과 경쟁이 난무할 때에도,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친절은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새록새록 깊게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아주머니에게 ‘그때 고마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져 화석처럼 단단해졌습니다.



“서로 살아있어 뵙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반백년 만에 그때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손 씻으라고 대야에 물을 떠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물에 적신 수건을 건네주며 얼굴을 닦으라고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생사를 가르는 까(CA) 고개를 넘느라고 공포와 긴장에 찌든 우리에게 물 한 모금을 마시게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평상平床에 앉아 쉴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이국異國의 병사와 다이란 포구의 주민들과의 유대를 원활하고 원만하게 유지하려고 주선을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실로 반세기 만에 드리는 인사였지만 깍듯하고 분명하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죽은 이의 영정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한들, 향불 사르고 혼백 불러 인사를 한들, 제수祭需 차려 흠향歆饗하시기를 바란들 서로 살아있어 손잡으며 살아있는 이의 말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 살아있는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가 살아계시고 나 또한 살아있어 살아있는 말로 인사를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는 몸가짐이 조신操身하셨고 말수가 적었습니다. 이번에 50여년 만에 뵈니 전쟁과 난리 통에 겪은 삶의 흔적과 궤적이 서로 섞여 있어 혼란하게 보였습니다. 마른 몸매에 배여 있는 고단한 삶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말수가 적고 조신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아주머니에게 고마워하는 내 마음을 다 말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중이던 과거의 심정과 전쟁 후 지금까지 혼란한 시절을 살아온 현재의 심정이 어떠하신지? 전쟁이 끝나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지금 건강은 어떠하신지? 앞으로 여생을 건강하시게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집에 발을 들여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울컥 가슴을 치고 치밀어 올라오는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꽁꽁 맺혀있던 감성이 일순간에 터진 것입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급성 전염병처럼 전우들에게 퍼졌습니다. 내가 울먹이자 전우들이 따라 울먹였습니다. 다들 본병이 도졌나 봅니다.

생사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던 전우들이어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전우의 심정을 알기에 애환哀歡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이란 아주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약간의 다과와 봉투를 드렸고 전우님들이 이에 동참하셨습니다. 김영균대장님이 20만동을 비롯하여 개별적으로 갹출醵出하여 100만동을 만들어 다이란 아주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전우님들께 고마운 마음 이르기 끝이 없습니다.





<에필로그>

그러고 보니 VINASUN 택시가 다이란 포구로 진입하는 이정표를 놓치고 터널을 통과할 때부터 노심초사勞心焦思하던 나의 걱정이 한갓 기우杞憂에 불과했음을 알았습니다. 다이란 포구를 방문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나의 가벼운 조바심으로 잠시나마 전우들의 속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전우님들은 당연히 다이란 포구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적당한 곳에서 차를 돌린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감사드립니다. 월남어를 잘 하시는 홍종만전우님이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 식당 사장님에게 통역을 해주셔서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박 전우’라며 다이란 포구의 아주머니와 만남을 축하해 주신 전우님들께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다이란 포구 방문과 까(CA)고개를 넘는 일이었습니다. 두 가지 목적을 매우 만족하게 이루었으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식당 일을 제쳐놓고 우리를 안내해주신 Dai Lanh 포구의 Quan Com 식당 사장님에게 고마운 인사드립니다.

(백마 APC 박호범)

  • 산중문답
  • 2019.04.0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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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만전우님, 베트남 전적지 여행할 때 통역을 해주셔서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DAI LANH포구의 아주머니가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곡절했지만 살아계실 거라는 기대는 희미했었지요. 아~아~그런데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뛸듯이 기뻤고 오랜 세월 마음 한켠에 쌓였던 '그때 고마웠습니다.'라는 인사를 나름대로 깍듯하고 분명하게 해서 밀린 숙제를 끝낸 한갓진 마음이었습니다. 홍전우님의 통역을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주월백마사단 장갑(APC)중대 투이호아28연대 파견 APC소대 박호범 전우님의 장문의 전적지탐방기를 잘보았습니다.
여러차례 전적지탐방을 갔었지만 , 반세기전의 주소와 사람들을 한번도 찾지못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고, 그때의
월남사람들도 많은 핍박을 받아 이산되었고, 해외로 나가 거주하는 경우도 많아서 ,상봉의 기쁨을 갖기 힘들었습니다.
박호범 전우님과 같이한 2018년12월의 전적지탐방은 저로서도 기억에 남는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박호범 선생님, 글 읽으며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옛 전적지를 찾아가시고 격전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만나셨다고 하니 저도 기쁩니다.
월남의 자유수호를 위해 참전하시고 고난을 함께 견디어내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능소화님! 위의 박호범 전우님도 오랜기간 교직에 몸담으셨던 분입니다. 1965년 고등학교때 <이호우님의 시조-낙동강 빈나루에.....>가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세월이 어렵고 힘들던때라 가슴속에 묻어놓고 오랜세월을 지내오다 연전에 <월남전적지를 다녀오다 찍은 사진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 , 아들의 권유로 <블로그>를 개설하여 ,그날그날 日記적는 心情으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未熟하여 사진은 다 올리지못했습니다. 시조시인 양계향 선생님의 다음 카페 <목련동시조>를 알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고있습니다. 능소화님! 많은 작품을 보고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지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3월 3일, 저의 시조 2편도 올려주셨기에 감사의 답글을 올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어 저의 메일 주소를 남겼더니
다른 분이 보았는지 벌써 불순한 메일이 들어왔기에 삭제하였습니다. ^^
양계향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아시고 계신다면 잘 알려주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시조와 동요로 , 삶에 지친 마음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시는 능소화님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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