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고운 노을을 따라서................
07
2014/12
대마도,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와 조선 통신사비를 찾아...2014, 12, 01 | 일본
寶梅 2014.12.07 16:50
저도 올해 봄에 카이도에 출장중에 느낄수있는것은 도로에 쓰레기가 없는것과 친절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것 같더군요. 한번은 길을 물어보았는데 나는가고 있는데 지도를 가지고 따라와서 목적지
까지 알려주고 가던군요. 복장을 보니 앞치마를 하고 있던아주머니가 생각이 나던군요.
일본은 미워도 배울것은 많더군요. 저도 이번에 해변 산책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건너려고 서 있는데 달려오던 차가 세우고 건너가라고 손짓을 해줍니다. 됫차가 밀려 있었는데도요. 우리나라 같으면 세워주지도 않지만   그런 경우라면 뒤에서 빵빵대고 난리일것입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비록 정략결혼을 했지만 두분의 결혼생활이 순탄했는 데 덕혜옹주는 그렇지 못했군요. 일본이 지방의 일개 호족인 대마도 도주의 아들과 대한제국 황제의 딸을 결혼시킨 것은 우리나라를 격하시키는 정략적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덕혜옹주는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다보니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고 비극으로 끝났군요.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분도 한 편 주장으로는 그리 교양이 없는 분이 아니었고 덕혜옹주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고 하는 데 그 역시 역사의 희생자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덕혜옹주는 역사의 희생양이 된것이지요. 어찌보면 몰락해 갔지만 왕조의 핏줄이기 때문에 신정권이 들어 오면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쫒겨 났다고 봐야 할거 같아요. 덕혜옹주는 남편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신 질환에 시달려 갇혀 살다가 박정희 정권때 한국으로 돌아 오지요. 덕혜옹주가 낙선재에서 요양할때 남편이 찾아 왔다 그래요. 지병이 악화 될까 만나게 하지 않았다고 하구요,   한국에서 절름발이등등 아주 나쁜 모양은 다 표현해 남편을 쫒아버렸다고 합니다.  
등록
텍스티콘 텍스티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