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 隨想錄
世間事,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나의 이야기 (70)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나의 이야기
乘風破浪 2019.02.24 11:51
우리같은 범인은 도저히 결론을 낼수 없는
애초에 꿈 도꾸자 말아야 할
어려운 도리이군요.
어렵다니요?
노당님은 일상의 모든 일을 자유롭게 마치 게임하듯 즐기시면서 살아 가시니,
이미 도통한 삶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乘風破浪님

하세요 2월끝자락
주일밤에 울님을 뵙습니다
벌서 봄이와 포근하네요,
지금세태엔 달마가 너무 많은 것같습니다
따라서 세상은 늘 소란하네요
휴일밤 좋은 휴식으로 氣 회복하시길 바랄께요"감사" -남경-
예 남경님도 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3월 1일,
오늘은 최초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신 의병장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1899년 관리로 등용되어 성균관박사, 의정부참찬 등을 지냈 유학자 허위(許蔿)
호는 왕산(旺山)1855년 경상도 선산군 하고면 임은동(현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느니 보다 온갖 힘을 다하고 마음을 합하여 빨리
계책을 세우자. 진군하여 이기면 원수를 보복하고 국토를 지키며, 불행히
죽으면 같이 죽자. '의'와 '창'이 분발되어 곧 나아가니 저들의 강제와 오만은
꺾일 것이다.
(중략)
비밀히 도내 각 동지들에게 빨리 통고하여 옷을 찢어 깃발을 만들고,
호미와 갈구리를 부수어 칼을 만들고…
(중략)
우리들은 의군을 규합하여 순리에 쫓게 되니 하늘이 도울 것이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1908년 10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셨습니다.(당시 53세)
일본군 헌병사령관이 직접 그를 심문하고 고문했지만 오히려 그는 일제에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 용맹의 기상이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허위은 관계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왕산로입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좋은 말씀 잘 새겨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을 집중하며 노력했는데
자꾸만 머리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답례문안 드리고 다시 뵙겠습니다.
거나하게 취해 머리의 온도 올라 갈 때면, 기분은   참으로 좋지요.
또 모든 게 좋게 보이니, 생각 또한   '핑! 핑!'   돌기도 하고요.
저도 음주를 즐기지만, 예전처럼 많이를 못하니 좀 심심하긴 합니다.  
신성과 불경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달마의 의지력이 9년 면벽수행을 낳을 수 있었군요.
마음도 함께 오라고 그리도 애타게 호소했던 바탕이 달마를 동쪽으로 이끌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인도 - 중국 -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찬란한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이 함께 발전할 수 있었으니 참 고마운 분입니다.

이제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정신문화는 몇 달러의 수준에 이르렀나 깊이 생각해 볼 처지입니다.
역시 선생님께서 좋은 생각거리를 주심으로 제 맘 밭을 일구어 주십니다.
늘 감사합니다.
달마가 면벽수행을 할 때, 혜가가 찾아 와, 제자로 받아 줄 것을 간청을 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자, 눈오는 마당에서 선 채로 하룻밤을 새웠다고 하지요.
그래도 달마의 응답이 없자, 자신의 결심을 보여 주겠다면서 한쪽 팔을 삭뚝 잘랐다고 하지요.
그제서야 달마가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중국 선불교의 二祖가 되었고, 이어서 승찬 도신 홍인 혜능으로 이어졌다고 하지요. 그나저나 달마의 얘기는 다분히 전설화 된 면이 많아, 겉 보다는 가르침의 핵심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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