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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의 진실탐구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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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군사독재자였다 | 광주사태의 진실탐구 2005.08.18 08:09 역사학도
전두환이 민주대통령이라는 것 자체가 개코미디인데?
박정희는 그렇다고 치자...
이글을 쓴자의 목적이...영~
국민과 시대와 역사 앞에서, 하나님앞에서 더 이상 범죄하지 않았으면....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적어도 수십년 후에야 이루어지겠죠. 지금은 저런 무지한 자들이 설치는 시대이니까요.
역사학도가 씨이바 군사정부와 문민정부의 차이도 모르냐? 때려쳐라...쪽팔린줄 알라구...
   미친넘들 대중이에 한풀이독재정치 놈현이에 철부지앵무새정치 그래도 박통.전통때가
   좋앗다 미친넘들아 너희들엄마품에서 찌찌빨때니 알겠니 역사는배워라배워 ...
  • ㅁㅇㄴㄻㄴㅇㄹ
  • 2006.10.29 23:55
  • |
  • 답글
대한민국 헌법에0역사왜곡 뭐이런 죄목은 없나요???이글의 출처가 역사학도 님의 머릿속이라면;;;사형감인데;;ㅡㅡ';;; 근데 진짜 역사 공부 하시는 분 맞나????돈지랄 하셨네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신발색아
귀중한 글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0^.
지금까지 글을 읽어 보니깐...
느낌이... 역사 학도님쪽을 비판하는 쪽은 김대중 지지하신는 분 같고(전라도 분)
5.18 진실을 밝힐려고 하는(역사학도님), 그리고 역사학도님을 지지 하는 분은 경상분 분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어디 사람이냐고요?
저느 그냥 이 나라의 선량의 국민이요, 시민 입니다. 그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시민...
직역적으로 어느 편이냐구요?
전 아무 편도 아님니다.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광주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사랑하는 아내가, 광주분이고, 저희 장인, 장모 그 모두가 광주분입니다.
정말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위에 역사 학도 님 글을 첨부터 차근 차근 읽어 봤고, 그 글에 반댓 댓글을 다는 분도 봤습니다.

지금까지 본 글 대부분은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깐
그 글을 믿을 수 밖에 없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민주대통령이라...
글쎄요 그건 인정할 수 없네요...
민주 대통령이 3층 교육대 만들어서 오만 인권 말살을 합니까?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그래도 인권이란게 있는데...

아~~ 전두환 대통령이 한심한 대통령이란 말은 아닙니다.
지금같이 살기 어렵고, 힘든 세상이면,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보면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민주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 사이트에서 반박의 글을 올리는 분에게 부탁 한 마디...

역사학도님의 글을 반박할때는 역사학도님 처럼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감정적으로만 글을 올릴게 아니라..

그저 반박의 글을 보면 ...
아씨~~~ 열받는다,.. 씨팔놈아 사진 사진 몇장가지고 ...
이렇게 말하시는데, 님들이 보실적엔 사진 몇장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저 같은 제 3자가 봤을 땐 그게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면 믿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정 그리 열 받고 억울하시면 반박하는 님들도 아주 작은 거라도 좋으니, 글을 읽는 사람들이
수궁을 가게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이건 정말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의 바램입니다.
진실을 알고 싶은 국민님, 그 시대의 증인인 저는 그 시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삼청교육대는 5공시절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4공화국 시절에 단 몇 달간 시행되었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하신 날자가 바로 1981년 3월이었는데, 바로 12대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폐지되었습니다.   님이 거꾸로 알고 계신데 전두환 대통령은 삼청교육대를 만든 대통령이 아니라, 폐지한 대통령입니다.   그 시대를 모르시거나 기억하지 못하시면 삼청교육대를 폐지한 대통령이 어느 대통령이었는지, 취임과 더불어 삼청교육대를 폐지한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자료 검색을 해 보세요.   1981년 3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 당시 신문을 검색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런가요? 저가 잘 못 알 수도 있었겠네요?
그때 저가 좀 어렸어 착각했나봐요, 그때 저나이가 18살인가 아님 19살인가 좀 헷갈리네요
전 4공때 3층교육대가 창립되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최규하 대통령은 그냥 허수아비였고, 모든 실권든 전두환 장군이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고요, 그 실권자가 3층교육대를 창설한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81년에 삼층교육대가 폐지되었다는 말은 없네요.
이번에도 좀 착각을 하시는군요.   그때 18살인가 아님 19살이셨다면서 국보위 시절이 언제였는지조차   혹 모르고 계시는 것 아닌가요?   얼마 전 이경숙 이대 총장이 인수위 위원장이 되는 것에 대하여 그녀의 국보위 위원 경력을 트집잡아 좌익이 반대했었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삼청교육대는 그런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보위 위원들이 최규하 대통령께 건의한 것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광주폭동 직후 사회가 너무 불안하고 치안 유지의 주체가 없으니깐 각 분야의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최규하 대통령께 건의한 것이지요.

진실을 알고 싶은 님의 열정을 귀히 여깁니다.   그런데, 모든 실권든 전두환 장군이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으셨다는 말이 좀 착각일 것입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당시 님이 유언비어로 전두환 이름을 들으셨습니까?   아니면 어떤 객관적인 출처를 통해 아시게 되었는지요.   저는 그분이 1사단장이셨을 때부터 그분을 관찰하였기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분을 알고 당시 김대중이 운동권을 통해 유포한 유언비어 대자보 내용이 터무니 없는 거짓이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님은 김대중이 운동권을 통해 유포한 유언비어, 즉,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다"리는 말을 처음 들으셨을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그분 이름을 어떻게 처음 듣게 되셨는가요?   1980년 몇월경이었는지 기억하실 수 있는지요.    
  

워낙 오래 되어서 연대는 기억이 잘 안 지만, 저가 기억이 나는 건 그 당시에 짧은 팔을 입고 있은 건 기억이 나요, 그때 소문 내용이 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전두환이가 박정희 양자란 말 들었고요, 전두환이가 모든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암튼 처음 들은 소문은 박정희 양자란 말 처음 들었어요. 그때부터 전두환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구요

하지만 민주화 대통령이든 독재 대통령이든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에요.

중요한건 국민들의 삶의 질이에요.

솔직히 저 심정같으면 다시 80년대로 돌아갔어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국민들이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네, 기억하시는군요.   그런데 아마 님은 그때 아직 고등학생이셨기에 광주사태 충격을 저보다 적게 받으셨던 듯합니다.   최규하 대통령 임기가 1년이었는지 4년이었는에 대해 아마 별 관심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10.26사태 이후 10개월간 국가원수 유고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1980년 12월 하순 최규하 대통령께서 취임하셨지만 그분의 역할은 5공화국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과도기 정부 대통령 역할로 이해되었었지요.   그래서 그분의 임기는 1년으로 이해되었었습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국가원수 유고 상황이었으며, 그래서 계엄령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임무가 헌법 개정과 새 대통령 선출에 국한된 과도기 정부 대통령에 큰 권력이 있을 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3김씨 중 아무도 여당을 해 주지 않아 여당이 없는 정부였습니다.   만약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나라당이란 여당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직선제로 선출되었으며 5년의 임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자기를 지지해 주는 국회의원이 아무도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게다가, 양김씨가 최규하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날마다 선동했습니다,   요즘 촛불시위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백일 만에 벌써 힘을 잃고 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의 유일한 임무가 헌법 개정과 새 대통령 선출이었는데 그것마저 양김씨와 운동권이(재야세력이) 온갖 괴담, 유언비어 퍼뜨리며 방해했던 것입니다.

김대중이 최규하 대통령더러 5월 19일까지 하야하라, 신현확 총리더러 5월 19일까지 내각 총사퇴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내더니 광주사태가 터졌습니다.   최규하 대통령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그리고 광주시민군이 무기 반납 조건의 하나로 최규하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던네다 여당 없는 정부가 내각마저 총사퇴하였으니 국정운영의 주체가 공백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5월 31일 국보위를 설치하셨던 것이고, 님이 짧은 팔을 입으셨던 때가 바로 국보위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 장군은 그때부터 등장합니다.   님이 언론 매체를 통해 전두환이란 이름을 듣게 되신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장군을 국보위 상밈위원장에 임명하셨으니까요.   전두환의 등장은 더 이상 좌익과 운동권이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완전 전복시킬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전경이 아직 없던 시대에 경찰도 지켜주지 못했던 최규하 대통령을 전두환 장군께서 지켜주신 것이지 권력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혹 최규하 대통령 회고록이 발행될 수 있다면 님도 이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국보위라고 검색하니깐 네이버 사전에서 이렇게 나오네요


약칭 국보위(國保委)라고 한다. 1979년 10·26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1980년 5월 31일 전국비상계엄하에서 설치하였다. 상임위원장 전두환(全斗煥: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강경세력으로 구성되어 '최고군사회의'의 성격을 띠었다.

대통령이 비상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내각과 계엄군당국 간의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최규하(崔圭夏)를 의장으로 주요 행정각료 10명과 군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가 위임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상임위원회는 13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기능을 하는 등 제반 업무를 분담하였다.

안보태세 강화·경제난국 타개·정치발전·사회악 일소를 통한 국가기강 확립 등의 기본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명분으로 유신체제하의 핵심세력을 포함한 공직자 숙정, 중화학공업투자 재조정, 졸업정원제와 과외금지, 출판 및 인쇄물 제한, 삼청교육 실시 등 지배구조의 재편을 위한 제반조치를 신속하게 실행하였다.

8월 13일 당시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8월 16일 대통령 최규하가 하야함으로써 국보위의 정치적 조정작업이 마무리되었다.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은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개정 헌법이 10월 23일 확정되자 국회, 정당,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해산되고 국보위는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하였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제반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신군부의 제5공화국 출범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후 11대 국회의 개원과 더불어 해산되었다.
잘 알았습니다.
역사학도님 말만 실례할 수가 없어서 여러 사이트를 다녀왔지만..
님처럼 확실한 증거와 설득력이 있는 글을 보진 못했습니다.
그냥 광주민주화 운동은 구국의 길이었다고만 이야기만 하네요...
한편으론 맘이 아프네요
아직은 어느쪽이 진실이라고 속단하긴 힘들지만

5.18쪽이 진실이라하더라도 맘이 아프고
또 님 말씀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맘이 아파요

지금으로선 아직 님 글에 명백하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반박하는 글을 못봤어
님말을 믿을 수 밖에 없네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거에요...
님 말씀이 진실이라면...
많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히는데 힘쓰주십시요.
저도 이 사이트를 홍보해드릴께요
감사합니다.   님도 광주사태 당시 우리나라가 위기상황이었다는 것을 조금은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5월 21일 도청앞에서 오천명이 사살되었다는 광주학살 유언비어, 전두환이 전라도민 싹쓸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유언비어 등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유언비어들에 속아 사실로 믿는 국민이 많을 수록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었지요.

5월 21일 도청앞 충돌 때 실제 시민군 사망자는 총4명이었으며, 그것도 모두 시민군 총기 오발사고에 의한 사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5천명 사망설 유언비어는, 광주사태 때 만 명이 학살되었다는 유언비어는 뻥튀기기가 너무 심합니다.

사기꾼들이 그것이 구국운동이라고 주장하려면 그들이 퍼뜨렸던 그 무수한 유언비어들이 근거가 있거나 확인된 사실인지를 먼저 밝혀 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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