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

촛불봉기의 철학과 과학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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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반비판. 6] ‘반자본주의’ 실재론과 절망의 정서 | 촛불봉기의 철학과 과학 2009.05.15 13:04 날아온씨앗
이 글을 읽으니까 문득 옛날에 '노동해방문학'에서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강단피디 를 매우 비판했던 글이 생각납니다. 특히 노급 계열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 같은데, 혹시 그 글이 지금도 남아있으면 함께 엮어놓으면 참고가 될듯 합니다.
'근본적 혁명의 카드와 현실의 벽 카드를 수시로 꺼내드는' 강단 지식인들을 언급한 대목에서 불편할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곰씹어 읽을 만한 통찰이 많은 글입니다. 초반에 선생님이 언급하신, "촛불을 불편해하는 일부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 이택광님에 대한 비평을 통해 적절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촛불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쉽습니다. 논쟁을 선언하고서도, "자신에게 불편한 구절에만 반응하는" 이택광씨는 이미 논쟁을 이끌어갈 자격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이택광씨의 글이 현란한 개념으로 도배될 수록 공허해지는 것은 독자가 라깡과 랑시에르, 그리고 이택광씨의 논문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논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네르바의 촛불>과 <당신은 왜...>를 읽지 않은 한윤형씨나 최원씨 등이 논지를 더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지요. 지식인으로써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권의 책을 충실하게 읽지 않은 한윤형씨나 최원씨가 이택광씨의 뒤를 이어 논쟁을 이끌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모처럼 열린 '진지한 논의의 장'이 허무하게 끝나버릴까봐 많이 아쉽습니다.

이택광님의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저는 촛불이 민족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노동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을 가진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촛불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에 반대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촛불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촛불을 논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다중론'으로 촛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good start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 논쟁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독자의 한명으로써 선생님께 촛불에 대한 사유를 지속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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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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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한윤형씨는 <당신은 왜...>의 필자 중 1인입니다. 물론 그에게 이택광님을 대신해서 논의를 이어갈 능력은 전혀 없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한윤형님이 <당신은..>의 필자 중 1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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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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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시군요. "<당신은 왜...>를 읽지 않은 한윤형씨"라는 구절 때문에 약간 오해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어떤 의미로 쓰셨는지 이제 명확하게 와닿는군요.
저도 촛불 속에 민족주의라 불릴 만한 강한 하나의 조류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촛불들의 인류인주의적 공통화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촛불이 노동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면 그 결이 민족주의에서 나오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원천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지, 그것의 노동운동의 결과의 차이가 퇴행인지 전진인지가 규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의 '중간계급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중간계급이 무엇인지부터 재정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눈에 띄는 오류는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을 분리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한국사회는 중화학 공업 중심의 포드주의를 심도깊게 겪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은 이미 중간계급으로 침투해있습니다. 양대 노총을 비롯하여, 언론, 공무원, 교사 노조의 조직원들은 이미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중간계급'입니다. 촛불이 기층운동권을 배제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중간계급'의 운동 또한 배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간계급'을 배제하는 '중간계급운동'이라는 모순적인 명제가 탄생합니다.

이들 '노동자 계급'을 제외한 중간계급이라면, 삼성과 같이 노조가 없는 기업들의 화이트칼라 직원정도 되려나요. 이들이 촛불에 기여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택광씨은 최원씨 블로그에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주도적인 목소리가 '중간계급적'이었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외칩니다. 이 대목에서 피식 웃었습니다. '천주교의 미사'가 중간계급적이었을까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중간계급적이었을까요? '닭장투어', '명박산성'이라는 신조어가 중간계급적이었을까요? 님들이 '중간계급'에 집착할 수록, 드러나는 것은 '지적불성실함'입니다. 최원씨가 제시해야 하는 수 많은 자료는 '낯선 이론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 많은 통계자료와 언론보도, 인터넷 자료,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중간계급'라는 용어가 가지는 불안정성 부터 해소한 다음에 논리를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최원씨에게는 일단 프랑스혁명 시대의 계급론을 지금 한국 사회에 적용시킬 때 생기는 모순들 부터 해소하라고 권하고 싶습어집니다.

어제부터 선생님의 블로그에 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만, 저 스스로의 지적인 불성실함 때문에 창을 닫곤 했습니다. 언젠가 강의를 통해서든, 다지원을 통해서든 인사를 드리고 가리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김영삼 - 개신교
김대중 - 천주교
노무현 - 천주교 ? 무교?
이명박 - 개신교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5057
참세상 - "한겨레, 썼다하면 민노 '갈구는'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70611143048&Section=
프레시안 - 국민들 "현 노동운동 점수는 41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58&aid=0000003204&
민노당 - [기자회견문] 노무현대통령, 한미FTA 토론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007-08-31
                                                                                                                                                                 여론조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성급한 결정 61%

http://www.ytn.co.kr/_ln/0103_200711111707443869
YTN - 노동자·농민 대규모 집회, 경찰과 충돌 2007-11-11
                                                                                                                                                 3만명집결 VS 촛불시위 최대 100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8&aid=0000037973&
정책포털 - 국민 55% “한미FTA 국회비준 통과 지지”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6240173
동아일보 - “촛불시위 불법 - 폭력 행위 책임 물어야” 63.5%
     촛불시위 그만해야 한다’는 답변이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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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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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무교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82&aid=0000215949
부산일보
노무현 종교관련 추가
서류상 혹은 정서상의 친밀도가 아니라 실제 신앙생활 자체를 기준으로 무교라 하는겁니다.
이택광님의 글이 무슨 뜻인지 조정환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푸코의 한 인터뷰입니다. 선생님 글을 보다보니 이 내용이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하지만 저는, 자명성과 보편성을 파괴하는 지식인을 꿈꾸는 것입니다. 현재의 무기력과 속박의 한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슨한 지점, 균열, 여러 힘의 선을 가려내어 이윽고 그것을 지적하는 자. 쉼 없이 자기 위치를 틀어, 현재에 너무나 주의를 기울인 탓에 내일 자기가 어디에서 무엇을 생각할지도 정확히 알 지 못하는 자. 이동할 때마다 그 곳에서 혁명을 위해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할 각오가 있는 자들만이 응할 수 있다고 이해하면서, 희생을 감수하며 혁명을 일으킬 만큼의 가치가 있나, 어떤 혁명인지(그것은 어떤 혁명인지, 어떤 희생이 나는지를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협력하는 자. 저는 그런 지식인을 꿈꾸는 것입니다"(1977a pp.268~269).

명문이지요?*^^* 두 분의 논쟁, 특히 '지식인의 자리'와 관련하여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조선생 블로그에 와보니 왜? 이택근선생이 판타지를 말하는지 감이 잡히는군요.

생각해봅시다. 아줌마들이 대거 참여하는데 이들 아줌마들은 아이들이 미국쇠고기먹으면
다 죽는줄 알고 두려워서 나왔습니다. 대출1억씩 받아서 산 내집값 폭락하길
바래서 나온게 아니죠. 진보진영은 이명박 정부를 토건세력이라 비난하는데
정작 우리국민 절대다수는 그 토건세력이 구축한 시스템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지금의 체제가 붕괴되면 부유층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싹 붕괴가 되죠.

그래서 중간계층이 철저하게 진보를 외면하는겁니다.

이러한 기본 틀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중간계층이요? 역설적이게도 진보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계급은 기층 계급입니다. 한나라당의 지지자 분석을 보면 극소수의 부유층 + 50대 이상, 하층, 농어촌, 고졸이하, 자영업자, 주부들입니다. 도리어 진보를 철저히 외면하는 계급은 중간계급의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기층계급이죠.
동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죠. 함께 하는 집합행동의 실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모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공간 속에서 어떤 정서적 변용이랄까요, 그런 것을 통해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우리가 경험한 것이 아닌지요.

중간계층은 촛불 속에서도 계속 같은 중간계층으로 존재했을까요? 그런 면도 있겠지만, 아닌 면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잠재적인 것도 현실적인 것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실재'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다른 지점에서부터 사유할 수 있는 것이지, 다다르지 못한 이상에 맞추어 오늘을 사유하면 나오는 건 한탄과 허무주의 뿐이겠지요. 저는 작은 가능성, 잠재성으로만 도래한 것이라도 그것이 도래한 것이라는 것을 긍정하는데서 '진보'란 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답니다.
관념의 모험님 맞는말씀입니다. 다만 제말은 촛불에 참여한 중간계층이 대체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는거죠. 서민층에서의 한나라당 지지는 좀 다른 차원인데 신자유주의가 본격 실현된건 아이러니컬하게도 imf     이후 진보정권 10년동안이였습니다.
이것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심리때문인지 아니면 박정희에 대 한 향수차원인지 몰라도 이런 서민층의 한나라당지지는 한나라당에게 강한 압박요소가 될수가 있죠.                                                                                                                                                                                                

김강님                 님 말씀이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안사태가 발생했을때 이사태가 결국에는 원전수거물처리시설 유치에 따른 지원금은 지원금대로 날리고지역커뮤니티 는 붕괴되는 상황이 나타나는걸 예측했는데 진보진영이 이곳에 신재생에너지의 꽃을 피웠더군요. 아마 진보진영입장에선 이보다 큰 업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재밌는것은 현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기조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모범사례가 되기도 하는듯 하고 말이죠. 물론 언론에서 소개된 내용정도로 이해하고 있기에 실제 내부적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촛불은 분명 진보진영이 그 시기 그 장소에 같이 했던 많은 시민들이 적어도
진보가 말걸어 올때 귀를 기울여줄 수 있을 여지는 만들어 줬으리라 생각됩니다. 대안세력으로써의 강한인상은 부족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바로 이들 중간계층이 응답을 해올 여지가 커 보입니다. 당장에 생각해보자면 중간계급의 이탈자들이 호응을 할 가능성이 높죠.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지만 마르쿠제, 아도르노와 이택광을 비유하는 것은 잘못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반지성주의 운운하는 그 조류는 레닌주의와 닿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레닌주의는 내가 너희를 지도한다가 되지만 이택광은 내가 너희 정신을 분석해서 망상증을 치료해주마가 되겠죠. 마르쿠제와 아도르노는 노동계급이 사실상 체제내화되고(즉, 살아있는 체제의 부정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소멸하고) 새로운 투쟁의 싹을 찾을만한 물질적 조건이 성장하지 않은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절망을 절망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지적인 성실성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마르쿠제의 1차원적 인간도 대중을 경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시대의 추세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의 사실이고요. 여기서 1차원적이라는 의미는 실증주의, 순응주의, 실용주의, 쾌락주의라는 당시의 조류를 표현한 것이며, 그게 20세기 이후 선진자본주의 사회와 문화를 매우 잘 설명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혁명은 꿈을 꿈과 동시에 객관적 조건을 분석해야 가능하죠. 물론 꿈을 무시하고 객관적 조건만 따진다면 그게 바로 1차원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쿠제는 과학기술이 생산력화 되면서(마르크스가 그룬트리세에서 피력한) 노동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될 가능성, 따라서 생존에 매이는 필연성에 매이는 삶이 아니라 미적인 삶, 새로운 감수성, 새로운 주체성, 즉 다차원적 인간이 등장할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지식노동자(네그리식으로 말하면 비물질노동자)의 확대에서 찾고 있고요. 다만 인터넷 등이 없던 시절 그는 그 새로운 감수성과 욕망의 확산을 '예술'이라는 매개 외에는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네그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그 역시 틀림없이 새로운 정보화의 흐름을 자신의 조건에 집어 넣었을 것입니다.

마르쿠제의 시종일관한 테마는 "이제는 마르크스가 꿈으로만 꾸었던 삶이 현실로 가능한 생산력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예술로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유토피아가 현실적 가능성이 됨으로써 예술이 지양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철학을 지양하는 철학자, 예술을 지양하는 예술가의 역할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이들이 레닌주의 식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먼저 꿈꾸는 자이며, 그 꿈을 유포하는 자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르쿠제와 이택광은 매우 그 위치가 다릅니다.

이 지점에서 아도르노는 좀 더 비관적인듯 보이지만, 이는 대중매체의 동일성 괴력을 마르쿠제가 과소평가한 것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아도르노에 대한 학생들의 린치사건,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 점거는 당시 68세대가 비판이론을 넘은 상징이 아니라 스스로 거대한 동일성에 사로잡힘으로써 스스로의 정당성을 소멸시킨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68세대들이 자신들의 정신적 아버지를 지양하는 대신 공격함으로써, 아도르노는 죽고 68의 불길도 꺼졌다는 식으로 묘사되죠. 그 시대를 직접 가 보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도르노의 그 민감한 감수성은 당시 68혁명 속에서도 동일성을 강요하는 흐름을 보았고, 이것은 나치 시절에 대한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철저한 부정변증법은 혁명의 순간에도 혁명의 지양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철학자이지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의 순간에 혁명의 타락을 경고하는 자로서 그런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실천 속에서 철학을 지양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적어도 그를 지적 불성실로 내몰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마르쿠제는 68혁명의 불길이 꺼진 뒤에도 그 군불이라도 살려보려고 끈질기게 시도했지만... (마르쿠제는 거리의 철학자였습니다.)

저 역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서 느껴지는 오만함과 불성실(사르트르적 의미)에 선생님과 비슷한 분노까지 느꼈지만, 하필이면 그들을 비판이론과 대비시키는 선생님의 처사에서 또 다른 불철저함을 느낍니다. 제 생각으로는 오히려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아 참 마지막 문장을 수정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촛불을 끄셨나요"저자들의 태도는 비판이론보다는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적 불철저함을 대중이나 세계의 탓으로 돌릴 때 쓰는 용어들이 사물화(루카치), 일차원화(마르쿠제), 탈정치화(이택광) 등의 술어였음을 알고 있다."라는 구절을 쓰면서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가닥의 생각 중에서 어딘가 한 가닥만 단순하게 표현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더 숙고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바빠서 그냥 포스팅했는데, 문제적이군요.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다른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그래도 비판이론의 정치철학적 성격과 역사적 위치를 어떻게 새길     것인가와 관련한 독해의 미세한 차이 문제는 (위에 표현된 것보다는 물론 작지만) 여전히 남는데, 이 문제에, 변화된 상황에 걸맞는 만큼의 판단을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나의 비판이론관은 1990년대 후반(1997~8년 전후)에 형성되었고 그 이후 다시 읽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판이론과 관련한 주객관적 독서환경이 그때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감안하면서, 위의 댓글을 비판 이론에 대한 좀더 내재적인 독해를 해보라는 고마운 충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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