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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선 진보 역사관이 무너질 위기에 직면-유럽과 미국의 후퇴 | 역사이야기 2008.11.19 09:38 사띠현정
음. 쏭홍빈이 중국계라 그런지 일본을 중국견제용이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중국을 과시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근대화를 메이지유신의 기적으로 보는 관점은 오류입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자꾸 그렇게 보려는 경향이 강하죠. 수백년간 상국이었는데 기적적으로 뒤집혔다고. 그러나 이미 17세기부터 일본은 조선을 추월했고, 오사카는 18세기에 이미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융성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거의 근대화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막부정권이 별안간 쇄국정책으로 전환하자 이미 개방을 통해 근대화된 일단의 세력이 걸리적 거리는 낡은 막부를 치워버린게 메이지유신입니다. 요컨대 단지 서양문물 받아들이기가 아니라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역동을 무시하고 자꾸 영국의 혹은 미국의 음모를 갑으로, 일본과 동양을 을로 보는 관점은 중국을 덜 쪽팔리게 하려고 유로센트리즘에 굴복하는 꼴입니다.
과연! 오사카가 18세기에 이미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융성하고 있었다!     일본의 역사를 더 연구해 보아야 겠군요. 나는 일본이 17세기부터 조선과 중국을 추월했는가 아닌가의 관점 보다는, 한국이 그러했듯 어떻게 러일전쟁 시점에 이르러 '강철의 성' 즉 증기추진 대전함을 건조할 정도의 공업능력을 갖추게 되었는가 이런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영국에서 세계최초로 건조한 해가 1902년이거든요. 러일전쟁은 1905년이니 영국과 일본의 '강철전함' 건조 능력이 거의 비슷해졌다는 이런 얘기이기도 한데. 사실 18세기에 '오사카가 상업도시'로 성장한 이것이, 1905년 러일전쟁 시기 우수한 강철 전함 건조의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기반이었다 리렇게 해석하면 '음모론'을 간단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지정학적 관점'과 '음모론'의 결합은 문제가 많은 설명임에 틀림이 없군요. 그러하다면 1854년의 메이지 유신 관련한 일본의 역사를 더 공부해 봐야 겠습니다. 하여튼 님의 폭넓은 독서와 학습에 경탄 또 경탄합니다.        
과도한 지정학적 상상력과 '외인론'은 거의 내발적 동기에 의한 변화를 지나치도록 하는데, '내발적 동기'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역사의 '보편성' 추구와도 맞닿겠죠? 왜하필 산업혁명은 영국에서만 일어 났는가 이런 질문이 아니라 왜 한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런 방식으로 질문이 바뀌는 것이 되겠지요? 나는 아무튼 정조가 승하하던 1800년 무렵, 제임스 와트는 당대의 발명품 '강철'에 힘입어 터지지 않는 강력한 보일러와 실린더 제작이 가능했고 이에 근거하여 주로 영국각지와 일부 프랑스에서의 '증기펌프' 기관 주문에 나서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로부터 약 30여년간 제임스 와트는 '주문제작' 방식으로 증기기관을 유럽각지역에 설치했고 와트의 당대 '벤처'로서 증기기관 발명과 독점적 제작 보급 과정은 곧바로 '공장제 기계공업'과 '철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계기였습니다. 아시아인에게 '외래'인 공장제 기계공업과 '철도' 이것이 '제국주의' 바탕이 되었는데, 오사카에서 상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방향까지 '내발적으로' 이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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