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찾아서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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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춘분인 오늘 때아닌 눈이 내리네요..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쁜데 농사의 시작인
애벌갈이각주1) 를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어왔으며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彼岸)' 또는 '피안의 시기'라 하여 극락왕생의
때로 봅니다.

《중종실록》 1514년 2월 26일을 보면 어미를 구타한 이수지라는
사람을 참형하게 되는데 참형시기를 춘분에 맞추었지요.
참형에는 부대시참형(不待時斬刑)이라 해서 판결 확정 후에 바로
집행하는 참형이 있고 사형집행을 기다려서 하는 대시참형(待時斬刑)이
있는데 대시참형의 경우는 대개 춘분이 되기 전에 집행합니다.
이는 춘분을 1년의 새로운 출발로 보아 사형처럼 좋지 않은 일은
춘분 전에 끝내려 한 뜻이 아닌가 합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길목에서 농사를 준비하고 어둡고 좋지 않은 일을 춘분 전에
털어버리려 한 것을 보면 예전에 춘분은 상당한 의미가 있던
절기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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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내리며 심한 꽃샘추위를 하든 어제와는 달리
화사한 햇빛이 새롭네요~
놓고가신 글속에서 춘분에 대한 또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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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도 활기찬 발길되시고
기쁨이 함께하시며
즐겁고 행복하세요
잘 보고 감사 하는 마음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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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봄소식을 전하는 화사한 날씨
오늘도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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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 보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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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월은 어느새 가을이가고 겨울를 맞아야하는 계절 환절기
감기조심 하시고 늘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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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내 최대급 대물칡 구경오세요~~~~ㅎㅎ
http://blog.daum.net/bsbslss/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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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홍삼 불매운동을 굴복시킨 조선의 거상 임상옥이 그립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임상옥은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가서 인삼을 팔고,
돌아올 때 비단을 사 조선에서 되파는 보따리장수에서 출발, 조선 왕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거상이 됐다.

▶200여 년전인 1821년, 중국인들이 '붉은 빛의 보배'라고 욕심내는 홍삼을 가지고
청나라 수도 베이징에 갔을 때, 중국 상인들은 불매 운동을 전개, 홍삼을 헐값으로
사려고 했다. 이에 임상옥은 홍삼을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중국인들이 달려와 저
아까운 홍삼을 왜 태우느냐고 묻자, 헐값으로 파느니 태워버린다고 답변, 중국인
들이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바람에 더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었다.

▶요즘 중국은 탐사반경 3000Km에 달하는 레이더로 한반도는 물론 일본 전역도
탐지할 수 있는, 한국의 사드보다 3~4배 강력한 초지평선 레이더 '텐보(天波)'가
있음에도, 롯데를 비롯한 한국 상품 불매운동, 한국 관광 방해 등의 파렴치한
정책을 펼치고 있어 더 더욱 조선의 거상 임상옥이 그리워진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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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어찌해야 짱꼴레 마음을 달랠수 있을까요...
저역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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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님 안녕하세욤~^^
살면서 비록 웃을일이 그리 많치 않겠지만 마음만
살짝 바꾸면 미소 가득한 마음까지 밝아 지리라 봅니다..
얼굴은 마음의 움직임과 상태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부분이지요...
우리사람들은 그래서 늘 웃는얼굴을 좋아하나 봅니다..
늘 미소 지을수 있는 밝은 모습의 우리이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찌뿌둥한 날씨 비나 눈이 올려나 봅니다
기쁨 가득한 화요일 되시고 행복하세요....~~~!구래골 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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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위해
웃음이 좋은줄 알면서도 웃을일 없으니 어쩌겠어요~
구래골님! 좋은조언 고맙습니다.
가족과 행복하신 저녁시간 되시고 언제나
좋은일만 가득 하시기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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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 노비들도 출세가도를 달렸다▶◀▶◀┃




▶양반들의 세상인 조선시대의 노비 모습은, 사극 드라마 <추노>에서 본
것처럼 고된 노동에 지쳐 결국 도망을 시도하는 기구한 운명의 군상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살면서 주인집 농토를 경작하는 외거노비도 많았다.

▶박인수는 광해군 시대의 대학자인 어우당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등장한다.
그는 대학자 서경덕의 제자인 박지화의 도움으로 학문을 접한 뒤,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아 나갔다. 박인수는 높은 학구열만큼이나 선행에도 앞장섰다.
덕분에 그는 학자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학생들의 대다수는 양반 계층 선비들이었다.

▶조선 전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양 사람 신 씨의 노비였던 김의동은
산에서 나무하는 일을 했다.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결국 그가 내린 선택은 운명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었다. 신분세탁을 한 그는, 처음에 나루터 직원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현감을 거쳐 부사(府使)의 자리까지 올랐다. 부사는 지금으로 치면
1급 지방자치단체 시장이었다.

▶장관급이 된 노비도 있었다. 가난한 노비의 아들이었던 반석평은 그의 주인이
학업 능력이 뛰어난 그를 출세시킬 목적으로, 아들 없는 부자인 반서린의 양자로
들여 보냈기 때문에 반씨 성을 갖게 됐다. 그는 연산군 시절인 1504년 과거시험
소과에 급제해 생원이 된데 이어, 중종 때인 1507년 대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진출,
함경도 병마절도사(지역 사령관), 평안도 관찰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
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니,노비 출신으로서 대단한 성공신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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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늘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득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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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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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세요
님께서 올린 글 에 댓글달고 왔습니다
고운글 따라서 억새바람 따라서 왔습니다
고운날  되소서
안녕히~

보리뱅이/ 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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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닫아 놓셨네요~
소녀 할매시라니 더더욱 반갑습니다.
지역시 소녀할맨데... ㅎ
허접한곳 들러 주시구 고맙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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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지휘부의 갈등으로 분열된 동학군, 일본군 기관총 앞에서 괴멸되다▶◀▶◀┃



▶1892년 2월 (음력) 고부군수 조병갑의 전횡에 반발한 농민 반란이 발생하면서 동학 농민
봉기가 발발했다. '보국안민'과' 패정개혁'을 내세운 농민 반란의 기세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전국으로 번질 기세를 보였다. 황토현 전투의 대승과 전주성 입성으로 동학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듯 했다.

▶그러나 동학 농민군내에도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약점인 붕당, 분파가 도사리고 있었다.
동학 운동은 남접과 북접이라는 두개의 단체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북접은 초대 교주였던
최제우의 직계로 최시형, 손병희등이 이끌고 있으면서 종교적 자유를 획득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동학 농민 1.2차 혁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혁명운동을 주도했던 남접은 원래 손화중이 지도자였으나 봉기가 발발하자 전봉준에게
대장군직을 맡겼다. 하지만 남접 내부의 강경 혁명파에 해당하는 김개남은 근왕주의를 비롯한
기존 정체 체제 유지를 주장하는 전봉준측과 반목하혀 혁명 전쟁 내내 독자적으로 움직였고,
이로 인해 동학 농민군은 지도부의 의견과 전략이 일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에 나서게 된다.

▶공주 인근에 총 집결한 농민군의 전체 병력은 약 10만 여 명이였지만 통일된 전략에 따라
움직이기 보다 각급 부대별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11월 9일 , 동학군 총 사령관
전봉준 장군의 공격 명령에 따라 약 2만명의 농민군은 일본군 모리오 마사이치 대위가 지휘하는
조.일 연합군 5천명이 진을 치고 있는 우금치 고개를 수차례 정면 공격했으나 무기라곤 죽창과
낫, 곡괭이뿐인 농민군이어서,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다.
우금치 전투는 전쟁이 아니고 일본군의 기관총에 의한 무차별 학살이었다.
4일간에 걸친 우금치 전투에서 참가한 농민군 2만명중 살아서 후퇴한 병력은 약 500 여 명에
불과 했고, 조.일 연합군측의 피해는 전무했다.

▶그해 12월 완전히 괴멸된 농민군의 총 사령관 전봉준이 체포되고, 농민군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이 이루어지면서 동학 농민 혁명은 막을 내리게 된다. 처음부터 '보국안민'의
기치 앞에 하나로 똘똘 뭉쳐 싸웠다면, 그 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합병되는 치욕은 당하지
않았으련만, 출발부터 지휘부가 4분 5열되면서 무수한 농민들의 목숨만 잃고 말았으니, 오늘날
대한민국의 극한적인 내부 분열이 앞으로 어떠한 국난을 가져올지 알 수 없어 몹씨 안타깝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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