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렴 안성덕 아닌 우물가에서 바가지에 버들 몇 잎 띄운다 오후 두 시를 훌쩍 넘겼는데 뱃가죽은 이미 등짝에 들붙었는데 큰고모 또래 시장통 돼지국밥집 주인은 굼뜨다 둔전거리며 뚝배기에 밥 한 덩이 말아 펄펄 끓는 가마솥 국물을 국자로 열댓 차례나 부었다 게운다 맨입에 깍두기 한..
사람 人자 쓰듯 안성덕 기러기 줄지어 하늘에 사람 人자 쓰듯 갑니다 여드레 반달이 구름 사이로 발길을 재촉하네요 하루를 살아도 사람같이 살아야…… 혼잣말 점드락 피를 말립니다 쇳내 나는 작두샘에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붓듯 마을버스 정류장에 나섭니다 어둠 속에 놓쳐버린 제 그..
사랑에 관한 책 강영은 구름을 읽으려고 해 구름은 눈자위가 무거워진 나를 위해 대신 울어줄 뿐 새소리를 흉내 내지 않으니까 땅을 읽으려고 해 땅은 침묵하는 내 손에 호미를 쥐여줄 뿐 아무런 요구도 거짓말도 하지 않으니까 바람을 읽으려고 해 바람은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뺨을 어루..
너머의 새 강영은 새가 날아가는 하늘을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으로 나눕니다 비틀리면 북쪽과 남쪽을 강조하거나 죽음을 강요합니다 나의 흉곽을 새장으로 설득하기도 합니다 사이에 있는 것은 허공 새가슴을 지닌 허공을 손짓하면 새가 돌아올지 모르지만 하염없이 걸어가는 핏자국 ..
봄꿈 3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오리라 하는 꿈을 꾼 적 있다. 꿈을 꾸고 창을 열어보면 봄날이었다. 대개 봄꿈은 깨어나자마자 잊히는 것이지만, 글에 묶여 사는 사람은 한 번 창문에 걸려 반복하는 속삭임에도 눈을 돌리는 것이다. 꿈으로 먼저 와서 창을 열게 하는 봄, 옮겨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