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 오늘의 달라진 문화 속에서 기독교 복음을 이해하며 21세기 문화 바로보기. |
|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 오늘의 달라진 문화 속에서 기독교 복음을 이해하며 21세기 문화 바로보기. |
동만주에 거주하던 고구려의 유민, 즉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건국의 한 주체요, 한 기둥이었기에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에게는 제2의 조국과도 같았던 만주국에서 군관이었던 박정희를 일본군이라고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박정희가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박정희는 단 한번도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적이 없었음에도 일부 몰지각한 이들과 좌빨들은 사람들에게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하려는 나쁜 심보...
드라마에서는 해방이 되는 날 모두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사람들이 태극기 제작 방법을 몰랐다. 우리는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이 모두 애국가를 알고 있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애국가를 전혀 몰랐다. 생전 들어보지고 불러보지 못한 애국가를 어떻게 알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일제시대에 불러보지 못한 애국가를 해방의 감격과 더불어 마음껏 불...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시대 때 일본군 소위였다는 이유로 그 사전에 등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만주국군 소위였지, 절대로 일본군 소위가 아니었다. 그 누구든 일본군은 만주국군복을 입을 수 없었다. 만주국군 소위 시절의 박정희의 아래 사진이 보여주듯 박정희가 입은 군복은 만주국군복이었다. 그는 단 하루도 일본군복을 입은 일이 없었다.목포상고 ...
HTML clipboard박정희에 대하여 좌익이 하는 두가지 두드러진 거짓말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거짓말과 박정희가 남로당이었다는 거짓말이다. 이런 주장이 거짓말들임은 두가지 명제가 양립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면 남로당이 입당 권유를 하였을리 있겠는가? 좌익은 박정희가 남로당 입당 권유를 받았던 일을 과장하여 박정희가 남로당이었다고 사기친다. 그러나 박정희는 입당 권유를...
박정희에 대하여 좌익이 하는 두가지 두드러진 거짓말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거짓말과 박정희가 남로당이었다는 거짓말이다.이런 주장이 거짓말들임은 두가지 명제가 양립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만약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면 남로당이 입당 권유를 하였을리 있겠는가?좌익은 박정희가 남로당 입당 권유를 받았던 일을 과장하여 박정희가 남로당이었다고 사기친다.그러나 박정희는 입당 권유를 받았으되 결코 입...
1979년 12월 18일 보통 군법회의에서 비공개로 행한 김재규의 최후진술에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는 "5.16도 10월 유신도 범법이 아니라면 자연히 10.26의 혁명도 범법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투쟁을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10.26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혁명이 되고 맙니다"라고 말하였음을 위의 1996년 9월 18일자 MBC 뉴스동영상은 보여준다. 이때 김연석 ...
HTML clipboard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와서 적응하는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바로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라 부르는 광주사태가 도대체 남한의 5.18인가 북한의 5.18인가 하는 문제이다. 2008년 11월 조갑제 기자가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이 탈북자들에게는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5.18은 북한에서는 매년 성대한 광주인민봉기 기념 행사일이다. 5.18은 북...
2008년 11월 조갑제 기자는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제목의 글을 썼던바, 이 글 제목은 증언과 주장의 혼동을 전제하는 것이었기에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만 명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라고 부르는 광주사태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인민봉기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북한에서 보고 들은 북한인민봉기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증언은 주장이 ...
"학생 혁명군,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 <행동강령>무기를 제작하라!...전시민 관공서를 붙태우라...특공대를 조직 군무기를 탈취하라!" 등의 살벌한 문장들로 가득한 5월 20일자의 대자보는 북한군 534부대가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분명한 사실은 전남대에는 학생 혁명군이라는 것도 학생혁명위원회라는 것도 없었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라는 제목의 위의 대자보와 삐라는 불순세력이 제작한 것이었다. ...
지난 해의 광우사태 때 국민 모두가 광우 폭도들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민주화운동가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점은 광주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5.18무장단체를 광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바라 보았는가?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광주사태 때 서울에 올라온 광주시민들은 "강경파 시민군이 온건파에게 총을 쏜다," "시민군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자만 보면 시민군으로 징집하였다," "남자들을 끌고가 사격 연습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