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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북경,장안가에서 북경에 살면서... 중국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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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우시
중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10만단위] 070514, 071119, 080426, 080912, 081124, 090116, 090308
[100만] 090730
글: 손건화(孫建華) 세계에서 어느 황제의 묘가 가장 도굴하기 힘드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의문없이 당고종과 무측천의 "만년수역(萬年壽域)", 건릉을 가리킬 것이다. 건릉은 냉병기시대에 도검으로 파본 적이 있고, 열병기시대에는 기관총과 대포를 동원한 적도 있다. 1200여년동안, 도굴을 시도한 사람중 이름이 알려진 경우만도 17명에 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경우는 40만명이 동원되어, 건릉이 위치한 양산(梁山)...
글: 장미이(張未弛) <<요재지이(聊齋誌異)>>로 세상에 유명한 포송령은 글재주가 있을 뿐아니라, 아이디어도 풍부했다. 일찌기 풍국로(馮國老)의 <<행장>>을 쓰는데 있어서 그는 비범한 재주와 예지를 보여준 바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산동의 문단에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청나라 강희0년 십이월 십일일, 전 문화전대학사이며 '국로'라고 불리우던 임구(臨胊)사람 풍부(馮溥)가 청주(...
글: 하인용(何仁勇) 송신종(宋神宗)이 죽을 때 나이가 겨우 38살이었다. 큰 뜻을 품고 있던 이 이상주의자는 평생 딱 1가지 일을 했다: 변법(變法)을 시행했다. 그리고 그는 딱 1가지 실수를 했다: 변법을 중지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민주체제를 추진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마이클 조단에게 축구를 할 줄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그는 그의 시대에 살았고,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수...
글: 장위(張煒) 대약진시대에 세계광산사고역사상 가장 비참한 석탄광산폭발사고가 최대의 석탄생산기지인 대동광무국(大同鑛務局)에서 발생한다. 이 사고고 677명이 사망하고, 구출되었던 228명중에서 다시 5명이 사망하여, 모두 682명이 사망했다. 지금까지 세계역사상 가장 비참한 광산사고였다. 1960년 5월 9일 13시 45분, 대지가 갑자기 흔들리고, 노백동광(老白洞鑛) 15호 광구에서 강렬한 화염과 연기가 뿜어져 ...
글: 조건리(趙建利) 주덕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주요창시자의 하나이다. 중국혁명과 건설의 서로 다른 시기에 그는 홍군총사령(紅軍總司令), 팔로군총사령, 해방군총사령을 맡았다. 주총사령(朱總司令)은 인민대중들이 그를 친근하게 부르는 칭호였다. 이 칭호는 홍군시기부터 그의 혁명생애동안 계속되었다. 주덕이 홍군에서 총사령을 가장 처음 맡은 때는 1930년 8월이다. 당시 홍1군단(紅一軍團)과 홍3군단(紅三軍團)을 합하...
글: 서항걸(徐杭杰) 강희제 말년에 후계자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여러 황자(皇子)들은 형제의 정은 일찌감치 잊어버렸고, 독랄한 수단을 속속 사용했다. 강희제가 유조(遺詔)를 남겼는가 아닌가? 그는 정말 황사자(皇四子)에게 황위를 넘겨주었는가? 유조는 고쳐진 적은 없는가? 강희제처럼 영명한 군주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금성내에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은 오직 대신 1명뿐일 줄은. 그에게는 의문점과 수수께...
글: 용비(龍飛) 벽계원의 주강삼각주지역에서의 개발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벽계원 발행채권의 평가등급을 계속 낮추고 있는 스탠다드 푸어스조차도 "벽계원의 업무모델은 이미 광동성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벽계원은 다시 새로운 개발모델을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2009년 10월의 마지막 날, 벽계원과 야거러(雅居樂)는 광주 나강구 주택용지를 둘러싸고 전투를 벌였다. 비록 벽계원이 패...
글: 문재봉(文裁縫) 명성조(明成祖)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는 역사상 복잡한 논쟁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그는 일찌기 막북(漠北)을 다섯번이나 정벌했고, 안남(安南)을 세번이나 토벌했고, 신강, 티벳, 해남등의 지역을 평정했다. <<영락대전>>을 편찬하게 하였으며, 정화를 일곱번이나 동남아와 인도양으로 보내어 해외여러나라들과의 교류를 강화했다; 동시에 그는 흉포하고 잔혹했으며, 무고한 사람...
글: 악남(岳南) 1974년 봄, 진시황릉의 아래에 위치한 섬서성 임동현 서양촌의 야외에서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도기무더기를 발견한다. 나중에 국가문물국의 고고학 전문가가 감정한 결과 진시황릉에 배장(陪葬)된 병마용 군진이었다. 그해 7월 15일 오후, 섬서성 고고학전문가인 항덕주(杭德洲), 원중일(袁仲一)등 일행은 도구를 가지고 서양촌의 큰 나무 아래에 텐트를 치고, 농민들이 우물을 파던 곳으로 조사를 하러 갔다...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와룡은 제갈량(諸葛亮)이고, 봉추는 방통(龐統)이다. 와룡, 봉추는 모두 유비의 군사로서 한명은 내부를 한명은 외부를 담당했다. 그들은 서로간에 보완작용을 했으니, 한나라의 소하,장량에 비견할만하다. 그들은 같은 왕조에서 같은 임금을 섬겼는데, 동료관계이외에 그들은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우선 그들의 아호(雅號)부터 얘기해보자. <<삼국지. 방통전>>에서 주석으로 인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