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寺愛人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
|
山寺愛人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
고현동향약안(보물 제1181호) 고현동 향약안은 당시 태인 현감 서유응이 향촌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정조의 뜻에 따라 향약을 진흥시키려 하였다. 이 향약은 수령의 서명과 관인이 찍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의 향약과 성격이 다소 다르다. 고현동 향약 동계좌목 이 책에는 숙종 24년과 숙종 27년에 다시 만들어진 동안, 그리고 숙종 30년에 만들어진 고현 동계 좌목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고현동계좌목]에는 양반...
호우총 호우 1946년 발굴된 경주 노서동 140호분에서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홍태왕호우십(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라는 글자가 광개토대왕능비와 같은 글자체로 새겨져 있다.. 이때부터 이 무덤을 호우총이락 부르게 되었는데, 호우란 고구려에서 그릇을 의미한다. 이 청동합은 장수왕 3년(415) 광개토대왕의 제사에 참석한 신라의 사신이 경주로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고구...
흔히 고려 공예를 조선시대와 비교하면서 화려함이 강조된 귀족적인 면모를 특징으로 꼽는다. 정교하고도 세련된 고려 금속공예의 정수라 할 만한 것이 바로 이 은제주전자이다.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이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미술관 홈페이지를 보면 1935년 한 개인 펀드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돼 있는데, 아마 그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보인다.높이 34.3㎝의 이 주전자는 은을 주재료로 만들고...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직후인 1912년 강원도 강릉 한송사(寒松寺) 절터에서 두 구의 석조보살상(石造菩薩像)이 발견됐다. 하나는 상태가 온전했으나 다른 하나는 머리와 오른팔이 없었다. 온전한 불상은 그해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받았고, 1967년 국보 제124호로 지정됐다. 1963년 보물 제81호로 지정된 다른 하나는 강릉시청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다가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려...
위대한 발견은 때가 있는 모양이다. 한국의 대표적 청동유물은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 신라고분 조사의 전성기는 1970년대이고 가야고분 조사는 1980년대에 활발했다.1990년대 이후에는 백제 지역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금동대향로가 발견되더니, 2년 뒤에는 같은 장소에서 창왕(위덕왕)의 이름이 새겨진 석제 사리감이 발견됐다. 이후 서울에서...
18세기는 조선시대 후기문화의 전성기였다. 농업 생산력은 급속히 성장했고, 상품·화폐 경제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시조와 판소리, 진경산수화(眞景山水��)와 풍속화의 유행 등으로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조선백자 가운데 고전적인 유백색(乳白色)의 백자와 간결한 청화백자(靑畵白磁)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경기도 광주(廣州)의 금사리요(金沙里窯)와 분원리요(分院里窯)가 그 산실이었다.백자철화포도문(白磁鐵畵...
1971년 사업가이면서 문화재 수집에 평생 열정을 쏟았던 동원 이홍근 선생(1900~1980)의 소장품을 조사하던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표암선생유적(豹庵先生遺蹟)》이라는 화첩을 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신선한 근대감각이 느껴지는 혁명적인 표현법으로 송도의 명승을 그린 16장의 진경(眞景)산수화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최 관장은 이 화첩을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소개하고, 197...
1967년 1월 서울 삼양동 산 중턱에서 하수도 작업 중 괭이에 맞아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국보 127호)이 발견됐다. 아마 그때 다리 부분에 약간 균열이 갔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다. 197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처리실이 처음 생기자 첫 작업 대상이 바로 이 불상이었다. 보존처리실 학예연구원(이오희 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이 이쑤시개로 불상에 덧낀 이물질을 제거했다. 보존기구가 변변치 않...
사자 한 마리가 향로 뚜껑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앞을 보고 있는데,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털이 표현돼 있고 꼬리를 위로 치켜들어 등에 붙이고 있다. 부리부리한 눈과 억센 주둥이, 더부룩한 갈기, 떡 벌어진 어깨, 강한 발톱은 실제보다 크게 강조돼 있고, 몸통은 작게 축소시켰다. 왜곡된 비례 때문에 사자는 작은 크기에도 매우 힘 있고 위엄 있게 느껴진다....
경주의 사천왕사 터에서 출토된 사천왕상으로 사천왕사 목탑의 기단에 붙인 것으로 신라 최고의 조각가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천왕은 불교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을 사방에서 호위하며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장이다. 경주 사천왕사 터 출토 사천왕상 전돌 경주 사천왕사 터 출토 사천왕상 전돌
등록된 즐겨찾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