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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 쉬엄쉬엄 가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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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 쉬엄쉬엄 가자구요.. |
성도에서 각자 출발한 관광객들은 구채구 공항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다 상해에서 온 젊은 유부남, 산시에서 온 부부와 아이들, 광조우에서 온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손자들.. 그리고 한 팀은 아니지만 반갑게도 한국인 젊은부부와 그 친구들을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젊은 부부의 신랑은 중국어도 상당히 유창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항에 내리자 가이드는 버스에 우리를 태우고 바로 황롱으로 향했다. 나의 빈약한...
공항에서 전기가 나가 일정의 하루를 잡아먹고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제시간에 타면 절대 안되는지 30분 이상을 다시 기다렸다. 공항에서 30분 정도는 딜레이 표시도 하지 않는다. 우리 바로 앞 비행기는 무제한 딜레이... 앞 비행기는 공항에 성도 공항에 도착도 하지 않았다는... 30분 정도 늦게 출발하는 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구채구는 성도에서 북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북부 산간 지대이다. 성도에서 버스로 ...
낙산과 아미산 관광을 같이한 산시성의 가족, 하얼빈의 아저씨들은 세상지를 가지 않는단다.. 엉??아래에서 쉬고 있겠다며 다녀오란다. 여기까지 와서 아래에서 걍 놀겠다고?? 우리 부부에게는 있을 수 없는일..죽을 힘을 다해서 다녀왔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헥헥..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청나라사람들의 복장과 스님들의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원숭이 보러 가게 길을 비켜주시요,,존말로 할 때.."ㅋ
쓰촨성의 서남부에 위치한 아미산 낙산에서 점심을 먹고 도착하니 아미산 가이드가 우릴 반긴다. 어메이산은 쿤룬산맥의 한 지맥으로 해발 3000m급 산이다. 등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원숭이들이 많다는 세상지(洗象池)까지 다녀오는데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중국의 이백이 "촉국에는 많은 산이 있지만 어메이산에 비길만한 산이 없구나"라고 했을 만큼 아름다운 명산중의 명산이란다. 당대 이후 70여개의 사찰이 들어서 ...
하루만에 낙산과 아미산을 다 다녀온다는 것이 무리라고들 했지만 공항에서 하루를 낭비한 시간이 아까워서 어쩔 수 없다. 총7명이 출발하는 여행은 호텔까지 봉고차가 온다. 새벽 6시에 출발한 차는 거의 총알택시 수준.. 기사아저씨 엄청 얌전하게 생겨서 터프하기는 영화찍어도 되것다. 한팀은 산시성에서 온 가족- 초등학생과 부부 다른 한 팀은 나이드신 아저씨들인데 하얼빈에서 오셨단다. 그리고 나와 남편..봉고차를 ...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중국의 특유의 홍등.. 낮이면 먼지에 시커면 때가 꼬질꼬질 하지만 밤이면 출근하는 여자처럼 화려하게 변신한다. 초저녁부터 불을 밝힌다.
무후사 주변부터 시내 한복판까지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택시를 탔더니 승차거부도 당해보고..,ㅜ,,ㅜ 거리가 너무 짧았던게지.. 성도는 강이 시내 를 중심으로 'ㄷ'모양으로 흐르고 있다. 남강쪽 배경이다.. 해가 없이 끈끈한 성도의 날씨가 사진만 봐도 다시 느껴진다..
진리가 서민적이라면 콴상즈는 럭셔리한 귀족풍의 골목이라 하겠다. 음식값도 진리랑 비교하면 함부로 들어가서 먹을 곳은 못된다. 음식점 앞에 예쁜 언니들만 서있고 실내는 보이지도 않는다.. 걍 가서 음식값이 얼마냐 무얼 만들어 파느냐 실없이 회화 연습만 하고 돌아다녔다는..메롱 중국에 벽돌이 많은건 좋은 흙이 많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어디 흙만 많은가... 콘샹즈 입구 한국인들이 많은 찾는 장소인게다.. 한국...
지우자이꼬우(구채구)를 가기 위해 성도에서 현지(중국인)인 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가면 가면서 보는 풍광이 가히 예술에 가깝다는 다녀온 사람들의 추천을 마다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싼 뱅기를 타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성도 사천선내 비행장에 도착하니 한국인은 한 명도 볼 수가 없다. 참! 땅이 얼마나 넓으면 국제선, 국내선, 사천성내 공항이 따로 있다. 공항은 시골공항마냥 작은데.. 시...
성도는 위.촉.오 삼국시대의 (3세기) 촉나라의 도읍이었다 촉나라를 세운 유비와 공명의 묘가 합사되어 있는 곳이 무후사이다. 처음 세워진 것은 서진 말기로 당시에는 규모가 작았으나 14세기에 이르러 공명의 묘가 합쳐지면서 규모가 커졌다. 삼의묘 입구 유비,관우, 장비의 '도원의 결의'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처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의 강희제(1622~) 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많은 향들..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