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2편 간무왕 생모 백제여인 무덤을 찾아 헤매다 간무왕을 제사 지내기 위해 지은 으리으리한 헤이안 신궁과 그를 기념하려고 마련한 지다이마츠리(時代祭)의 화려한 축제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이 찾아간 곳은 간무왕 어머니 고야신립(高野新笠, 타카노노니이가사)이 잠들어 있는 대지무덤(大枝陵, 오오에료)이었다. 교토 서부지역 구츠카케 산기슭에 있는 백제 여인 고야신립의 무덤을 찾아가던 날은 늦가을 햇살이 감나...
1717. 손자놈 재롱에 잠화 꽂아보는 영조임금 영조실록 106권, 41년(1765) 10월 4일 기록에 보면 영조와 세손(정조)의 잠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잠화(簪花)를 꽂지 않았는데 너만 유독 잠화를 꽂았으니, 네 마음이 편하냐?” 하니, 손자가 답하기를, "그러면 저를 위해 할아
1714. 일제는 조선 궁궐을 노리개로 여겼다 예전에 창덕궁 등 궁궐에 가본 사람은 인정전 앞마당에 잔디가 깔린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엔 그곳에 다시 박석(薄石, 얇고 넓적한 돌)으로 바꾸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 겨레는 잔디를 무덤에만 심었고 궁궐 등에는 잔디가 아닌 박석을 깔았습니다
1713. 17세기 조선엔 이미 새싹채소가 있었다 요즘 새싹채소가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부쩍 인기를 끄는 모양입니다. 새싹채소는 짧은 기간에 씨앗에서 움트는 싹을 키워 처음 나오는 어린줄기와 떡잎을 먹는 푸성귀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새싹채소가 이미 17세기에도 있었습니다. 1670년(현종 11년)에 정부
1712. 정조와 연산군은 어떻게 달랐을까? 정조실록 권54 부록, “대왕대비전이 내린 행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정조 임금의 성품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은 겨울이면 곤룡포 외에는 늘 입는 것이 굵은 무명베옷이라서 자주 다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기워서 입기까지 하였다. 여름철 옷은 자주 빨기 때문에 해어진 것도 그냥 입었고, 반찬 역시 보통 때는 세 가지를 넘지 않았다.” 또 정
우리말10. 길거리에 걸린 플랭카드, 현수막, 펼침막? “우리 동네 설렁탕집은 미쿡소 안 쓴다고 플랭카드 걸었다.” 인터넷을 뒤지니 이런 예문이 나옵니다. 흔히 길거리에 광고를 하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려고 천에 글씨를 써서 걸어두는 것을 “플랭카드”라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영어로 “placard"라 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긴 천에 표어 따위를 적어 양쪽을 장대에 매어 높이 들거나 길 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