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가 떠오르는 11월 마지막 주! 게을러 터진 우리 집에도 월동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ㅡ음마야! 배추가 내 속처럼 꽉 찼대이~ 나으리와 함께 배추 아홉 포기를 사온 마님이 감탄사 연발이다. ㅡ농사 지은 사람들, 뭐 먹고 살라꼬... 배추가 이래 똥값이로?! ㅡ 대형마트에서 서비스차원으로 싸게 파는 게지, 설마 농민들 굶기기야 하겠소? ㅡ그래도 아홉 포기에 2970원이믄 포기당 330원 아입니꺼?!
저녁 5시 반! 아무래도 꿈을 꾸는 것 같다. 잘잘 흐르는 시냇물에 등불이 켜졌으니.... 하나도 아닌 온갖 형상들이 초겨울 계곡을 점령한 청계천! 거문고와 풍악패, 아기 공룡 둘리와 풀 뜯는 사슴, 개성있는 12지신은 이웃 나라 작품들과 나란히 선 물 위! 졸졸졸.... 도심의 계곡은 장갑 준비 못한 맨 손을 시리게 하고, 연인끼리 눌러대는 셔터소린 풋풋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곧 온다던 남편은
우리 집 가정부, 전업주부 마님이 휴가간 사이. 베란다에 나와 있던 개 집이 집안으로 들여졌다. 햇살 비치는 거실 귀퉁이, 아늑한 내 옛 자리. 찬 데 굴러다니던 몸뚱이가 난방가동에 후끈거린다. 툭툭한 뱃가죽은 바닥에 축 늘어지고, 촉촉하던 콧등은 뽀송송 말라붙고... ㅡ맹보야! 마님없는 빈 집에 우리 둘... 외로운 솔로끼리 고기씹는 맛으로나 살자꾸나! 마님이 여행 떠나기 직전, 콧노래 부르며 끓여논 국이 바로 육...
가을 비 오는 날. 우중충한 날씨가 집 먼지를 가리는 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눈 뜨면서 시작되는 주부의 일과! 아침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려다 걸려오는 전화소리에 말문을 여는 일상... 긴 스펀지로 닦아야 할 잿빛 유리창처럼 손대기조차 귀찮은 날이 더러 있다.
창 밖에 짙은 가을이 와 있다. 노란 은행잎에, 벚나무 주홍 잎에, 새빨간 단풍잎에... 휘날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청소기 잡음에 집중할 수가 없다. 위잉~ 드륵 드르르윽~ ㅡ마님! 청소 좀 조용히 하면 안될까요? 오랜만에 묵상 좀 하려는데... ㅡ맹보! 니, 조는 건 천하가 다 알거든... 걸그적거려 청소 몬하겠으이 절루 비키기나 하거라! 우리 마님 뒷꿈치엔 눈이 달렸나 보다. 뒷발질로 연신 내 주둥이를 차댄...
솨아, 솨~ 황금 벌판에 바람이 인다. 10월 햇살에 벼이삭이 영그는 들녘, 논두렁에 서서 메뚜기를 찾는다. 볏잎 어딘가 붙은 것 같고, 논두렁 콩잎 뒤에 숨은 것 같은 놈. 팔닥 팔닥... 메뚜기가 리듬을 타던 오십 년전! 우리 어렸을 적엔 메뚜기가 참 많았다. 잡으려면 달아나고, 돌아서면 튀오르던 메뚜기떼들... 동해안 병곡 바닷가! 생선보다 푸성귀가 귀한 마을에 누런 곡식이 펼쳐지면, 우린 아침마다 메뚜기를 잡곤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