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3"에서 내 손길을 허하며 급하게 밥을 먹던 드렁이가 갑자기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은신처 쪽을 보더니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밥을 남겨두고서. 오랜만에 엄마가 온 것이다. 그 무렵 드렁이 곁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드렁이모가 뜻밖에도 이른 아침 나타났다. 얼마나 반가웠을까? 너무나 그리웠을까? 또 습관처럼 젖을 빨려고 엄마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배고픔 때문인지 드렁이는 뜻밖에도 오랜 길냥이의 자존심을 접고 내 손길을 허했다. 드렁이모가 있을 때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여 시도하지 못했지만 이제 거의 독립한 드렁이, 혼자 창앞에 출현하자 한번 유인하여 만져보고 싶은 음흉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창 앞의 탄성이 강한 녹색 그물을 기왓장으로 누르고 밥그릇을 그물 안쪽에 놓아 보았다. 거의 이틀 만에 자존심을 접어 주었다.
그 무렵 드렁이는 거의 독립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침소에서도 드렁이모가 보이지 않았다. 듣던 대로 영역을 물려 주고 떠난 것일까? 하지만 가끔씩 지나는 길에 집 근처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고맙게도 놀라 도망가지는 않고 나를 한참 응시하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날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을 열어 보았더니 드렁이가 눈에 들어왔다.
8월 12일 다시 비가 세차게 내렸다. 그 즈음 아침 침소에서만 드렁이 모자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비가 내린 그날은 드렁이모는 여느 때와 달리 은신처를 떠나지 않고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오랫만에 길냥이 모자가 함께 있는 풍경 속에 오랫동안 눈이 머물렀다. 늦잠으로 오전 9시가 훨씬 넘어서야 창문을 열었더니 드렁이 먼저 가까이 와 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면 그때부터 드렁이의 기다림의 자세가 시작된다. 이른바 식빵 굽는 자세인데 두 발을 바깥에서 안으로 고리처럼 휘어서 발바닥을 하얀 뱃살 아래 살짝 감추는 자세이다. 다소 엉뚱해보이면서도 귀엽고 매력적이다. 지나는 길에 저 멀리에 식빵이 보이긴 했지만 가까이 가서 그 다리 자세를 살펴볼 수 없었으니 뭐라 비교할 수도 없지만. &n
"관찰기26"의 동영상을 촬영하던 8월 9일 전후로 은신처에서 같이 잘 때를 빼고는 드렁이와 드렁이모가 함께 있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서서히 독립을 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제부터 혼자 있는 드렁이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더듬어 보려 한다. 더운 여름밤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혹시나 하고 창을 열어 보았더니 뜻밖에도 드렁이가 창앞에 앉아 있었다. 저쪽 깊숙한 은신처가 아니라 창앞 놀...
뒤늦게 이 맘 때쯤의 드렁이는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관찰자가 가끔씩 주는 인색한 출연료 때문에 드렁이가 꽤 많이 힘들어 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드렁이 절대 미안!! 젖을 물려는 드렁이의 애원성에도 드렁이모는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내비쳤다. 드렁이의 짓궂은 투정과 매달림이 좀 안스러워 보였다.
내 눈길이 한참 드렁이 모자의 신기한 몸짓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그렇게 깊이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때의 모습을 돌이켜 보니 내 인색한 적선이 많이 부끄럽다. 넉넉히 밥을 주고 멀리서 그저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너무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 사로잡힘은 늘 사랑의 적이었다.
한동안 늦잠으로 침소에 함께 있는 드렁이 모자의 모습을 못보다가 그날은 새벽에 늦게 자고도 아침에 일찍 깨었다. 창을 열자마자 드렁이는 이만큼 가까이 와 앉는다. 그러곤 식빵을 구우며 긴 기다림에 들어갔다. 가끔씩 날 쳐다보면서 아쉬움의 눈빛을 날렸다. 한번은 고양이 키스 비슷한 것도 보내기도 했다.
우연히 자정을 넘겨서까지 깨어있다가 호기심이 일어 창문을 열어 봤더니 뜻밖에도 드렁이와 드렁이모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드렁이모가 입에 쥐를 물고 있었고 드렁이는 소심한 '배고파'를 지르며 계속 달라고 졸랐다. 여의치 않자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냥 놀이를 했다. 몇 분 후에 다시 보니 그 쥐는 드렁이에게 넘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