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그대를 만나고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그대를 안고서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다행이다그대라는 아름다운세상이 여기 있어줘서거친 바람 속에도젖은 지붕 밑에도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지친 하루살이와고된 살아남기가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 주던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 걸그대를 만나고그대와 나눠 먹을 밥을 ...
꿈 꽃 - 황동규내 만난 꽃 중 가장 작은 꽃냉이꽃과 벼룩이자리꽃이 이웃에 피어서로 자기가 작다고 속삭인다.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이 빠진 꽃잎 하나 없이하나같이 예쁘다.동료들 자리 비운 주말 오후직장 뒷산에 앉아 잠깐 조는 참누군가 물었다. 너는 무슨 꽃?잠결에 대답했다. 꿈꽃.작디작아 외롭지 않을 때는 채 뵈지 않는(내 이는 몰래 빠집니다)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 황동규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꽃꽂이도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그냥 설거지일 뿐.얼굴 붉은 사과 두 알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마음보다 더 시원하게,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프라이팬을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
사랑하는 이에게 - 조인선빛과 빛이 싸우고 있군요어둠이 생길 거예요시간과 바람이 껴안고 있어요물이 생긴답니다하늘엔 적막한 기운이 감돌고땅에는 쓸쓸한 감촉뿐이지만그대 몸에는 불이 생기는 군요자 이제 눈을 감고 누군가 불러보아요어둠 속에서 한 방울이 흐를 거예요차가운 얼음이 뜨뜻하게 느껴지면뜨거운 화로가 차갑게 느껴지면그대 귀에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릴 거예요누군가 몹시도 애타게 부르는 소리지...
사랑의 노숙(露宿) - 조병화너는 내 사랑의 숙박이다인생은 내 슬프고 즐거운 작은 사랑의 숙박이다우리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인생은 하루의 밤과 같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견딜 수 없는 하루의 밤과 같은 밤에우리는 사랑 포옹 결합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인간이다너는 내 사랑의 유산이다너는 내 온 존재의 기억이다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인간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야 하는 생명너는 그대로 있...
벽 - 정호승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