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두고 대화라 할 순 없습니다. 더군다나 국민과의 대화라는 간판을 달기엔 참으로 낯뜨거운 일입니다. 대체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 국민과의 대화가 이토록 주눅들거나 혹은 친절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대통령의 가뭇없는 자신감과 국민가르치기 혹은 자화자찬은 일단 제쳐두기로 합시다. 전문가 패널이나 시민패널의 자세나 수준을 보는 것만으로 2시간을 넘는 국민과의 대화가 얼마나 시간낭비 전파낭비인지를 확...
마이산,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돌탑입니다. 크고 작은 돌로 쌓아올린 돌탑 80여개가 계곡 이곳저곳에 늘어서있는 신비한 풍경 말입니다. TV나 사진을 통해 그 마이산 돌탑을 볼 때마다 궁금했더랬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눈 비 바람에도 끄덕않고 오랜 세월 버티고 서있는지 말입니다. 대체 무슨 기막힌 기술로 돌들을 쌓아올렸길래 마이산 돌탑은 무너지지 않는 걸까요? 어제 TV를 보다 그 궁...
불이 났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대통령은 위로서신을 전했습니다. 총리는 직접 달려왔습니다. 총리는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총리가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곧장 해당부처 장관도 찾아왔습니다. 장관은 사과성명까지 준비했습니다. 사고가 나고 얼마뒤 정부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렸습니다. 정부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느라 분주합니다. 정부 차원의 보상도 검토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망자 시...
꾸리다 만 배낭이 방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벌써 열흘넘게 그대로 있습니다. 배낭 안에는 등산양말이랑 모자랑 헤드랜턴이 들어 있습니다. 배낭 옆에는 지도와 더불어 몇 권의 책도 있습니다. 낯선 곳을 혼자서 여행하는 내내 벗이 되어줄 것들이죠. 이제 옷가지나 세면도구 따위만 챙기면 당장 길을 나서도 될 성 싶습니다. 헌데 배낭은 열흘 넘도록 꾸리다 만 상태, 그대로 입니다. 매일 매일 마주하면서도 선뜻 손...
봄에 떠난 그를 가을이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그가 그렇게 참혹하게 세상을 버린지 벌써 5개월하고도 보름여. 저 땅 아래 한 줌 재로 잠든 그를 이제사 찾았습니다. 그가 살아서도, 그가 죽어서도 미루고 또 미루던 봉하가는 길. 헌데 불현듯 그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려, 너무 늦은 길 더는 늦출 수 없겠기에 홀로 집을 나섰습니다. 오전 9시의 가을 햇살 아래 품을 열고 서있는 마을. 봉하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깃들어 지...
더없이 찬란한 아침입니다 하늘은 눈이 부시다못해 파랑 물감이 뚝뚝 떨어질 지경입니다 어제 그렇게 하염없이 퍼붓던 비가 어제 그렇게 하릴없이 몰아치던 바람이 세상의 모든 먼지와 때를 남김없이 털어냈나 봅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은 어땠나요? 어제 거기서도 비가 퍼붓고 바람이 몰아쳤나요? 당신이 계신 그곳은 어떻나요? 지금 거기서도 하늘은 더없이 맑고 밝은가요? 어젯밤 걱정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당신을 떠나보내...
분장실의 그녀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곧잘 한다. "너희들, 미친 거 아냐?" 사실, 이런 말을 들어야할 쪽은 후배들 보다는 그녀 자신이다. 분장실의 권력자에게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건 미치지 않고선 감히 하지 못할 짓 같으니 말이다. 분장실의 아랫것들에게 밑도끝도없이 트집잡고 음해하는 것도 미친 지경이 아니고선 감히 하지 못할 짓 같으니 말이다. 이쯤되면 후배들이 그녀에게 한마디 쏘아부치...
참 잘한 일이다.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 평생 긁어모은 재산을 선뜻 사회에 환원하겠다니 이 얼마나 눈물나게 반가운 일인가. 그것도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기부를 선언한 것이라니 말이다. 상류층의 기부문화가 없다시피한 나라에서 상류층 출신의 현직 대통령이 솔선수범하고 나섰으니 오래도록 칭송이 이어지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내놓은 재산 액수도 놀랄 노자다. 한 두 푼이 아...
아내에게 평생 고마워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994년 11월 22일, 바로 큰 아이가 태어나던 때였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며,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화사한 미소를 머금던 아내를 보며 다짐했더랬다. 그래, 내게 행복을 준 이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은혜를 갚으며 살자고 말이다. 아이의 탄생은 내 일생일대의 쾌거였다. 그리고 그 쾌거 이후 내 인생은 아이와 아내, 곧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되...
1993년 2월 27일, 마침내 아내와 나는 부부가 됐다. 아내의 고향인 대구에서 치른 결혼식은 간소, 간단, 그 자체였다. 요즘처럼 신랑이 만세삼창을 한다든가 신부에게 진한 키스를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볼거리는 없었다. 신랑입장-신부입장-주례사-행진,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회를 본 고교동창 녀석이 나름, 이벤트를 준비한 눈치였지만 난 한사코 말렸다. 후한을 들먹이며 급기야 녀석에게 초고속 진행을 협박하다시피했던...